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선택한 이유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지만 얼마전 티비에서 방영한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시청했기에 왠지 나에게 신선한 해방감같은걸 선사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였다. 책제목은 다소 내용이 무거워 보였지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전라도 사투리로 쓰여진 내용들은 읽는 속도도 이해되는 속도도 현저하게 떨어져 재미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긴 했다. 정독하면서 읽어야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편한함에 읽는 소설이지만 이 책은 정독아닌 정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걸쭉하고 맛깐난 전라도 사투리가 빨치산 아버지의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었던것도 같다. 말로만 듣고 교과서에서 읽었던 빨치산, 아버지가 빨치산이고 주인공 아리는 빨치산의 딸이다. 이분법적인 우리나라의 사회적 구조속에서 빨치산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간다는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빨치산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대로 주변을 돌아볼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본인의 신념대로만 살았을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누군지도 모르는 방울장수 여인을 하룻밤 묵을 곳이 없을 떄 인민을 위한답시고 집에 데려와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한 아버지의 모습만 봐도 숨이 막힌다. 가족들의 안위와 배려보다 중요한게 무엇일까? 매달아 놓은 마늘 반접은 사라지고 민중이 남기고 간 건 벼룩이었다. 그 대목도 답답하지만 그런 상황을 배신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죽하면 그깟것을 두고두고 안타까워한 대목이다. 경찰에 잡혀가 온갖 전기고문을 받아 휴유증으로 임신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어렵게 딸을 얻었는데 그렇게 소중한 떌에게도 낯선사람의 벼룩정도는 사회주의라는 신념앞에서 별게 아닌일이 된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사회주의라는 사상과 신념이 얼마나 멩목적인지 알 수 있다. 신념도 신념이지만 '사람이 오죽하면 글것냐' 아버지의 말한마디에 사람이기 떄문에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반성도 하는거라고 ... 정을 느낄수 있는 대목이었다. 주인공도 항상 무뚝뚝하고 엄한 모습만 보이며 개인적인 감상 따윈 부끄럽게 만드는 아버지의 단호한 눈빛이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모습 전부라고 생각했다. 빨치산인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빨치산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온 아리, 아리는 사랑하는 사람과도 혜어졌어야 했고, 평생 자랑스러운 형이었으나 할아버지의 죽음이 아버지의 탓이라 생각하며 평생 원망하고 미워했으나 곁을 떠나지 못했던 작은 아버지, 빨갱이의 조차라는 이유만으로 육사입학을 거부당했던 사촌오빠,, 그 시대엔 모든것이 죄이고 짐이었지만 덤덤하게 아버지와의 기억들을 풀어내면서 드들은 아버지에 떄한 미움을 놓아버렸던 것 같다.
아리 또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손님들과의 이야기속에서 그동안 알고, 보고, 느꼈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상주로서 장례식장을 찾은 고향 친척들, 동네 친구들, 사회주의 동지들로부터 들은 아버지와의 추억과 고마웠던 일들 이야기를 들으며 생전에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극히 단편적이었음을 알게 되는 주인공 아리. 그동안의 오해와 묵었던 감정을 풀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라는 위치가 어릴떄는 어머니보다 가깝게 지내기 어러웠고 커서는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와 대화도 많은 시간도 보내지 못해서 어버지를 온전히 알기 어려웠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물리적인 절차였을 뿡이었는데 주인공인 아리는 장례식을 치르는 3일동안 그동안 지내온 세월보다 아버지를 아는분들과 만나 과거를 떠올리며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을것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직하고 고집센 주인공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아버지를 보는듯해서 울컥했었고, 인심좋아 불편했던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들을 돌아볼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소설 중 인상갚은 구절로 마무리할까 한다.
'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말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삻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속에 부활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