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에 한국에 소개된 레트로한 디자인의 유럽산 냉장고는 가격이 비싼 데다 뛰어난 성능을 내세우지 않았음에도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1인 가구 증가, 온라인 집들이 등 새로운 정보전파 방식 등장,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 중시 등의 변화는 전통적인 백색가전에도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되었습니다. 경제발전 속도의 기울기가 완만해지고 삶의 질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 사람들은 가족과의 관계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도 전통적 가치관과 관습을 무작정 따르기보다는 다시 생각해보며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자 하는 개인의 변화는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치열한 과정과 다르지 않다. 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어떤 방향으로 적응해야 할지 이해할 수 있다. 제가 하는 일이 이것이다. 저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그려모아서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여러분은 일상적으로 엄청난 자료를 남기시죠. 예를 들어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한다든지 자동차 운전 기록 같은 것이 남는다. 이런 지극히 내밀한 사적 정보가지 들여다보는 건 아니고요, 온라인상에 여러분이 쓴 글들, 게재한 사진들, 관심 사안에 대해 남긴 의견 같은 것들을 그려모으는 일을 한다. 이런 빅데이터를 모아보면 그 속에 패턴이 있다. 그 패턴을 ai기술로 인식해서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로 쓰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다. 그럼으로써 여러분이 남긴 흔적에 들어 있는 행동과 이유,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에 집중했던 건 아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데이터에 들어 있는 패턴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터가 그려내는 패턴에 어떤 의미가 들어 있는지는 미처 알 도리가 없다. 그러던 중 2010년 한 신문사에서 데이터를 통해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작업이 가능한지 의뢰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기껏해야 특정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측정하는 리포트를 내는 수준이었던 터라 언감생심 그 일이 가능한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 전면을 무려 5일이나 우리의 이름을 걸고 채울 수 있다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당시 그 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패기와 무모함은 지금 생각해보면 가히 치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돌이켜보건대 그때가 저와 동료들의 터닝포인트였음은 분명하다.
과연 데이터를 통해 사회를 볼 수 있을까 물론 전부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의 단면을 일정 수준만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다.
실제로 수많은 사회현상에 대한 당시 우리의 판단과 근거는 오래 지나지 않아 사실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합의의 기준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근거해 많은 이들이 협의하고 합의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2012년 저는 그간 했던 우리의 공부와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제목은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 입니다. 사람들의 욕망이 발현되는 것을 보고, 그 욕망이 합의되는 곳 그리고 합의된다고 믿는 곳을 본다면 우리 삶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 욕망의 원천을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이런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리고자 거칠게 정리해본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후 빅데이터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여러곳에 알렸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한 명 한 명의 욕망을 기술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그 욕망의 합은 우리 사회가 합의를 이루어가는 소중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욕망의 상호작용을 바라보면서, 저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억측이 얼마나 많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도 조금씩 보았습니다. 선한 의도로 준비한 많은 것들이 사실은 상대방이 진정 원하는지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은채 마구잡이로 던져진 것이었죠 그러한 오해와 엇갈림들을 정리해서 2015년에 낸 책이 상상하지 말라입니다. 그리고 다시 6년이 되어 이책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