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자기계발서 또는 과학적인 척만 하는 유사과학책처럼 보이는 제목에 호기심이 일어서 매우비판적인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한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철저하게 과학적인 책이었다. '우연'이라는 것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라서 나는 생각보다 월씬 재미있게 읽었지만 똑같은이유로 책의 판매량이 걱정될 정도였다. 이 책의 내용을 담은 정확한 제목은 "우연이란 (과학적으로) 무엇인가?" 정도가 될 것 같다.(이 책의 제목도 아마도 너무 과학적인 내용이 걱정된 출판사에서 고육지책으로 의역해서 붙인것 같다. 원제를 직역하면 "확률, 세계와 당신: 행복의 과학"이다. 분명히 제목에 "과학"이라고적혀 있다.)
'우연'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기에 앞서 '우연'이 얼마나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지, 똑같은 자세, 똑같은 지식을 가지고 똑같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우연에 의해 누구는 성공을 하고 누구는 실패를 한다는 예를 들면서 우연 크게 힘입어 '성공'한 사람들이 마치 '생존자 편향'에빠졌던 영국 공군처럼 자신의 비결을 성공의 유일한 전략이었던 것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자로 생각되었다 계몽주의 이후 신의 섭리와 운명이 의미를 잃어가고 인류는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특히 뉴턴이후로 수학적 방법론으로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한 때 인간들은 자신들이 세계의 구성원리를 이해했고, 더 많은 것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게티다면 세상 모든 일을 예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만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을통해 처절히 알고 있듯이 우리 인생의 수많은 부분은 운과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 이 책은 단순히우연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연'이란 무엇이고 우연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파해치기 위해 양자역학과 카오스이론을 이용하는 과학책이다.우연은 단순히 원인의 부재인가?
따져보면 꼭 그렇도 않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로또 추첨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인간은 추첨기 안에서 정신없이 운동하는 로또 공들의 움직임을 역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양자역학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고전 역학 만으로도 공의 움직임을 지배하는 운동방정식을 쓰고 시간에 따른 공의 움직임을 꽤 정확히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우리가 로또 움직임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순전히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기 공의 위치, 공기의 미세한 흐름, 비탄성 충돌의 결과 등 미세한 초기조건의 차이가 카오스적 거동으로 인해 큰차이를 만들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하는 인간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부를 밖에에 없게 된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태풍을 일으킨다고 흔히 비유되는 카오스이론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모든 발걸음, 눈 깜박임 하나가 결국 우리 삶과 인류의 역사를바꿀지도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태풍을 일으킨다고 흔히 비유되는 카오스이론처럼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연
결되어 있다.
우연을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양자역학적 불확정성에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우리에게가능한 결과와 그 가능성을 알 수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예측할 수 없다. 가능성(확률)은알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순전히 우연이다. 양자역학적 우연은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말하는 정보의부족이 아니라 근본적인 우연성이다.이런 '우연'에 대한 분석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으로 연결된다. 우리 인간의 뇌는 사건을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보다 단순히 우연이라고 생각하도록 진화되어 왔다. 결국 우리의 제한된 두뇌, 제한된 감각, 제한된 수학적 능력 때문에 인간은 어차피 이 에상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예촉할 수 없고, 그 우연의 근본적 원인이 우라늄 핵분열 같은 양자역학적인 의미든 로또나 일기예측처럼 카오스적 정보의 부족이든 우리에게는 똑같은 우연이라고 느껴진다는 것.
파동함수나 양자중첩 이론 등 어려운 물리학 이론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여 대중 독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이 책의 장점은 방대한 지식의 넓이라기보다는 촘촘하고 다양한 심리 실험들의 예시라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생존자 편향' 현상인데 이 심리 용어는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성공한 사람이나 사례에 집중하여 문제를 해석하다 보면 크나큰 오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인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비행기 엔지니어들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무사히 귀환한 전투기들을 조사하다가 총탄을 맞은 부분들이 비행기의 특정한 부분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데, 이를 보고 총탄에 맞은 부분들을 더 튼튼하게 보강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통계학자였던 아브라함 왈드는 이것이 어리석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총탄을 집중적으로 맞아도 무사귀환했다는 점으로 미루어보면 오히려 격추되어 귀환하지 못한 전투기들이 더 중요한 부분에 총탄을 맞았을 거라고 추측했던 것이다. 그의 판단은 매우 적중했으며 오늘날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응용되고 있다.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가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의 사례를 제대로 파악해야 실패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원칙으로 말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과학적 사고라고 피력했던 아인슈타인과는 정반대로 '원인이 없는 결과는 매우 다채롭다'고 주장하는 과학 책,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안에는 이와 같이 우리가 몰랐던 다양한 심리 실험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