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은 오프라인, 온라인 서점에서도 항상 한귀퉁이에 조용히 진열되어 있는 책이지만, 항상 제목이 마음을 끌게하는 신기한 책이었다. 게다가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 시리즈라니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제목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고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기에, 잘 쓰여진 소설로 생각하고 손에 쥐어 읽기시작한 순간, 큰 벽을 느끼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소설이 아닌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말살정책을 수행했던 담당자로 일컬어지는 아이히만의 재판일기이고, 이 책의 저자는 단순한 소설가나 칼럼니스트가 아닌 하이데거와 연인관계였으며 야스퍼스의 제자이기도 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라는 사실이다.
영화 쉰들러리스트를 비롯해 수많은 영화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만행을 다루고 있지만, 매우 단편적으로 학살 사실에만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지식이나 이런것들이 충분하지 않았던데다가, 20세기초 독일 철학의 대략적인 방향이나, 그녀의 스승이었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고, 저자의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인지 번역이 매우 난해한 것인지는 몰라도 역자서문이나 추천사는 그래도 어느정도 잘 읽혔지만 본문은 생각보다 막히는 구간이 많아서 읽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뉘앙스는 어설프게 파악할수 있었다. 책에서도 나타나지만,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이주정책(종전무렵에는 말살정책으로 변경된다)의 가장 전문가였던 전범인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숨어 지내다가 이스라엘 비밀경찰로부터 납치당하여 이스라엘 법정에서 전범재판을 받는 내용에서 시작한다. 유대인 말살정책의 선봉에 있던 아이히만의 이스라엘에서의 재판은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히만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재판이며, ‘피고’라는 개념이 있을 필요도 없이 일방적으로 유죄로 단죄하여 그를 사형에 처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아이히만의 변호사와 판사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저자도 아이히만의 무능함(말하기의 무능함, 생각의 무능함, 판단(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의 무능함)과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비난하고 있으나 당시 나치스와 협력했던 유대인의 이야기라던가 아이히만을 비난하였으나 그를 교화하려하지 않았던 목사의 사례를 인용하는 등 일방적으로 아이히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신선했다.
우리나라도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에 의해 점령당한 기간동안 일본은 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나라를 황폐화시켰고, 이런 내용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반일감정은 국가 대 국가의 감정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감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요즘도 해방 이후 당시 친일부역자들을 독일이 전범자 특별법을 만들어 처단했듯이 왜 하지 못했을까를 아쉬워하는 국민들이 많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누가, 누구를, 어디까지 죄를 물어 다스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연히 죽을죄를 졌다고 생각하는 아이히만도 본인은 상부의 지시에만 따른 사람이고, 한 국가의 법과 제도에 의한 행동이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는 처벌받을 수 없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은 유대인의 고통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행동했다는 진술 혹은 정황이 나타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친일파인 이완용에 대하여 얼마만큼이나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조사를 통한 비난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완용의 죄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을 것이지만, 그러한 내용을 아이히만의 재판에서처럼 제3자의 시각에서 조목조목 밝혀내는 노력이 지금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아이히만의 전기가 아니다. 아이히만이라는 한 인물의 사례를 바탕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철학적 고민을 적은 교양서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치 프랑스의 드레퓌스에 대한 주인공이 유명하지만 실제로는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통해 당시 프랑스와 유럽에서의 지성인들의 사회상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플롯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제에서처럼 저자가 이야기하는 말하기와 생각과 판단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악의 평범성’은 언제라도 불쑥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에 알아서는 안될 사실을 알게된 것 같은 기분나쁜 쭈뼛함이 남는, 생각할거리가 많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