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는 "정치란 사람들이 자신과 관계된 일에 끼어들지 못하게 가로 막는 기술이다"라고 하였다. 이책은 '이제 누가 차려주는 밥상은 걷어차고, 시민인 우리가 스스로 밥상을 차려보면 어떨까? 검찰의 주인은 시민인 우리'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좋은 생각은 책상머리가 아닌 밥상머리에서 나온다.
이책은 '사회적 이목' 밖에 있는, 힘없는 자들 옆에서 저자가 경험한 검찰조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검찰청법 제4조에는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절차를 준수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나쁜놈 잡는 게 검사"라고 말하는 검사들은 넘쳐나도 수사 기소 과정에서 '어떻게 시민에게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할 지, 시민의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할지' 고민하는 검사들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70여년 동안 수많은 공안사건, 간첩 사건들이 수사기관에 의하여 조작되었다. 그 가해의 중심에는 검찰이 있었다. 인권의 보루로서의 검찰은 없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고문을 당하며, 범죄자로서 조작되어야 했다. '법'이라는 길은 하나지만, 법 앞에 선 이들이 마주하는 건 수많은 골목과 벽이다.
이책 <얼굴없는 검사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불의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검찰조직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에서는 형사 사법 절차의 전 과정이 검찰조직이 제멋대로 차린 '밥상'위에서 휘둘리고 있다고 말한다. 상식과 공정은 철저히 무너졌다. 검찰밥상에서는 돈도 안되는 우리 사건은 '버려지는 반찬'이 될 수 있고, '탐욕스런 가해자'에게 '한 끼 식사'가 되어 먹힐 수도 있다고 하였다. 고객이 음식을 주문하면 적당히 대충 만들고, 자기네들이 먹을 것만 맛있게 만드는 곳. 검찰이 바로 그런곳은 아닐까.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를 이책에서 함께 찾을 수 있다.
검사장 출신 한동훈 법무장관은 장관후보 지명 이후 검찰 개혁과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검찰은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고 답했다. 그런데 나쁜 놈들 잡는 역할은 경찰도 하고 있다. 실제 범죄 수사의 99%는 검찰이 아닌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검사는 총기를 소지하지도 경찰과 함께 현장에서 직접 범인을 잡지도 않는다. 검사는 범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피의자를 법원에 기소하는 일을 담담하는 직업이다.
옛날에 원님은 지금처럼 판사, 검사가 나뉘어 있지 않고 권력을 가진 자가 판검사가 되어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 했다.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재판관이면서 동시에 죄를 추궁하는 원님은 잡혀 온 자가 자백을 할 때까지 고문을 서슴치 않는 등 반인권적인 행태를 자행했다. 이런 제도가 행해졌던 때를 '규문(죄를 따져 물음)주의 시대'라고 한다.
르네상스이후 유럽에서는 인권이 중시되면서 규문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었고, 죄를 추궁하는 소추기관과 판결을 하는 재판기관을 권력과 분리해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렇게 시작된 제도가 바로 검찰제도다. 따라서 검찰제도의 핵심은 첫째는 시민들의 인권보호, 둘째는 정치권력으로부터 분리다. 우리나라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력자에게 충성하지 않고 공익의 대표자로서 시민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검사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일텐데, 우리 역사에서 검사가 그 당연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895년 공포된 '재판소구성법'에서 시작된 검찰제도, 일제강점기 일본은 식민통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법원의 영장없이 검찰에 독자적인 강제수사권을 부여했다. 일본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검찰은 시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되었다.
그러나 규문주의를 타파하고 인권보호를 위해 도입했다는 제도취지가 무색할 만큼 일제 강점기의 검찰제도는 시작부터 변질되어 있었다. 아주대 이헌환 교수는 일제감정기 검찰상을 "법이라는 외피를 두루기는 하였으나 그 자체 폭압적 깡패집단에 다르지 않았다"라고 표현했다. 검찰은 공익의 대표자가 아니라 정권의 나팔수로 독제통치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