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묘사가 정말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델리아 오언스는, 미국 조지아대,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학과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주인공인 카야가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개성있는 문체가 기억에 남았다. 너구리가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흙탕물에 들어갔다 나온 자국, 달팽이 한 마리가 그리던 레이스 같은 무늬가 곰의 등장으로 끊어진 자국 등등 표현이 참 예민하고도 구체적이다. 또 이 작가는 동물학 이외에도 시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인것 같다. 카야의 첫사랑이었던 테이트는 아버지를 따라 시를 읊곤 하는데, 물론 번역된 시구인 탓에 완벽하진 않겠지만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줄거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에서는 늪지에 살던 카야가 가정폭력과 외로움으로 얼룩져버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학교에도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카야는 늪지에서 온 야만인 취급을 받으며 상처만 받았다. 그러다 첫사랑이었던 테이트를 만나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벅찬 설렘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아픈 잠시동안의 이별도 맞게 된다. 나는 특히 작가가 이렇게나 깊은 외로움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테이트와의 이별을 마지막으로 1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슬프고 고독하기만 한 카야의 인생에 나는 큰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없고, 돌봐줄 가족도 없이 여리고 여린 어린 여자아이인 카야는 해적 놀이를 하다 발바닥에 못이 박히는 큰 사고를 당해도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 폭력적이고 불안한 언행으로 가족을 다 떠나보내게 만든 아버지에게 마저도, 아버지가 약간의 호의를 베풀자 카야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마음을 연다. 이쯤되니 카야가 불쌍해져서, 대체 언제쯤이면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2부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실 카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느라 마을의 인기있는 청년인 체이스가 습지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야기는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간중간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작가는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인지 미스테리 소설인지 장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1부에서도 약간의 암시는 있었지만, 카야는 항상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아웃사이더였다.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 오면서, 아마 마을 사람들과 카야 사이에는 크나큰 오해의 벽이 만들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변호사와 오래 전 헤어졌던 오빠 조디, 테이트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카야는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특히 무죄 판결 이후에 털어놓는 카야의 속내가 그렇다. 카야는 난 한번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미워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카야는 한평생 고생만 했는데, 누명을 벗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별로 누리지도 못한 채, 지나간 시간을 원망만 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이 책이 작가가 일흔의 나이가 되어 처음 쓴 소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어찌 보면 고독, 외로움은 인간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누구나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그 외로움을 깊고도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능력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작가는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부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카야는 어려서부터 떠난 어머니가 다시 돌아올것이라고 믿었고, 아버지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기대가 여러 번의 상처와 배신에 무뎌지면서 카야는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호소력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카야가 느꼈을 고독은 어둡고 슬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네 잘못은 없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카야를 위로해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