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의 두번째 도서로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게 되었다. 평소 자기계발서는 쳐다도 보지 않는 편인데, 독서모임을 통해 이렇게 전혀 취향에 맞지 않는 책을 읽게 된게 신기하다.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원서 제목은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이다. 국내 출판사가 상당히 제멋대로 제목을 번역해버렸는데, 확실히 책의 내용은 원서의 제목과 훨씬 잘어울린다. 이 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하는 책이 아니다. 단순히 비즈니스에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고민에 대한 이 책의 대답은 상당히 심플하다. 겸손한 태도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보여주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줘라.
앞에서 얘기했듯이 원래 자기계발서를 별로 안좋아하기 때문에 이 책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럴듯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에 대해서 심플한 해법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는 서술 방법은 좋았다.
이 책에서 제시한 인간관계론의 원칙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 바를 말해줘라"라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같지만 막상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나도 모르게 내 사정,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말해왔던 것 같다. 나에 대한 얘기가 상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는 케이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건 오로지 상대방의 선의, 자비 등에 따른 결과였다. 내가 주도권을 갖고 상황을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상대방이 내 얘기를 듣고 싶어하도록 만들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카네기가 제시한 원칙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책 전반적으로 카네기가 제시한 인간관계론의 원칙을 지키며 살게 되면, 너무 피상적인 인간관계에만 몰두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에서 카네기는 상대방에게 "진심"을 다한 관심을 가지라고 하였고, 진심어린 관심을 통해 맺게된 관계는 피상적인 관계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카네기의 원칙들을 지키려 노력하면 과연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지는 회의스럽다. 상대방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상대방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사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보다는 상대방이 좋아할만한 소재, 상대방이 듣고자 하는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런 노력으로 가득찬 관계는 일종의 '노동'이 되지 않나 싶다.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 관심은 없고 그 자리를 업무대상으로서의 관심이 채우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카네기 인간관계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원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상적인 비즈니스 인간관계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이라기 보다는 내가 상대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카네기의 원칙대로 나를 대해주면 참 일하기 편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며 강제로 읽게 만들수 없으니 아쉽지만, 내가 먼저 이 원칙대로 사람들을 대하다보면 상대방도 내 태도에서 뭔가 깨닫는게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독서통신연수로 책을 두 권 신청할 수 있었는데, 이 책과 함께 신청한 다른 책인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다. 재밌는 건 '사랑의 기술'에서 이 책을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사랑의 기술은 인간 본연의 생산적 정신 활동으로서 상대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한 책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 책을 자본주의 가치가 그 구성원들의 정신상태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한다. 이해관계에 집착하여 본질이 아닌 상대의 표면에만 관심을 주는 소통방식을 비판한 것이다.
앞에서 쓴 것처럼 나도 이렇게 피상적인 인간관계에만 집착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카네기의 원칙들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 그 구성원들과 잘 맞물려 돌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유용한 인간관계의 기술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