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조그만한 의자에 홀로 앉아있는 한 사람이 그려진 표지와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책 제목만으로 “나”에 대한 성찰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오려주는 책이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책은 “한아뿐”이 연음발음된 ‘하나뿐’이 아니라, 주인공 “한아”를 사랑하여 2만 광년을 날아온 외계인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아주 먼 별에서 지구에 있는 “한아”를 지켜보던 그 외계인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여 한아의 남자친구인 경민의 모습으로 나타나 옆에 있고 싶었던 마음 그 자체를 제목으로 삼았던 것 같다.
늘 제멋대로였던 한아의 남자친구 경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배려하는 마음씨를 가진 한아, 외계인은 너무 특별한 한아에게 무심코 대하는 경민이 못마땅했고, 본인이 살던 별과 우주 자유여행권들을 한아와 관련된 정보로 바꾼 뒤 우주여행을 떠나보낸 경민의 모습으로 한아 옆에 나타났다. 그 일방적인 용기와 희생을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한아의 옆에 있고 싶어서 자신의 정체를 밝혀냈고(실제로 외계인은 자가분열로 번식을 하는데다가 인간보다 강한 집단 무의식으로 꿈이 이어져 있는, 약 40퍼센트 정도 광물로 이루어진 특이한 생명체였다), 한아는 말도안되는 얘기에 정신을 못차렸지만, 아무 특별할 것도 없는 자신에게 반하여 가늠도 안되는 거리를 날아와 온 외계인 경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외계인 경민은, 한아의 일관성에 대하여, 비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고, 한번도 만난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하는..선험적 이해력을 가진 모습에 끌렸다. 파괴적인 종족인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고 그래서인지 자신과 가깝다고 느끼면서, 아름다웠고, 빛났고, 눈부셨다는 고백을 했다. 그런 그를 보며 한아는 어느덧 그가 자신에게 와준 것이 우주적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존재에 대한 불안함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 속에서 티격태격 하면서도 여러 다른 삶과 동물들과, 다른 외계인들을 보며 함께 공감하고 공유했다. 그리고 결혼까지..
두 사람(?)의 결혼 후 10년이 흘렀다. 더 없이 행복했던 두 사람의 일상에 우주여행을 마친 과거의 경민(한아는 “엑스”라고 불렀다)이 나타났다. 우주여행으로 인해 쇠약한 몸으로, 한아에게 자신이 완전히 잊혀져간다는 걸 느끼고 돌아온 그는, 얼마 안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엑스와 한아의 시간을 위해 외계인 경민은 떠났고, 어느새 한아는 그 망할 외계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인 경민에게서 외계인 경민으로, 무심히 대하던 무뚝뚝한 경민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2만 광년이나 되는 먼 거리를 날아와 곁에 있는 외계인 경민으로 자연스럽게 마음이 전이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온전하게 새롭고 다른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움의 끝에 외계인 경민은 당연하다는 듯 한아의 곁으로 다시 왔고, 그가 곁에 있음으로써 한아는 소멸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자신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음을 깨닫는다.
독특한 발상으로 시작된 이 소설은, 처음에는 터무니없고 허무맹랑하다고 느꼈으나 읽을수록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지구에, 우주에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누군가에게 모든것을 포기하고 옆에 있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 혹은 그 반대의 상황에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아가 생각한 우주적 행복이 아닐까 싶다. 정말 소설같은 상상력이고, 순정만화 같은 설정이지만 읽는 내내 한아가, 그리고 그런 사람을 찾고, 선택을 하고 실행에 옮긴 외계인 경민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동안, 이 우주에 수많은 생명체 중 과연 얼마가 어느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볼 수 있을까? 가능할까? 설령 그렇게 큰 희생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것들을 포기하면서, 혹은 그런 사람이 곁에 있음에 행복해하면서 지금 주변에 있는 누군가에게 우주적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나 스스로가 행복한 일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