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가 된 딸과 갈등이 있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사춘기에도 힘들었고 이제 사춘기가 잠잠해진것 같은데 또 다른 문제로 소통이 어렵고 감정이 상했다.
읽다 보니 웬지 내용이 익숙했는데 5~6년전에도 이 책을 읽었던 생각이 났다. 저자가 수도원출신이여서 당시에 읽을때는 웬지 종교색이 짙어 약간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번에 읽을때는 그럼 거북스런 느낌은 별로 없었다.
나는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 딸을 무남독녀로 7년간 키우다가 늦둥이 아들을 낳았다. 늦둥이여서 걱정도 고민도 많았고 아이를 잘 키울 자신도 없었는데 낳자마자 잘생긴 아들에게 반해버렸고 잘생긴 아들은 순둥하기까지해서 정말 온마음을 다해 행복하게 키웠다.
그와중에 초등학교를 들어간 딸에게 살갑게 해주지 못했단 생각도 들고 똑똑한 딸은 아마도 나의 마음을 알아버렸는지 앞에서는 착한듯 행동해도 뒤에서는 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많이 해서 그것이 내 귀에 들어오는 날에는 애를 잡고 난리도 아닌 날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딸이 잘못했다고만 생각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균형잡힌 태도를 나타내지 못했구나 반성도 되었다.
다시 시간을 돌이킬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딸에게 그때 엄마가 너무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너의 마음을 돌보아 주지 못했고 나름 가정사가 힘들때 그 화와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똑똑하고 말귀를 알아듣는데다 아빠를 닮은 아이를 나의 감정 쓰레기통 삼아서 미안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반성을 해도 미안함이 있어도 아이가 맘에 들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할때는 너무 표독스럽게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책과 반성과 후회를 하면서도 완벽한 엄마가 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과 마음을 알아주는지 딸은 엄마를 반은 용서하고 이해하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문과 세대를 이어오는 종교에 대한 갈등과 삶의 가치관의 문제 대학진로등의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책의 내용을 보니 남자아이는 엄마를 자신의 일부로 인식하기때문에 성인이 된후에도 엄마를 아내나 연인처럼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딸은 엄마의 감정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자기라고 느끼면서 엄마의 감정에 매우 민감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딸은 엄마의 요구를 빨리 알아차리고 먼저 맞히는 경우가 많고 엄마는 그것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아들보다 딸에게 더 많이 요구하고 포기나 양보를 구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남편이나 아들에게는 자신을 양보하지만 딸은 엄마의 감정을 알아주니까 감정적인 배출을 다 해버린다는 것인데
이 부분에 100% 공감은 못하겠는데 나중에 더 시간이 지나봐야겠다.
그런데 공감되는 책의 내용이 있었는데 딸을 보는 엄마의 감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딸에게 발견할때 불안하고 불편해하면서 그것을 없애려하고 결핍이 많으면 엄마가 딸을 타인으로 대하지 않고 어린 자신으로 대하면서 막 퍼붓는다는 것이다.
내가 가난하게 자란것도 아닌데 정말 그런 부분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자녀가 많은 우리집이라 엄마가 에너지를 모두에게 쏟기는 정말 어려웠을것이란 생각이 들고 그런 부분에게 나도 모르게 결핍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딸은 전혀 다른 타인이기에 엄마인 내가 먼저 내 상태와 감정 욕구, 요구, 욕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감정을 분리해서 얘기해줄수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아이가 아플때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은 내 잘못에 대한 자책처럼 보이나 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감정이란것이 색달랐다. 이렇게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쓸때 현재 상황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니 이것을 참 쓸데없는 감정이다.
아직까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자는 나는 사실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엄마들은 아이가 나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엄마가 신의 존재인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엄마의 감정을 읽고 그렇게 밀착하고 융합되어 아이의 삶의 영역을 장악하게 된다는 것으로 그러한 의존성은 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언어로 나타낼때 아이는 안전하게 엄마를 인식하고 수용하고 스스로 저항하고 거리두기를 시도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딸도 나와 얘기를 할때 엄마가 무언가를 요구하는데 대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말하는데 그게 사실은 엄마인 나 자신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진정으로 모르기 때문에 나느 그저 네가 잘 되기를 바라지라는 모호하고 무책임한 말을 하기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스러운 응시는 아이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인지하고 각인하게 만든다고 한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아이를 얼마나 쏘아 보았던가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실어 아이를 얼마나 노려보았던가 반성이 된다.
앞으로는 아이를 사랑을 담아 응시하는 작은 노력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