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역시 다마지오의 '느끼고 아는 존재'를 읽었을 때처럼 월말 김어준을 통해 알게 된 박문호 박사님이 추천하신 책이라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분량은 500쪽이 넘기 때문에 '느끼고 아는 존재'보다 2배 이상 두껍지만, 읽기에는 '느끼고 아는 존재'보다 수월하다. '느끼고 아는 존재'가 뇌의 활동, 특히 마음, 느낌, 의식 등에 집중하고 있다면,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는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됐을 때부터 현재까지 인간이,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했는지 알려주는 매우 거시적인 책이다.
책의 저자인 조지프 르두는 항상 뇌와 행동의 진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주제를 열정적으로 파헤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신경생물학자인 세스 그랜트와 친해졌는데, 세스 그랜트는 학습과 기억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시냅스 가소성에 관련된 유전자들의 진화를 연구했다고 한다. 세스는 설치류와 바다 민달팽이류의 가소성 관련 유전자가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는 이들 동물이 수억년 전에 살았던 공통 조상으로부터 학습능력을 물려받은 것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동일 유전자 중 일부가 단세포 원생동물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현재의 원생동물과 동물 사이에 10억년 전에 살았던 원생동물 공통조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경계에서 학습과 관련된 유전자의 일부는 따라서 그러한 미생물 조상들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원생동물도 유독한 화학물질을 피하거나 유익한 물질을 얻기 위해 헤엄을 치는 등 활발한 행동을 보일 수 있으며 심지어 현재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원생동물에게도 학습과 기억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논리적 결론은 행동, 학습, 기억을 위해서 신경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이 사실을 저자가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 원생동물의 행동능력에 대해 알려진 것들을 간단히 조사해 보았다고 한다. 이 단세포 생물의 행동은 단지 위험을 피하거나 영양분에 다가가기 위해 헤엄을 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외부환경에 맞춰 세포 내부의 온도를 조절하거나 체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화학 물질이나 햇빛을 향해 가거나 피하기도 했다고 한다. 원생동물은 심지어 번식을 위해 짝짓기 행동, 즉 섹스도 한다고 한다.
원생동물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출현한 단세포 생물로 대략 20억년 전쯤에 등장했는데, 잘 알려진 또 다른 단세포 동물인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가장 오래된 생명체로서 대략 35억년 전에 출현했는데, 박테리아와 원생동물은 서로 비슷한 종류의 행동을 많이 보여주지만 그 모든 행동은 박테리아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한다.
박테리아 또한 주변 환경에서 유익한 것에는 다가가고 위험한 것은 피하며, 자신들의 세상에서 무엇이 유익하고 위험한지 경험에서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박테리아는 유성생식을 하지 않는다. 단순히 반으로 갈라질 뿐! 진핵생물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섹스 때문이라고 한다. 진핵생물은 박테리아로부터 진화했으며 여기에는 원생동물과 동물이 포함된다고 한다.
동물이 포식자를 발견하고 얼어붙거나 도망치고 먹고 마시고 짝짓기를 함으로써 방어, 에너지 관리, 체액균형, 생식활동을 할 때,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 이와 같은 활동을 기저의 심리적 상태 - 공포, 허기, 갈증, 성적 쾌락과 같은 의식적인 감각경험-의 표현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사실상 우리 자신의 경험을 다른 유기체에 투사하는 것인데 이런 행동들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이런 행동들이 신경계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근거해서 다른 동물의 행동을 판단하는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생존 행동들이 생명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한다. 이후 등장한 동물들은 이런 행동들을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뉴런과 신경 회로를 진화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유기체는 단 하나의 세포로 구성되었든 수십억 개의 세포로 구성되었든 상관없이 살아있고 또 살기 위해 이런 종류의 생존행동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