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절정기 조선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한 권에 담아낸 책이다. 신윤복, 정선, 김홍도를 비롯한 조선의 천재화가들 7인의 작품과 더불어 태평성대를 누린 숙종과 영조대의 기록화첩도 소개하고 있어 보는 즐거움이 있는 미술해설서 이다.
저자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뛰어난 연출력을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들려준다. 신육복 그림에서 붉은색과 푸른색 옷의 대비, 담장 바깥 높은 곳에서 집 안 들여다 보기, 열린 방 안과 마당을 이어주는 마루를 무대로 삼기, 눈빛으로 심리 상태 연출하기 등 현대 영화나 드라마에 적용해도 손색없는 특유의 연출법을 발견해내는가 하면, 정선과 김홍도 그림에서 다 그리면 재미없다는 진경산수화 제1법칙을 찾아내기도 한다. 저자의 예리한 해석으로 옛 화가의 가치가 새로이 드높아지는 순간이다.
그림은 사진이 도입되기 전부터 시대를 읽어내는 중요한 단서이자 좋은 사료였다. 이러 관점에서 저자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조선 후기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림 50여점을 선별해 이책에 수록했다. 백성의 다채로운 일상을 담은 풍속화부터 왕실과 상류사회의 경사스러운 행사를 그린 기록화까지 아름다운 옛 그림을 감상하는 동시에 생생한 역사도 만날 수 있는 조선 미술관으로 들어가 본다.
알도차면 기우는법 19세기이후로 노쇠해진 조선 문화는 조선말과 일제 때 사진 속 모습처럼 그렇게 기운을 잃어 갔다. 사진 속 모습이 문화 말기 현상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17~18세기 문화 절정기에 그러진 풍속화와 기록화 덕분이다,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조선 미술관에서는 궁궐 밖의 사생활을 담은 1관과 궁궐 안의 공공 행사 기록을 담은 2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기획했다. 뛰어난 관찰력과 묘사력을 갖춘 화가들이 펼쳐낸 조선 후기 문화 절정기 사람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본다.
밀희투전은 김득신 퐁속화첨에서 산건 장소가 실내인 유일한 그림이다. 역시 대부분의 힌극인들은 야외에서 놀이를 즐겼고 이런 도박만이 남의 눈을 피해 실내에서 몰래 이루어 졌다. 방 안 벽에는 창문틀만 그리고 바깥은 막아놓아 창문으로 남이 엿볼세라 조심하는 은밀한 광경이 되었다.
이날 방에 모인 노름꾼 네 명은 모두 집에서 편하게 쓰는 모자인 탕건을 썼는데 투전 놀이판의 유니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자는 같은 것으로 썼지만 두사람은 옥색 도포, 한사람은 흰색 도포, 마지막 한 사람은 힌색 도포에 옥색 덧옷을 입었다.
안경 쓴이가 패 하나를 내놓는 순간 방 안에 깊은 긴장감이 감돈다. 맨 왼쪽 인물은 다음이 자기 차례인지 패를 고르고 있다. 패를 고르는 사람의 오른쪽 인물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놓았고 맨 오른쪽 인물은 두 손으로 패를 감추었다. 네 명 모두의 손직이 다르니 이것이 화가의 연출력이다.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각자 다른 마음속을 각자 다른 손짓으로 보여주었다. 모두 도박판에서 상대방의 돈을 따야 하는 상황, 도박은 협업이 아니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암장 바깥에서 안으로 가지를 늘어뜨린 벚꽃 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이때는 모든 여인들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봄날의 한가운데다. 좋은 날 바깥출임을 못하는 과부가 몸종과 소나무 둥치에 걸터않아 봄빛을 즐기며 신세 한탄을 하던 이때, 담장 개구멍으로 들어온 개 한마리가 과부가 키우던 개와 짝짓기에 들어가니 과부에게 벚꽃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이느 과부의 춘정에 불을 지핀 사건이나 반쯤 풀어져 게슴츠레한 과부의 저 눈빛을 보라
신윤복 화처목에서 선비와 기녀가 여러번 나왔어도 항상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나온 것은 선비였는데 이 장면에서 그 법칙이 깨지고 말았다. 더군다나 사대부 여인을 이렇게 민망하게 만들고 말았으나 감정 표현을 더욱 절제할 수밖에 없었던 사대부 여인들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평민 과부가 아닌 양반과부를 주인고응로 택한것이 아닐끼
백성들이 구경하고 잇어 임금의 기로소 입소가 백성 모두의 경사임을 보여준다. 숙종 시대 가장 생생한 풍속화의 한 장면으로 남녀 노소가 모두 모였다. 서인 남자들은 모두 검은 갓을 썼고 여인 들은 머리르 쭉 져 올렸으며 서거나 앉거나 하여 말과 망아지나 소를 끌고 나와 구경하는 이도 있다.
김홍도가 평생 그린 풍속화 가운데 가장 많은 인물이 등장한 이 그림이 김홍도 마지막 풍속화가 되었다. 개성 노인들이 이백년 만에 기로회를 대규모로 연 것은 김홍도로 하여금 진경퐁속화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하늘의 뜻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1806년 김홍도가 생을 마감하고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며 조선화단의 찬란함도 빛을 잃어갔으니 기로세련계도는 진경시대의 종막을 알리는 기념비와 같은 그림이 되었다.
이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옛그림의 매력을 담아 즐길수 있는 책한권으로 볼수 있는 미술관은
조선 미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