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이다. 이 말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고어가 말한 내용으로서, 한국의 직지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이지만 금속활자를 대중에게 알린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이다.
김진명은 직지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인쇄술임에 착안하여 조선시대 은수가 위험을 피해 명나라, 프랑스로 가면서 세종대왕의 꿈이었던 백성만민이 문자를 읽기 쉽도록 하기 위하여 책을 인쇄하는 금속활자 주조에 매진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조선에서는 아니었지만 프랑스의 구텐베르크의 도움으로 금속활자를 만들게 된다.
문자는 당시 사람들의 정보력이었으며, 곧 권력이었다. 프랑스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 보급되지 않았으므로 그 내용을 알지못하여 부패한 성직자들은 금속활자 보급에 반대했었다.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 집권층은 문자의 보급을 두려워했었다. 하지만 직지의 금속활자 발명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보급으로 책을 만들기 용이해졌고, 책의 보급이 시작되었다.
한편 청주 인쇄 박물관에서는 직지를 인정하지 않는 구텐베르크 박물관 측 사람들과 직지가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는 것을 올바로 이해시키고 그 의미를 확산시키기 위한 청주 고 인쇄박물관간의 심포지엄이 벌어진다. 그 자리에서 사회부 기자인 기연은 [한마디로 조선의 인쇄가 유치원생이라면 독일의 인쇄는 대학원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독일은 직지의 씨앗을 인정하고 한국은 독일의 열매를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소설속에서는 직지가 구텐베르크로 이어지고 있다고 가정을 하지만 실제로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게 알려주는 메세지는 이 세상은 서로서로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얽매이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