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7년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과거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책이다.
사실 내가 가장 처음 저자의 이름을 들었던 것은 중학교 때였나.. ‘해변의 카프카’라는 이름의 책의 저자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책을 읽지는 못하고, 일본 소설의 거장이라는 것만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같은 일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읽으면서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용의자 X의 헌신’, ‘가면산장 살인사건’ 등의 책을 읽으면서 독특한 세계관과 작품의 넓은 스펙트럼에 감탄했던 게 자연스럽게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로 이어졌고, 그의 책 중 처음 읽은 책은 ‘기사단장 죽이기’ 였다. 방대한 양과 세계관 때문에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몰입감이 매우 높았었다. 책 뒷표지를 덮었을 때 당연히 그의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을 찾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이제서야 내가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도쿄에서 대학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이었다. 유일했던 친구, 모든것을 다 가진, 그래서 세상을 참 쉽게 사는것처럼 보였던 기즈키의 자살 이후, 공동의 상실감을 가진 기즈키의 여자친구인 나오코와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그렇게 어색한 만남을 이어가던 중 와타나베는 나오코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다. 죽은 친구의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와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 아끼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이 사랑으로 바뀌는 게 가능할까? 싶었지만, 나오코의 생일에 와타나베는 나오코와 함께 밤을 보낸다. 묻지 않아야 될 질문에 나오코는 대답을 미루고 종적도 감추게 되며 꿈처럼 그녀와의 시간이 희미해지게 되던 중 편지를 통해 나오코가 스스로를 치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한 요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찾아간다. 성숙해 보이는 나오코를 보며 와타나베는 또 한번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낀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로 돌아와 나오코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며 인연을 이어간다. 겨울방학이 되자, 나오코의 요양원을 다시 찾아가 도쿄에 와서 같이 살자고 제안하였으나, 나오코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얼마 뒤,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와나타베의 절친이었던 기즈키와 나오코는 3살 때 처음 만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키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으나, 17살에 기즈키가 자살을 하며 이별을 겪었다. 나오코의 여섯 살 터울 언니도 17살에 자살을 했었는데.. 나오코는 “성장의 고통 같은 것”이라는 표현을 했다. 그처럼 자살을 택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코는 상실감에 몸부림 쳤으리라. 마찬가지로 주변인의 두번째 자살로 방황을 하던 와타나베. 그의 앞에 레이코가 찾아온다. 프로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그녀는 큰 콩쿠르대회를 앞두고 새끼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증상으로 원인을 찾지 못한 채 피아노 레슨을 하며 살아가던 사람이었다. 나오코의 죽음에 이야기를 하며 나오코를 위한 추모 연주를 하고, 같은 상실감으로 서로를 위로하게 된다.
그 사이, 대학교에서 알게되었던 미도리는 와나타베를 좋아하며 줄곧 자신의 마음을 어필한다. 나오코에게 대한 마음이 있었던 와타나베는 미도리에게 철저히 선을 그었다. 소설 후미에 와타나베는 레이코와의 밤을 보낸 뒤 미도리를 찾았으나, 그 전까지 와타나베와 미도리는 육체적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
‘노르웨이의 숲’의 등장인물은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다른 상처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그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곡처럼 한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나 싶다. 그래도 그렇지, 이 책에서는 자살한 사람이 너무 많이 나온다.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공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또 다른 상처받은 사람을 만나 위로받고, 위로하고, 공감하며 섹스와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된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1960년대의 혼란을 적나라히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긴 여운이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