열한계단.
작가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로 유명한 채사장이다. 오래 전 '지대넓얕' 책을 읽고, 이렇게 쉽게 쓰여진 책이 있다니 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한명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열한개의 계단이면 충분하다는 문구는 이 책을 선택할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더욱이 책을 쉽게 쓰는 '채사장'의 책이라니 당장 고를 수 밖에.
세상에는 각자 불편해하는 분야가 있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기독교가 불편했다. 기독교 학교를 졸업한 나는 열심히 채플도 다녀보고 필수강의인 기독교 강의도 들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 중에는 예수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현대의 다양성 가치를 반영하는 재미있는 수업도 있었지만, 한 존재의 실재유무로 사후에 가는 곳이 달라진다니 와닿지 않았다. 결국 재로 변해 자연 속으로 흩어질 것이라는 합리적이고도 과학적인 사실에 나는 더 이끌렸고, 간혹 종교적인 경험을 체험했다며 예수의 존재를 진심으로 느끼는 친구들의 말에는 불편한 감정이 들 뿐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인 사람에게는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며 관련 화제도 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정보의 홍수가 범람하는 현대사회에 사람들은 sns와 인터넷을 통해 본인의 취미와 가치관이 동일한 집단과의 만남이 더욱 쉬웠졌다.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다양한 관심사를 공유하기보다는, 본인과 동일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 본인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하는 것이다. 점점 더 정보의 편식이 쉬워진 사회에서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식'에 관심을 가지라니... 벌써부터 불편했다.
책은 작가의 엄청난 자신감으로 시작한다. "널려있는 정보들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할 가장 가치있는 지식만을 선별해 쉽고 단순하게 손질했다."라며 책을 소개한다. '지대넓얕'이 세계에 대한 책이라면, '열한계단'은 자아에 대한 탐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지금까지 작가를 흔들어 키운 질문들과 답변들을 제시했다고 한다. 작가를 흔들어 깨운 질문들이 나 또한 불편하게 하며 깨울 수 있길 바라며 책을 읽었다.
열한계단은 문학, 기독교, 불교, 철학, 과학, 이상, 현실, 삶, 죽음, 나, 초월로 이루어졌있다. 순서는 각 지식의 경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이 책은 쉽게 쓰여지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굉장히 쉽게 쓰여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쉽지 않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 챕터는 '현실'이었다. '현실' 챕터에서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 대해 소개한다. '공산단선언'에 따르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개념은 보통 자본가, 노동자로 해석되는데 그 기준은 '생산수단의 소유유무'이다. 부르주아는 토지, 건물, 기계기구 등 자본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국가는 국민을 위한 시스템이 아닌 부르주아 국민을 위한 시스템으로 필연적으로 국가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구조 순응을 이끌어내고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례로 이 책은 서구 강국이 식민지 침공하며 영역을 넓혔던 것도 기술의 발달로 대량생산체제에 돌입하며 부르주아가 직면한 과잉생산을 국가가 해결하기위해 시장확대가 그 목적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월급은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없이 노동자를 다시 일터로 나오게 하기 위한 장치이다. 노동자의 교육기간, 특정 자격 취득을 위한 기회비용 등을 감안하여 문제없이 노동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각 노동자의 월급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월급은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위한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 모든 것을 전복할 수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주도하는 혁명이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을 선택하기보다는 모두가 부르주아를 꿈꾸며 꿈의 사다리를 올라타기를 선택한 듯하다. 모든 전국민이 가치창출보다는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투자에 관심을 가지며 자본이 자본을 낳는 미래를 꿈꾼다. 가치창출은 자본과 노동의 결합으로 이뤄진다. 자본만 과도하게 증가할때 자본과 노동의 균형은 깨지고 거대해진 자본의 허수와 거품은 순식간에 꺼져버릴 수 있다. 과거 2008 금융위기 주택모기지 프라임사태처럼 말이다.
나는 열한계단 중 극히 일부 계단만을 이해한 듯하다. 앞으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다양한 지식들을 용기있게 접하고 어려운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