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서인 일본사기에는 이런 신화가 있다고 한다. 아마테라스 신의 명을 맏은 츠쿠요미가 우케모치 신을 만나러 가자 우치모치 신은 땅에대고 밥, 바다에 대고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산에 대고 큰 짐승, 작은 짐승을 외치며 입에서 꺼내 대접하였다고한다. 이에 츠쿠요미는 더러운 음식을 대접했다고 죽이자 우케모치 신 머리에서 소와 말, 얼굴에서 누에고치, 눈썹에서 누에, 눈에서 피, 배에서 벼, 음부에서 보리와 콩, 팥을 생겨났으며 아마테라스 신이 기뻐하며 백성의 먹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 음식이 시작을 알리는 신화이다.
신화와는 별개로 일본의 음식문화는 섬나라이기에 역사적으로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포르투갈과 네델란드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고대의 식음료를 살펴보면 홋가이도에서 사슴과 연어가 중요한 단백질원이었고 또한 멧돼지도 산에서 나는 고래로여기고 섭취하였다고 한다. 사슴 피는 건조시켜 강장제로, 멧돼지는 살코기보다 내장과 뼈를 선호하며 염분과 미네랄 섭취원으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고대 일본음식의 특징은 동일본은 수렵과 채집으로, 서일본은 도래인으로 벼농사가 유입되며 서로 융합을 이루는 형태이다. 현재의 주식인 쌀을 조리하는 방법인 뜸을 들이는 조리법은 헤이안시대에 확립되고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확산되어 일반화 되었다. ㅇ그런돼 왜 일찍이 뜸을 들이는 조리를 못했을까? 쌀을 쪄먹으려면 시루가 필요한 데 시루는 후한 진나라때 유목민이 황하를 점령하자 난민들이 연쇄적 이동으로 일본에 들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뜸들이는 조리법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고대 일본은 1일 2식(정오에 아침, 오후4시경 저녁)을 하였으나 딤섬(간단 요리)인 가이세키 요리 영향으로 귀족과 무사 사이에 간식습관이 생기며 1일 3식으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식사도구에 있어서도 일본은 3세기 야마타이국 히미코 여왕이 손으로 식사했다는 기록있는것으로보아 이때까지 맨손으로 식사를 하다가 7세기 초 헤이안시대 쇼토쿠태자부터 시작 젓가락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원래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전래되었으나 숟가락 사용의 불편으로 젓가락만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다랑어는 쿠로시오 난류을 타고 부상하는 해수어로 금방 상하기에 건조시켜 장기 보관, 건조시킨 가다랑어를 가츠오라고 부른다. 일본요리 육수 기본은 가다랑어포 (가츠오부시)와 다시마의 조합이다. 즉 글루타민산과 이노신산의 결합으로 이 가랑어포는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등장하고 에도시대 중요한 조미료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마쿠라와 무로마치시대 요리 차이는 육수내는 방법으로 무로마치 막부시대는 가다랑어포 사용하였으나 가마쿠라 막부시대의 지배층은 가다랑어를 하급생선취급하여 먹지 않았다고 한다. 가다랑어의 일본발음이 가츠오가 이기는 사람이라는 가츠오(이기는 남자)으로 읽히면서 무사들이 출정전 먹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에도 막부시대에 들어와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며 문화생활로 희노애락을 노래하는 하이카이와 하이쿠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음식문화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1629년 하이쿠 행사가 개최되며 술과 요리를 먹는 사교장으로 가이세키가 태동하며 이후 요리점에서 찻자리와 하이쿠 모임이 합쳐져 가이세키라 부르기 시작하며 가이세키요리가 확산되었다. 가이세키 요리의 주재료는 두부로서 두부는 한나라 유방의 손자 유인이 만든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나 유목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당나라 시대에 유목민은 우유를 응고시킨 치즈를 만들었는데 이를 유부라고 하여 사랑받았으나 당의 멸망뒤 콩으로 유부와 비슷한 두부를 만들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일본은 1183년 나라의 신사의 신관일기에서 두부가 등장한다. 두부와 함께 중요한 재료는 “후“이다 "후"는 중국요리에서 가이세키 요리로 이식된 식재료 밀가루에 1% 소금을 넣고 반죽하여 천주머니에 넣어 물속에 넣으면 전분이 분리되어 글루텐이 남는데 이것을 찐 것이 나마후, 끈기를 더해 구운 것이 야키 후(밀개떡)이다. 가이세키요리 영향으로 무로마치 막부시대에 미소된장국이 대중화되었다.
유흥문화의 발달로 또다른 식문화가 나타났는데 에도 막부시대에 서민들의 최대 오락은 가부키로 단원들이 대기실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긴 공연 때문에 관객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락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마쿠노우치 도시락"이다. 또한 서민들의 패스트푸드가 유행하여 소바, 우나기. 스시, 오뎅, 덴뿌라 등이 길거리음식으로 판매되었다. 소바(메밀국수)는 1644년 과자점에서 무시소바를 만들어 팔았으나 2.8즉석 겐돈 포장마차가 소바키리를 판매하며 지금의 메밀소바 탄생하였고 우나기(장어)는 어업량의 한계로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어로 요리한 것인데 후에 밥에 얹어먹는 우나돈이 포장마차에서 판매되었다.
그리고 일본은 메이지유신 전후호 유럽 특히 교류가 많았단 포르투갈 및 네델란드로부터 서구 식음료가 유입되었다. 빵은 16세기 포르투갈 상선에서 전래되었다. 포루투갈어 Pao, 스페인어 Pan이 어원으로 항으로 불렀으며 당시 기록에 밀가루로 만든 떡에 소젖(버터)를 발라 먹었다고 한다. 1869년 메이지시대에 도쿄 분메이도에서 처음으로 빵을 판매하였는데 팥을 넣은 팥빵으로 만쥬의 재해석으로 단판빵의 시초이다. 비스켓도 전래되었는데 라틴어 비스콕투스 (=두 번 구운빵)에서 유래하였고 항해시대의 장기저장식품이다. 덴뿌라도 유럽의 튀김문화가 일본에 이식된 것으로 어원은 temperp(조리) 또는 temporas(사순절) 이라고 전해지나 temporas(사순절) 가 유력하다. 포루투갈의 뱃사람은 사순절전 배에서 고기가 없어 청어 등 생선을 튀겨먹은 것이 덴뿌라의 기원, 또란 선교사들도 일본에서 육재료 획보가 어렵자 생선을 튀겨 먹었고 그리하여 육식금지로 간사이 지방에서 생선살을 튀긴 어묵을 덴뿌라라고 불렀다.
소문화권의 일본은 운하개발로 에도시대에 뱃길이 일본을 하나로 만든 시기이다. 참근교대제는 에도의 문화를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역할
을 하였고 상업 및 문화중심지는 교토와 오사카인 반면 거대 소비도시는 에도로서 두도시간 해운을 통한 교류가 활발였다. 에도의 서민요리와 간사이의 요리집 요리가 서로교류하며 일식이 자리잡았다. 에도의 간장은 교토와 오사카에서 운반되는 “쿠다리 간장”에 의존 (7∼8할의 간장이 오사카 타루 연락선에 의존) 그러나 쵸시(지바현)항에 간장제조법이 전래되고 1640년 에도가와 운하가 개통되며 초시와 노다 간장이 쿠다리 간장을 대체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657년 살생금지령으로 육식이 금지되어 소, 말, 개, 원숭이, 닭 등의 고기를 먹는일을 금하였으나 1872년 메이지천왕이 소고기를 먹으며 육류섭취 금지가 해제되었다. 다이쇼시대가 되며 일본식 양식이 한 문화가 되며 카레라이스, 고로케, 돈카츠 3대 양식이 유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