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마음세탁소]
친구의 추천으로 별다른 생각 없이 이 책을 선정했지만, 읽어보니 지금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책 중 하나가 되었다. 책을 받았을 때 ‘마음세탁소’라는 단어가 가장 인상 깊었다.‘구겨진 마음을 다려주는건가?’ 라는 의문과 호기심이 생겼고, 다 읽은 지금 다시 제목을 보니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함축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가 아닌가 싶다. 내가 가장 대단하다고 느끼는 직업 중 하나가 심리상담사이다. 좋은 이야기를 하러 상담하러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터 놓을 상대가 없어서 심리상담소를 찾는다. 이 책의 마음세탁소가 현실의 심리상담소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심리상담사는 우울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함께 그 우울함 속에 빠지지는 않을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상담사는 매번 상담을 하면 감정이 전이될 것 같은데 심리상담사는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는걸까 의문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심리상담사의 마음의 일부를 느껴볼 수 있는 문장이 있었다.
[소녀가 좋아하는 행위도 있었다. 소녀는 곁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소녀의 탁월한 공감 능력으로 감정이 전이돼 마음이 아팠고, 감정이 진정될 즈음 차를 내어주면 말하는 이가 천천히 미소를 짓곤 했다. 그렇게 서로 편안해지는 순간의 공기가 좋았다. 슬프고 우울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소녀에겐 힘들지 않았다.] 이 문장을 보며 힘든 이야기를 마냥 들어주는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진정이 되고 어떻게 치유되는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심리상담사의 마음도 일부 공감되었다.
[사람들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기쁨의 순간들보다 힘든 순간이 생에 널려 있음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그들이 털어놓는 속내가 소녀에게는 음악 소리와 같은 말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가다 마음에 얼룩을 남기는 것보다, 자신에게 풀어내며 천천히 그들의 마음이 풀려 깨끗해지는 시간이 좋았다. 내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다 보면 언젠가 소녀의 마음도 채워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소녀는 각자의 힘든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이야기하며 속사정이 풀려나가는 과정에서의 깨끗함이 좋다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제목의 ‘마음세탁소’ 만큼 이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낸 단어는 없다고 다시 한 번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구겨지고 얼룩진 마음을 깨끗하게 풀어주는 세탁소가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희망하기도 한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연히 세탁소로 가서 힘들었던 기억을 지운다. 사연마다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지워서 좋은 기억과 힘들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싶은 기억으로 나뉘는 것 같다. 나는 힘든 기억도 경험으로 가지고 사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등장인물 중 은별은 인플루언서로 남들이 보았을 때는 행복해보이지만 내면은 그렇지 않다. 가족들과 힘들었던 시기에는 오히려 서로 의지하며 살았지만, 은별이가 성공한 뒤로 가족들은 은별을 그저 돈으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은별은 세탁소를 찾아가 지금 힘든 이 순간을 지워달라고 한다. [살고 싶다. 지울 수 있는 마음의 얼룩을 지우고 살고 싶다.] 라고
세탁소에서 기억을 지워지는 순간도 책은 아름답게 묘사했다. [지은이 오른손을 뻗자, 빨간 꽃잎이 동그랗게 회오리치며 은별이 벗은 옷을 세탁기 안으로 가져간다. 마치 반딧불이가 꽃잎의 양 옆에 길을 내듯 빛과 함께 꽃잎에 싸인 얼룩 묻은 옷이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은별은 슬픔을 잊고 꽃잎의 향연을 바라본다. 세탁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태양이 빛나듯 빛이 번진다.] 이렇게 은별의 아픈 기억은 지워지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예전처럼 유명하거나 돈을 많이 벌고 있진 않지만, 차근차근 은별의 인생을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히려 인플루언서의 삶을 버리고 계정을 삭제하자 힘들어 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하지만 은별은 과거보다 지금이 마음이 편해져보였고, 읽으면서 은별이의 감정에 공감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사연이 있었지만 세탁소에서 해결해주는 방식과 개개인이 이겨내는 방식이 달라 오히려 좋았고, 내게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