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영측하고, 진수열장이라.. 해와 달은 차고 기울며, 별과 별자리들은 열을 이루어 펼쳐져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음을 직시하는 데에서 온다는 것.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의 유한성으로 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절실하다는 것, 이 책이 나에게 전해주는 의미는 그랬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은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왜냐하면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기에 다만, 자기의 기력이 쇠잔해짐을 느끼고, 그것에 조금씩 적응해가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잠이 들 듯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종들과는 달리 인간만은 죽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가 있기에 죽음 이 후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한다고 한다. 생명은 소중하다. 살아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니 너무나 짧은 이 찰나의 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분투하고, 우주의 원리를 더 깊이 깨우치려 애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고통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라는 것,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여서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해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이라고.. 어느 동물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착취하지는 않는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다는 구절에 당연시했던 것이 당연시하지 않았던 것일 수가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있는 존재라면 다른 존재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고, 자기에게 고통을 준 존재들을 용서할 수 있고, 그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곰곰이 되새긴 다음, 그런 일이 자신에게든,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든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많은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 소년이 겪은 아주 특별한 이야기부터 시작하면서 세상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변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소년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과 선이와 특히 달마의 이야기가 종교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절대 시니컬하거나 비관적이지 않다. 주인공은 영생을 거부했다. 그리고, 삶의 유한성을 택했기에 더욱 소중한 하루 하루이기에, 나란 존재는 어떻게 존재하게 됬는지가 아니라 지금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보통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에 집착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이다. 인간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종교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인간이 믿었던 종교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최초의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한다.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주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인간의 공감능력을이용해 인간들을 끼리끼리 결속시킨다. 같은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다른 인간들에게 폭력적으로 군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책에서 얘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부분의 시간을 절대적 무와 진공의 상태에서 보내지만, 아주 잠시 의식을 가진 존재가 되어 우주정신과 소통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의식이 살아있는 지금, 각성하여 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 각성은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그 인식은 세상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개의 의식이 찰나의 삶 동안 그렇게 정진할 때, 그것의 총합인 우주정신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한다고 한다. 즉, 우주는 생명을 만들고, 생명은 의식을 창조하고, 의식은 영속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음 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