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 한 살의 청춘이었다.
안중근의 이런 뜻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안중근은 황해도 해주의 명망 높은 족벌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고, 집안에서는 작은 학교라도 차려서 교육으로 백년 앞을 준비하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빌렘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이기도 했다. 시국은 어수선 했지만 일가를 이루며 편안한 일생이 보장된 환경이었다. 그렇지만 안중근은 고향에 안주하지 않고 출입이 무상했다. 한번 나가면 멀리 다녔다. 안중근의 아명은 응칠이었는데 아버지 안태훈은 어렸을때 부터 밖으로 나도는 아들의 기질을 눌러주느라고 무거울 중과 뿌리 근을 써서 중근으로 이름을 바꾸어 주었다. 그렇지만 개명은 안중근의 기질을 바꾸지 못했다.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31살의 안중근의 일생을 보면 33살 예수가 생각나는 것은 나만일까.
이 책을 통해 명문장이나 기억하고픈 문장을 기록해 보고자 한다.
안중근은 이 마을에서 빌렘에게 세례를 받고 입신했다. 그때 안중근은 19살이었다. 안씨 가문의 위세는 서양인 신부들이 이끄는 천주교회의 세력에 기대고 있었다. 안중근은 자신의 가문과 밀착된 교회의 세력과 신앙의 순수성을 구태여 구분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그 양쪽을 모두 받아들였다.
일본의 군주는 이 세계의 바다와 대륙을 들여다보고 있다. 철로가 깔렸으므로 조선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쇠가 이 세상에 길을 내고 있다. 길이 열리면 이 세계는 그 길 위로 계속해서 움직인다. 한번 길을 내면 길이 또 길을 만들어내서 누구도 길을 거역하지 못한다. 힘이 길을 만들고 길은 힘을 만드는 것이다.
이토의 연설문을 통해 조선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자.
조선의 병통은 고루한 유생의 세력이 황실과 밀착하고 군중을 선동해서 소요를 일으키는 사태이다. 이 유생들은 대대로 산림에 칩거하면서 유수와 부운을 바라보면서 공맹의 치교를 뇌까리며 사물을 외면하고 인간의 성리를 갑론을박하면서 음풍농월과 공리공론으로 허송세월해온 무리이다. 이자들은 사리에 우원하고 시무에 오활하다. 조선 유림의 사표로 일컬어지는 최익현의 고루함을 보라. 그가 이 세계의 물성에 관하여 무엇을 아는가. 그가 역사의 층위와 발전 원리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시대의 전개방향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 그가 힘의 작동 원리를 아는가. 그가 웅장하고 허망한 언사를 설파함으로써 약동하는 세계의 풍운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이런 무리에게 시운을 기탁한다면 조선은 스스로 보전할 수 없다. 스스로 독립할 힘이 없는 자는 적대하는 여러 방면의 힘을 끌어들여서 그 완충의 자리에서 홀로 설 수 없다. 여러 힘들이 조선 반도에서 부딪치면 평화는 기약할 수 없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길은 제국의 틀 안으로 순입하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의 독립이고 동양의 평화이다.
전쟁의 결과가 섬멸적인 압승일수록 제삼국의 개입을 차단하기가 쉽고 새로운 판도를 기존 질서로 정립시키기가 쉽다는 것을 이토는 청일전쟁이 끝나고 서양 여러 나라들과 외교 분쟁을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수십만의 주검을 치르고 얻은 피의 교훈이었다.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 수록 표적은 확실히 희미해 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쪽 검지 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코레아 후라
미조부치는 위태로운 함정을 느꼈다. 안중근은 '코레아'라는 이름을 내걸고 이토를 쏘았고 세계 공통어 '후라'로 만세를 외쳤다.
재판과정에서 안중근의 정치적 동기를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내 보이고, 문명한 절차에 따라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일본 외무성의 방침이었다.
안중근의 재판정에서 진술한 내용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검찰관은 내가 이토를 오해해서 죽였다고 말하는데, 나는 검찰관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해해서 죽인 것이 아니다. 검찰관이 내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니까 아버지라 말했다고 조서에 썼다. 그 아이가 세 살때 내가 집을 떠났으니 아이가 내 얼굴을 알 방도가 없다. 이로써 검찰 취조가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