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처럼 인공지능이 주목을 많이 받는 때가 있었던가. 스마트폰이 10년만에 한국을 휩쓸고 세대의 모습을 바꿔 버렸는데, 인공지능은 그보다 더한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는 거엔 이견이 없다. 이런 측면에서 AI지도책이라는 책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제목이었다.
인공지능이 정치와 경제 활동에 깊이 스며들고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자신과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에 AI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인공지능의 사회적 의미를 선도적으로 연구하는 케이트 크로퍼드는 10여 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AI가 추출의 기술임을 확신한다. 현대 AI 시스템은 지구의 에너지와 광물자원, 값싼 노동력, 대규모 데이터의 추출이 필수 요건이라는 것. 이 책은 미국 네바다의 리튬 광산에서부터 아마존 창고와 시카고의 도축장, 데이터 센터,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파푸아뉴기니의 산악 마을, 스노든 자료실, 텍사스 서부의 로켓 기지 등에서 AI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이러한 전 지구적 네트워크가 어떻게 해서 비민주적 통치와 불평등을 증폭하는지 폭로하면서 AI를 만드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AI가 어떻게 권력을 집중하는지에 대한 물질적이고 정치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다양한 자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세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위기에 처했는가를 설득력 있게 서술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AI(인공지능)’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대 과학과 첨단 기술의 정점으로, 또는 인간이 풀지 못한 문제까지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놀라운 존재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는 맹목적인 신뢰가 빚어낸 환상일 뿐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미국 뉴욕 대학교 AI 나우 연구소의 공동 설립자이자 인공지능의 사회적 의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케이트 크로퍼드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그것이 어떤 함정을 만들어내는지 낱낱이 파헤친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인간 정신과 비슷한 시스템을 백지상태에서 만들어낼 수 있고 인공지능을 자연적이며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로 받아들이지만, 이는 너무나 단순하고 편협한 인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AI가 ‘인공’적이지도 않고 ‘지능’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인공지능은 체화되고 물질적인 지능이며 천연자원, 연료, 인간 노동, 하부 구조, 물류, 역사, 분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AI 시스템은 자율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대규모 데이터 집합이나 기존의 규칙 및 보상을 동원한 방대하고 집약적인 훈련 없이는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한다. 사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인공지능은 훨씬 폭넓은 정치적ㆍ사회적 구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또한 AI를 대규모로 구축할 자본과 AI를 최적화할 방법이 필요한 탓에 AI 시스템은 궁극적으로 기득권에 유리하게 설계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은 권력의 등기부인 셈이다.
이 책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폭넓은 의미에서 들여다보고 인공지능을 빚어내는 경제적ㆍ정치적ㆍ문화적ㆍ역사적 힘을 탐구한다. AI를 이 넓은 구조와 사회체제에 연결하면 우리는 인공지능이 순전히 기술적 영역에 속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본적 차원에서 AI는 기술적 행위이자 사회적 행위요, 제도이자 토대요, 정치이자 문화다. 연산 추론과 체화된 일은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AI 시스템은 사회관계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동시에 생산한다.
이 책에서는 AI를 ‘정치, 노동, 문화, 자본을 아우르는 대규모의 산업적 구성물’이라는 의미로 쓴다. 사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는 마케팅에서 더 많이 쓰인다. 자금 지원을 신청하는 기간이나 벤처 투자가들이 수표장을 들고 찾아올 때, 연구자들이 새 연구 결과에 대해 언론의 주목을 끌고 싶을 때는 AI라는 용어가 곧잘 동원된다. 이 때문에 AI라는 용어는 채택되기도 하고 거부되기도 하면서 의미가 끊임없이 달라진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어떻게 지도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지도책 비유는 곧 인공지능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다. 인공지능을 추동하고 지배하는 국가와 기업, 지구에 흉터를 남기는 추출식 채굴, 데이터 대량 수집, 이를 떠받치는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노동 관행 등을 설명하는 AI 담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형학적 접근법은 인공지능이나 최신 기계학습 모형의 추상적 약속을 넘어선 새로운 관점과 규모를 제시한다. 그 목적은 연산의 다양한 지형을 주파하면서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봄으로써 AI를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AI 분야에 존재하는 것은 열어야 할 하나의 블랙박스, 폭로해야 할 하나의 비밀이 아니라 수없이 얽힌 권력의 체계이다. 그렇기에 완전한 투명성은 불가능한 목표다. AI가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하려면 물질적 구조, 맥락 환경, 지배적인 정치적 성격에 주목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추적해야 한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사상은 과학ㆍ기술 연구, 법학, 정치철학을 배경으로 10년 가까이 학계와 업계 AI 연구실에 몸담은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