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는 내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재산이 된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고 역사는 나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다. 역사를 공부했음에도 살아가는 데 어떠한 영감도 받지 못했다면 역사를 제대로 공부했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사를 배우고 암기했던 사실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려도 괜찮다. 역사를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만 잊지 않으면 된다. 역사는 삶의 해설서다. 문제집을 풀다가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면 우리는 해설을 찾아본다.
비단 역사를 책으로만 공부할 필요는 없다. 강연이든 다큐멘터리든 영화든 소설이든 교과서든 어떤 창구를 통해서라도 역사적 사실에서 함의를 도출하고 깊이 생각하고 나의 인생에 적용하면 그 적용하는 과정에서 뇌활동이 일어나고 심장이 변화해나가는 것이다. 그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조목조목 기억해내지는 못할지라도 역사를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고 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현재 내가 직면해 있는 삶을 통찰하면서 1차원이 아닌 2차원 3차원 4차원의 삶을 살 수 있는 거름이 되는 것이다.
최근 16세기의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는 역사책을 읽으면서 최근 산업계에서 일어나는 전기차나 우주항공산업에서의 국가별 대응을 비교해보았는데 정말 아찔할 정도로 과거와 닮아있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조선시대의 후진함을 비난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삶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를 끄집어내어 연결시켜보는 뇌의 회로과정이 있어야 독서나 역사공부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하겠다
2. 연개소문은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정세의 변화를 읽는데 소홀했다. 힘없는 신라가 위기 속에서 주변국들을 정복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을 때, 연개소문은 고구려 내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642년 신라의 김춘추가 제안했던 신라와의 동맹을 거절했던 것도 신라는 신경쓸 것 없다는 오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나라와 관계가 계속해서 나빠졌음에도 그 두 나라가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정말 괜찮은가? 그냥 되는대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게 아닐까? 자꾸 물어보아야 한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을 멈추면 그저 관성에 따라 선택하고 관성에 따라 살게 된다. 역사는 그 어느 것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때는 맞았던 것이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현재를 점검하지 않으면 잉카의 마지막 황제나 연개소문과 같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도 20대때의 작은 도전과 성취를 연이어 달성할 적이 있고 좋게 보자면 긍정의 힘이고 나쁘게 보자면 성취에 중독되어 있었던 적이 있다. 그리하여 매년 목표를 정하고 달성여부를 체크하다가 직장에 들어오고 템포가 느려지면서 위기감을 느낀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애 둘 아빠가 되고 타임라인에 대해서 너무 너그러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너무 조급하게 움직일 것도 없지만 세월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너무 느긋하게 미래의 숙제로 남겨두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남과 비교하면 끝도 없어서 과거의 나와 비교해야한다는 명문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글같은 포식자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상대평가이고 타인과의 경쟁없이 살 수가 없다. 내 월급이 100만원에서 200만원이 되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50만원에서 500만원이 되고 물가상승률도 그렇게 올라간다면 나의 임금인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3. 태극기 집회를 나가는 어르신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정희라는 지도자와 미국이라는 우방은 소위 "빨갱이"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주는 절대적인 존재였고 전후복구시기 새마을 운동을 통해 절대적 빈곤에서 탈출하는데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살마들이다. 젊은 세대가 박정희 대통령을 부정하고 우방국 미국도 부정하면 그들은 마치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살아온 세월, 내가 쏟아부은 노력, 그리고 그것으로 밖에는 설명하는 수 없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 억울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내 옆에 있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왜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걸까? 독재정권으로 돌아가자는건야?라고 단정하기전에 그들이 살아온 삶의 시간을 상상해보고 이해한다면 세대 갈등이 갈등을 넘어 혐오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일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상대가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헤아려보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서로의 시대를, 상황을, 입장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관점도 달라질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4. 소통의 문제. 한 조직의 리더가 조직원을 모아놓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되고 권위적이게 된다. 그러나 역사 강연을 함께 듣는 시간을 통해 강사에게 고민을 질문하는 척 하며 조직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소통의 기술. 조금 놀라웠다. 친구 관계든 부부관계든 직장동료관계든 가끔 말하기 어렵거나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어도 세련되게 전달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반드시 1:1로 대화를 하는 방법 외에 조금 더 다차원적인 메시지 전달? 소통? 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 이 책에서 읽은 원론적인 깨우침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소통을 어떻게 해나갈지 고민해보고 방법을 찾게 된다면 내 인생을 바꾸는 책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누군가와 처음 만나게 되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나이, 출신, 취미(특히 골프) 등을 물으면서 공통 관심주제를 찾기 마련이다. 상대를 만나기전에 미리 상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에 대해 탐색하고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대화를 이끌어내보면 어떨까
5. 꿈은 동사. 중고등학생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명사로 답을 한다. 어떤 직업을 이야기 한다. 그럼 그 직업은 다 똑같은 인생인 것일까? 요즘은 워라밸이 중요한 사회이다보니 꼭 직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게 무색하다. 꿈을 단순히 선생님으로 정한다면 선생님이 되고나면 허무해질 수 밖에 없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28살 신입행원 시절 가졌던 꿈을 다시 복기해보자. 그 당시 나의 꿈은 속으로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뽐나게 살고 으시대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아픈 기업을 치유해주는 기업전문닥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기업사냥꾼에 비유되는 사모펀드보다는 기업구조조정과 회생을 통해 기업을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국책은행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 나의 꿈은 그대로인가? 요즘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이 얼마나 성가신 업무인지 알기에 20대 시절의 패기가 많이 희미해진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판교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모임에서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번에 회사 실적이 좋아 임금이 많이 오르겠다고 했더니 자기네들은 그런거에 관심이 없다고 그러더라. 그러면서 자기네는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조직이고 거기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더라. 최근에 퇴사한 같은 팀 후배가 기재부에 가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했던 것 같다. 내가 현실감각이 뛰어난 것인지, 조직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났다고 착각하는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런 직장인 월급루팡이 되어버린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업무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인생의 절반은 재미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내 꿈이 국책은행 직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였는지 동사형 꿈이 있는지 고민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