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박영규 작가의 '한 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은 역사 대중화의 기수인 저자의 '한 권으로 읽는 왕조실록' 시리즈 중 한권으로 우리가 스스로의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무지하고 무관심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 4~50대 또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독자라면 식민사관에 너무나도 충실한 역사교육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고대 왕국들이 철저히 한반도 내에 위치했었다고 배우고, 그나마 고구려 전성시대에 만주일부를 점령했다는 피상적인 향수정도를 가지게 되는 반면에 박영규 작가의 도발적인 역사서 해석과 추리는 우리 선조들의 무대를 한반도 밖으로 무한 확장시키고 있다. '한반도 백제'와 '대륙 백제'로 나누어진 일종의 제국을 경영했다는 내용은 통쾌함을 넘어 온몸에 전율이 돋게 한다. 물론 이를 통해 근거 없는 자신감과 우월주의에 빠져서도 안되지만, 저자의 주장이 어떠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고 책을 읽다 보면 백제라는 나라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큰 나라였고 아무리 상상을 하더라도 그보다 더 큰 나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제'라는 이름을 불러보면 이상하게 쓸쓸하고 측은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고구려 건국 초기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고향땅을 버리고 남쪽으로 망명길에 오른 백제 건국의 과정과 대륙 백제의 건설과 상실, 외세에 의한 망국에 이르는 과정 때문일 수도 있지만, 백제 몰락이후 신라에 의한 백제 역사의 축소, 특히 대률 백제의 존재를 완전하게 폐기 처분함으로써 백제를 한반도 남부의 자그마한 국가로 전락시킨 이유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는 말이없다는 격언이 백제의 역사에 대해서 가장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을까? 중국의 '남제서', '송서', '수서' 등에 백제의 진면목에 대한 기록들이 극히 일부라도 남아있고, 그 내용을 끈질기게 연구하고 역사적 상상력을 덧붙인 저자의 노력이 있어 극히 일부라도 대국으로서의 백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상사할 수 있게 되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중국 사서들의 기록들이라도 남아있지 않았다면, 백제는 영원히 한반도 남부의 별볼일 없는 소국으로 기록될 것이고, 우리는 백제의 진면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역사와 문화와 영토를 논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사서들에 언뜻언뜻 비치는 백제 관련 기사들을 모두 동원 한다고 해도 백제의 광할했던 영토 전체를 알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현재 남아있는 사료만으론 백제인들이 어떤 경로로 대륙에 진출 했으며, 어떻게 대륙 백제를 확대해 나갔으며, 어떤 방식으로 대륙을 경영했으며, 어떻게 수백년 동안 그 땅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대륙 백제의 역사가 없는 백제사는 반토막의 백제사다. 이 책 역시 그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록 대륙 백제의 형체라도 그려보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있었지만, 사료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의 진짜 모습은 이 책에서 그려진 백제보다 훨씬 크고 대단하다는 것이다. 역사학은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작업이 아니고, 없는 것을 지어내는 작업도 아니다. 동시에 있는 것을 감추거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작업도 아니다. 역사학은 있었던 것에 대해 정직하게 인정하는 작업이다. 백제사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남아 있는 기록에 대해 인정하는 학문적이 태도다. 그래야만 백제라는 거인을 만날 수 있다. 끝으로 백제 역사를 둘러싼 갈등을 대하는 저자의 글 일부를 인용하며 마칠 까 한다.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 시키는 제국주의 사관이 논할 가치도 없는 형편없는 논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굳어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식민사관에 매달려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사를 민족 감정적인 차원으로 이해하고, 그 해석을 바탕으로 또 하나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형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시각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역사는 감정의 대상이 아니고, 학문의 대상이다. 역사를 감정의 골 속에 가둬두면 둘수록 우리의 역사는 점점 미궁에 빠져들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우리의 역사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