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지배하는 진리라는 것이 존재할까? 있다면 무엇일까? 인지혁명을 통하여 가상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인간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 근원적 질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그러한 인간의 노력이 크게는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으로 대별되며 발전해 왔고 자연과학 분야만 하더라고 물리학, 양자역학, 생명공학 등 다양한 갈래를 이루며 크나큰 성과를 만들어 냈다. 특히 양지역힉, 뇌과학 등 일부 분야에서는 지난 1만년간 인류의 업적을 단숨에 뛰어 넘을 발견 들이 20세기 들어서 일어났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개별 학문의 한계와 다른 학문과의 통합 가능성 때문에 '통섭'이라는 이름의 학문적 접근 방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이번 책을 통섭의 영역으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이번 책에서 물리학자로서 물리학의 관점으로 다른 학문 분야의 대한 해석을 과학 지식이 빈약한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비교적 쉬운 용어로써 풀어내고 있다.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잠깐 들여다 보자.
우주는 시간, 공간, 물질로 구성된다. 그리고 물질은 '기본입자'라 불리는 것들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기본 입자가 가진 모든 특성을 물리학의 '표준모형'으로 완벽하게 기술된다. 표준 모형에 나오는 기본 입자 17종 가운데 몇 가지만 소개해보면 업 쿼크, 타우 입자, 전자, 글루온, 힉스입자 등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그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모여서 그리스 문명 이후 그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의 최소 단위라고 여겨졌던 원자가 된다.
기본 입자와 원자 사이의 관계는 미묘하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된다. 전자는 기본 입자의 하나이며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기본 입자가 아니다. 양성자는 업 쿼크 두개, 다운 쿼크 하나, 모두 세개의 기본 입자로 되어 있다. 쿼크는 글루온이라는 또 다른 기본 입자에 의해 단단히 묶여 있다. 원자만을 연구하는 연구자는 쿼크나 글루온이라는 기본 입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연구하는 데 지장이 없다. 기본 입자들이 모여 원자가 되면 기본 입자와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더구나 새로 나타난 특성을 기본 입자로부터 예측하기 힘들다. 이처럼 존재하지 않았던 예측하기 힘든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는 것을 '창발'이라 부른다.
자연에 존재하는 원자에는 92 종류가 있다. 이들은 원자핵에 있는 양성자의 수로 특징 지워진다. 양성자가 한 개면 원자 번호 1번, 두 개면 2번, 이런 식이다. 1번 원자를 '수소'라고 부르고 2번 원자를 '헬륨'이라고 부른다. 원자가 모이면 분자가 된다. 탄소 원자 하나에 산소 원자 두 개가 결합하면 '이산화탄소'가 되는 데 이처럼 단순한 분자로부터 788개의 원자가 모여 만들어진 '인슐린'같은 거대 분자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기본 입자로부터 원자의 창발이 일어나는 것 같이 분자는 원자의 집단에서 나타난 창발의 결과이다. 기본 입자와 원자의 관계를 한글 자모와 단어의 관계라 한다면 원자와 분자의 관계는 단어와 문자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원자로써 수소는 폭발성이 있는 기체이지만 영하 253도 이하가 되면 액체가 된다. 고온 및 고압에서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의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때문에 태양이 빛과 열을 낼 수 있으며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될 수 있었다. 산소는 반응성이 강한 원자로 다른 원자들과 마구 결합한다. 이 때문에 지구상 물체 표면의 대부분은 산소로 뒤 덮여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산소는 영하 183도 이하에서 액체가 된다. 이런 특성을 가진 수소와 산소가 만나면 우리에게 친숙한 물이 되는 데 물은 상온에서 액체이며 0도 이하에서는 고체가 된다. 수소와 산소 원자 각각을 아무리 들여다 본들 이 같은 물의 특성을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지구의 지각을 이루는 원자를 질량비 큰 것부터 순서대로 쓰면 산소, 규소, 알루미늄, 철, 칼슘, 나트륨 순이다. 우리 은하를 이루는 원자의 경우는 순서가 조금 달라서 수소, 헬륨, 산소, 탄소, 네온, 철, 질소, 규소 순이다. 태양과 같은 별 속에서 벌어지는 핵 융합의 결과로 양성자 수가 증가한 결과이다. 산소와 규소는 지구와 우주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지만 지구에 비하여 은하에 상대적으로 많은 원자는 탄소와 질소이다. 탄소와 질소는 지각을 이루는 광물과는 전혀 다른 물질을 만들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생물이라고 부른다. 지구상 생물은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로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탄소를 기반으로 한다. 일렬로 연결된 탄소 주위에 수소와 산소를 적절히 배치하면 탄수화물과 지질이 된다. 탄소야말로 생명의 원자이다.
지구에서 생명은 광합성 생물과 산소 호흡 생물의 공생으로 유지된다. 이 공생의 핵심은 탄소를 주고 받는 것이다. 동물은 산소를 들이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들이 마신 산소는 탄수화물을 연소시킬 때 사용되는 데 동물은 여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식물은 태양 에너지로 이산화탄소를 분해하여 탄수화물을 만들고 부산물로 산소를 버린다. 동물들이 연소시킨 탄수화물은 사실 식물의 몸뚱이다. 이렇게 식물은 동물에게 탄수화물의 형태로 탄소를 주고 동물은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탄소를 되돌려 준다. 이것이 지구 생태계가 수십억년 동안 지속해 온 탄소 순환의 메카니즘이다.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종류도 많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지만 본질은 같다. 원자들을 재배치 하는 것이다. 일군의 레고 블록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가 분해해서 다시 비행기를 만들 듯이 원자들은 탄수화물에서 이산화탄소로 그냥 새롭게 재배열될 뿐이다. 이것이 화학의 핵심이다. 사실 생명은 자동으로 작동하는 분자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계는 수많은 효소가 제어하는 화학반응으로 구성된다. 결국 생명의 특성은 효소, 즉 단백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유전자도 중요하다. 유전자는 다름 아닌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담고 있다. 유전자도 원자로 되어 있다. 유전물질인 DNA는 탄수화물, 지질,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탄소, 질소, 산소, 수소로 되어 있다.
인간은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산물이다. 그때 그때 더 잘 생존하거나 더 많은 자손을 남긴 개체의 유전자가 더 많이 남아서 진화가 일어난다. 생명의 진화 대부분은 누더기 덧대듯이 그때 그때 제 멋대로 일어난다.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의 진화가 필연인 것도 아니다. 진화는 무작위적인 과정이다.
무작위적인 진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른 인간은 언어라는 가상 셰계를 만들어 냈고 이를 통해 다른 동물 사회보다 더 강력하고 정교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회를 구성하였으며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인간도 다른 광물과 마찬가지로 원자의 칩합체에 불과하다. 허무주의에 빠질만한 이야기이지만 단지 위안이 되는 사실이 있다면 원자 수준에서 모든 인간은 영생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