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행오버(Social Hangover)’.
지난 3월 즈음부터 서양의 신문·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유행어다. ‘사회적 숙취’로 풀이될 수 있는 말이다. 술 마신 다음날 겪는 두통과 무기력 증상처럼 여러 사람들과 만난 뒤 겪는 육체적·심적 피로감을 의미한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탈진한 듯 쓰러진다. 숙취가 그러하듯, 증상이 며칠간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학교로 돌아간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소셜 행오버로 고생하면서 병원을 전전한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소셜 디스턴스(Social Distance)’, 즉 사회적 거리두기의 후유증이 소셜 행오버일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도 1m 이상 떨어진 채 얘기하는 것이 지난 2년여간의 상식이자 정의다. 그러나 제비가 돌아온 봄과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풍경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요즘 선진국에서 코로나19의 위력은 급강하하고 있다. 그동안 금지됐던 인간관계가 허용되면서 술집과 식당이 다시 북적인다.
소셜 행오버는 그 같은 배경하에서 나타난 급작스러운 변화다. 친구, 친척, 어른들과 다시 만나면서 회포는 풀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소셜 행오버가 엄습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행될 당시의 공포와 거부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전염병이 길어지면서 인간의 적응력도 진화했다.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자체가 너무나 당연한 풍경으로 정착됐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기초한 정치적 동물’이라 규정했다. 2년여에 걸친 팬데믹은 2400여년 전 철학자의 생각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이유도 없이 피곤하고도 불안한 소셜 행오버가 바로 그 증거다.
팬데믹 끝나며 들이닥친 ‘소셜 행오버’
전염병의 위력이나 영향은 인간 본능만이 아니라, 문학에까지도 미친다. 이른바 전염병 문학이다.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전염병 문학의 대표주자다.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를 덮친 전염병이 ‘데카메론’ 창작의 동인(動因)이었다. 페스트를 피해 10명의 귀족 청춘남녀들이 교외 별장에 모인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구술한 스토리 100개가 ‘데카메론’의 내용이다. 성(聖)과 속(俗)을 넘나드는 중세의 희로애락이 보카치오의 필력으로 집대성됐다. ‘데카메론’은 전염병이 없었다면 ‘결코’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던 작품이다. 르네상스 바람이 불기 직전인 14세기 유럽은 공포의 신과, 한층 더 무서운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다. 1년 365일 인간만사가 교회 종소리에 맞춰 진행됐다. 부부의 잠자리조차도 심야의 교회 종소리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 어긋날 경우 천벌이 따른다고 모두가 ‘진짜’로 믿었다.
그러나 전염병이 밀려들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막장심리라고나 할까? ‘내일이면 끝날지도 모르는 인생, 그동안 억눌렸던 심성을 살아 있는 동안 마음껏 풀어보자’는 풍조가 나타난다. 신과 교회에 매달리는 열혈신자도 많았겠지만, 반대로 성(性)·욕(欲)·속(俗)을 통해 불안과 공포를 이기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데카메론’에 등장한 청춘남녀는 달랐다. 성·욕·속에 대한 평소의 관심과 흥미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죽음을 앞둔 막장인생이기에 터부도 없다. 성(聖)이 아니라 성(性)에 빠진 수녀들에 대한 얘기는 ‘데카메론’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평상시라면 교회로부터 화형에 처해질 음담패설이지만, 전염병이란 극한 상황을 이용해 세상에 퍼져나간다.
2022년 4월, 대한민국 전염병 문학은 과연 무엇일까?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책이 한국의 베스트셀러로 팔렸을까? 한국의 온라인 서점을 살펴보면서 지난 2년여간 출간된 책의 흐름을 살펴봤지만, 하나로 집약할 만한 책이 없다. 가난 자랑에 정신이 없는 권력가들과 일확천금을 보장하는 투자법 관련 책들은 넘쳐난다. 비장한 제목의 백서와 흑서를 오가는 ‘카더라’ 관련 서적도 대홍수다. 그러나 한국인 모두를 감동으로 몰아간, 장기 베스트셀러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바다 건너 미국은 어떨까?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코너(www.amazon.com/charts)를 살펴봤다. 놀랍게도 필자가 오래전에 베스트셀러로 기억했던 책들이 아직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픽션, 논픽션 분야 할 것 없이 상위 베스트셀러의 경우 눈에 익은 책이 절반 정도이다. 이들 장수 베스트셀러는 전염병 원년인 2020년 2월 이전에 출간됐던 책들이다. 픽션 분야 수위를 차지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는 대략 2015년부터 이미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에 올라서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14세기 ‘데카메론’ 스타일의 ‘전염병의, 전염병에 의한, 전염병을 위한 문학’은 미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곧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4월 초 아마존닷컴을 보면 그 같은 징후를 읽기 어렵다. 왜일까? 인터넷과 모바일의 일상화, 재빨리 등장한 백신이 전염병 문학 부재의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르겠다. 전염병이 돌기는 하지만, 죽음이나 공포와 무관한 ‘강 건너 불’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불안·공포·고독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데카메론’의 남녀 10명처럼 사회와 차단된 채 교외 별장에서 격리생활을 할 필요도 없다. 줌 비디오를 통해 평소 만나던 사람들을 매일 만날 수도 있고 음식은 온라인 배달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존닷컴 속 베스트셀러 가운데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논픽션 1위(4월 3일 기준)에 오른 책이다. 2019년 출간 이래 무려 3년간 상위 5위권에 들어선 장기 베스트셀러다. 필자가 아는 한 논픽션 분야로 3년간 수위를 차지한 책은 극히 드물다. 소설과 같은 픽션 영역은 고전이나 영화로 제작되면서 장기 명작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는 논픽션은 다르다. 빠르게 변하는 인터넷 시대에 논픽션이 3년 가까이 수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베스트셀러 주인공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이하 ‘작은 습관’)이란 제목의 책이다. 한국에서도 2019년에 이미 출간됐는데, ‘최고의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미국에서 행동심리 컨설턴트로 활동 중인 제임스 클리어(James Clear)가 펴낸 책으로 현재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닷컴을 보면, 하드커버는 물론 전자북까지 포함해 무려 168주 연속 상위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50개국에서 번역돼 700만부가 팔렸다.
저자 제임스 클리어는 베일 속 인물이다. 개인적 차원의 얘기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지역 내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의 아성으로 통하는 데니슨대학을 2008년에 졸업했다는 것이 알려진 개인사의 전부다. 나이, 거주지, 가족, 신체에 관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대학 재학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야구 투수였다는 애피소드가 작가 스스로 밝힌 경력의 전부다. ‘작은 습관’은 행동심리 컨설턴트로 일하는 과정에서 펴낸 책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그 흔한 위키피디아에도 관련 자료가 올라와 있지 않다. 현재 트위터 팔로어가 50만명으로, 한 달 평균 두 번 이상의 강연을 하고 있다고 본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전염병 팬데믹은 고독한 시간의 연속이다. 베스트셀러 ‘작은 습관’은 고독한 시간을 활용한 자기개발서다. 영어로 고독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차단된 수동적 차원의 ‘고독(Loneliness)’, 사회적 관계 유무와 별개로 아예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능동적 의미의 ‘고독(Solitude)’이 그것이다. 혼자라는 의미를 동양은 수동적 차원의 고독, 서양은 능동적 차원의 고독으로 풀이해 왔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혼자 카페에서 10분 이상을 버티는 한국인은 그렇게 많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 중에서는 스마트폰이나 잡지 없이 카페에 혼자 앉아 1시간 이상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 흔하다. 집단으로 행동하는 동양과 달리, 어릴 때부터 개인 차원으로 움직이는 곳이 서양이다. 한국인 대부분은 혼자가 되는 순간 고립감, 소외감에 빠진다. 서양인은 거꾸로 집단으로만 행동할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관통하는 키워드는 ‘원칙’ ‘과정’ ‘행동’
‘작은 습관’이 전염병 시대 미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서양식 세계관의 당연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0위권(4월 3일 기준) 내 책을 보자. 이미 19주째 상위권에 진입한 2위 ‘마음의 지도(Atlas of the Heart)’를 비롯해 무려 5권이 자기개발에 관련된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팬데믹에 즈음한 한국인의 자기개발에 관한 발상이다. 주식과 부동산에 관련된 재테크 관련 책은 팬데믹 시대 한국의 인기상품 중 하나다. 넓게 보면 금전과 관련된 자기개발이라 볼 수 있다. 아마존닷컴에도 재테크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대세는 아니다. 서양에서 보면 능동적 고독에 맞춰진 자아성숙과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돈·출세·명예는 수단일 뿐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팬데믹 시대의 서양은 인생의 목적으로서의 자기개발에 매달린다.
자기개발서 ‘작은 습관’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특히 기존에 접하던 자기개발서와 비교해 보면 판이하게 다른 책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독서법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 놓치지 않으면서 읽지는 않는다. 머리글과 목차를 읽은 뒤 기존의 관점과 다른 부분에만 집중하는 독서법이다. 대충 읽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책을 덮은 뒤 핵심 키워드 10개, 아니 1~2개만 만난다 해도 성공한 독서법이다. 위선과 현란한 말잔치로 채워진, 부사와 형용사로 장식된 책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작은 습관’을 읽으면서 얻게 된 키워드는 크게 3개로 압축된다.
첫째 원칙(Principle)이다. 흔히들 습관을 주제로 한 자기 개발서라고 하면 ‘일찍 일어나라,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가라, 과거는 흘려보내고 항상 웃으면서 미래를 준비하자…’는 식의 모범형·긍정형 스토리부터 떠올릴 듯하다. 일찍 일어나면 어떤 것이 좋은지에 대한 예나 과학적 증거, 나아가 유명인의 일화가 따라붙는다. ‘작은 습관’에는 그런 구체적인 사례가 거의 없다. 원칙만 강조한다. 항상 냉장고 안을 깨끗이 정리하자는 식의 얘기와는 무관한 책이다. 구체적인 사안은 각자가 풀어나갈 것을 권하고 있다. 체중감량, 공부, 비즈니스, 조직 관리, 애정관계 등의 영역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는 원칙에 맞추기만 하면 각자의 몫이다. 객관식이 아니라 주관식 책인 셈이다. 방법론에 기초한 구체적인 데생이 아니라, 원칙론에 기초한 관점과 가치에 주목한 책이 ‘작은 습관’이다. 여기서 제시된 원칙은 크게 10개로 압축된다.
1. 매일 1%라도 개선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라.
2. 나쁜 습관은 줄이고 좋은 습관을 키워 나가라.
3. 습관을 바꾸는 과정에서 행하기 쉬운 잘못을 피하라.
4.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한 동기와 의지를 강화하라.
5. 스스로를 확신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을 강화하라.
6.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라.
7. 주변 환경을 개선하라.
8. 작고도 쉬운 습관부터 개선해 나가라.
9. 나쁜 버릇이 나올 경우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하라.
10. 모든 것을 머리로서만이 아닌, 실제 생활에 적용하라.
둘째 키워드는 과정(Process)이다. 베스트셀러 ‘작은 습관’은 어떻게 하면 단시간에 살을 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10개의 원칙하에 어떤 계획을 구체화할 경우 결과적으로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과정’으로서의 개발서에 해당한다. 사실 성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없다. 결론에 주목하는 개발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책을 대하면서 시종 갖게 된 의문이지만, ‘좋은 습관’이란 것이 어떤 개념인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인이라면 일찍 일어나는 것이 좋은 습관이라고 믿을 듯하다. 서양에서 보면 ‘잠을 줄이면서까지 새벽 등교에 나서는 것이 과연 좋은 인생이라 볼 수 있는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인생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늦게 일어나서 늦게 출발하는 것도 좋은 습관이라 부를 수 있다.
셋째 키워드는 액션(Action)과 모션(Motion)에 관한 부분이다. 둘 다 ‘행동 행위’로 번역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다르다. 액션은 지금 당장의 행동, 모션은 실전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준비행동에 해당하는 말이다. ‘작은 습관’은 생각 차원의 모션을 버리고 직접 행동인 액션을 강조한다. 매일 행하라고 권한다. 시중에 떠도는 자기개발서의 대부분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해결책으로 채워져 있다. 뭔가 한순간 빛을 발할 신비한 묘안은 애초부터 없다. 따라서 자기개발서는 모션에 그칠 뿐이다. 구체적인 액션은 책을 읽는 개개인의 몫이다.
20여년 전 미국에서의 체험이지만, 처음으로 동네 헬스클럽에 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회원가입을 기념한, 50분 무료 트레이닝이 코치와 함께 제공됐다. 원래 시간당 150달러나 하는 비싼 트레이닝이기에 잔뜩 기대를 하고 응했다. 그러나 코치를 접하는 순간 너무도 황당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대략 신장 160㎝에 체중 120㎏은 넘을 만한 엄청난 뚱보 코치였기 때문이다. 트레이닝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대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필자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코치의 주된 기능과 역할은 모션, 즉 준비행동 도우미에 불과하다. 체중과 체력을 개선할 운동 요령은 알려줄 수 있지만, 운동 기구를 직접 활용하는 액션의 주체는 바로 개개인이다. 날씬한 몸매에다 강인한 근력을 가진 코치가 대부분이지만, 사실 반드시 그런 외모를 갖출 필요는 없다. 야구감독 가운데 4번 타자에다 강속구 투수 출신이 몇 명이나 될까? 모두가 따를 모범답안 코치의 모습은, 서열과 방법론에 매달리는 동양적 사고의 반영물에 불과하다. 당연하지만, 뚱보나 신체장애자라도 헬스클럽 코치나 야구 감독이 될 수 있다.
전염병 팬데믹은 동서가 갖는 세계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적의 상황이다. 마스크를 안 쓰고, 접종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공공의 적’으로 비판받는 곳이 동양이다. 마스크를 쓸 의무와 마스크를 벗을 자유 사이의 갈등에서부터, 접종 수용과 거부 사이의 알력은 동서 사고의 차이가 무엇인지 보여준 증거들이다. ‘소셜 행오버’를 피하는 방법 중 하나로 독서를 권한다. 전 세계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작은 습관’은 연내 7㎏ 체중감량 지침서로서만이 아닌, 동서 세계관의 근본적 차이를 읽을 수 있는 팬데믹 시대의 거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