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성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통제해 절제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자율성의 바탕에는 ‘절제’라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참는 것도 배워야 한다”라는 것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것들이 있다”라는 것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 아이가 싫어하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다. 기질 상 성격이 급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님 원래 이 나이 대에 참을성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윤이에게 필요한 훈육은 “참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라는 것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보챌 때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나는 왜 그럴까? 아이의 욕구를 충족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바심이 생기고, 일단 아이가 보채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져서 그런 정신없는 상황이 아주 거북스럽다. 나의 이런 특징 또한 왜 그런지에 대해 분석하기보다 곧이곧대로 인정해줘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것 또한 내 고유의 성질이니까 말이다. 이런 내 성질과 아이의 성질이 배치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참는 것도 훈련시켜야 할 것 같다.
자율성을 높이는 부모의 말투: 왜냐하면, 예를 들어, 만약
- 나윤이가 점점 내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있으니 내 말투에 민감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책에서 말해준 대화 스킬을 연습해서 활용하면 지시적 어투를 많이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만약에!
아이에게 몇 가지 선택권을 주고, 아이가 결정하도록 하는 방법이 자율성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 이 방법 꽤 괜찮은 것 같다. 부모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이가 자유롭게 선택해서 행동하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윈윈이 될 것 같다.
아이들은 행동에 책임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이는 부모를 괴롭히려는 의도가 없다. 부모로부터 갖고 태어난 기질대로 아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는 중이다.
- 나는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윤이가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어른의 시점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라면 저럴 수 밖에 없는데, ‘왜 저러지?’,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지?’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들이 확 올라오는 것 같다. 이것도 피해 의식에 해당되는 건가?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이런 생각과 감정들을 의식적으로 필터링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자동적으로 생각과 감정들이 변환되지 않을까? 아직 나는 초보 엄마다. 3년차 엄마이니까 당연히 서툴 수 밖에 없다. 아이 뿐만 아니라 나, 남편, 내 주변 가족들에게도 아직 나윤이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초보라는 걸 기억하고 대해야 할 것 같다.
훈육의 목적은 아이가 올바르게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배움이 일어나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급하게 제지해야 하는 상황, 따끔하게 일러주어야 하는 상황일때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해야 할 때이다. 안된다라는 얘기를 할 때 명령, 설교식 대화, 협박, 비교, 비난 등의 말투는 감정만 상하게 하고 효과는 없다. 안된다라는 얘기를 할 때에는 부모 감정을 배제하고 아이 감정을 헤아려주되 단호해야 하며 정확하게 부모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 흠, 명확하고 단호하게는 말할 수 있겠고 감정도 헤아려줄 수 있겠으나 내 감정을 배제하고 말한다는게 참 어려운 것 같다. 반복적으로 훈련하다보면 잘할 수 있으려나?
아이의 선택이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선택이 아이의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면 그대로 둔다. 그래서 아이가 실패하는 경험을 겪고 다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 아이 선택에 대해 자율성을 주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줘서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이의 안전과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는지 여부. 이 기준들을 토대로 내가 행동하면 나의 행동에 일관성이 생길 것 같다.
부모의 마음이 불편하기에 아이 대신 해주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니, 주의하자.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격려해주는 것은 아이의 연약한 부분, 실패를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