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독서통신연수로서 읽게 된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은 당대의 철학자들인 발타자르 그라시안과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조언'을 담은 책이다. 17세기에 살았던 예수교 신부이기도 하였던 스페인 작가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글을 19세기 독일 철학자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엮은 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서 스페인 잠언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교 신부였던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예술에 대한 감각,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 등에 대해 타고난 감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이 작은 책에 망라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작은 책이지만 그 가치는 무거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철학은 깊은 사색과 숙고에서 비롯된다. 스페인의 작가이자 예수회의 신부였던 저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삶을 통찰하는 당대의 스승으로, 그의 명성에 걸맞게 유럽 정신사의 한 축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 정신을 담은 이 책은 삶의 무게에 눌려서 매 순간의 처신을 고민하는 현대인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293개의 글(행동원칙)이 수록되어 있는데, 17세기에 쓰여진 글이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교훈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으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여섯 번째 글은 "완전하게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하니 묵묵히 자기 완성에 도전하라"로 시작하는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어떠하여야 하는지를 잘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열두 번째 글에 "인간도 인위적 교육 없이는 거칠고 미천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완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연마가 필요한 법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양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지혜로운 말씀이다.
열여섯 번째 글에서 "아무리 분별력이 좋아도 나쁜 의지와 결탁하면 그 결과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과거에도 그러하였겠으나, 최근 한국에서 물질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서, 나약한 인간인 나 또한 나쁜 의지와 결탁하려는 유혹을 극복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 마흔 네 번째 글에서 "내면을 들여다보라. 모든 사물은 외양과 내면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래서 껍질인 외양만 보다가 내면에 이르면 착각은 사라진다. 착각은 피상적인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남녀 관계 등에 있어서 외모를 중시하는 현재 한국의 풍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백 예순 세 번째 글에서 "위험이 처했을 때 강한 심장보다 더 좋은 동행자는 없다"라고 하는데, 나 자신이 많이 개선하려고 하였으나, 여전히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이다.
이백 네 번째 글에서 "자제하라. 오랜 시간의 평정보다 한순간의 분노와 기쁨이 더 위험하다"라고 하는데, 이 또한 나 자신 항상 부족한 부분이다.
이백 스물 다섯 번째 글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를 줄 알아야 한다. 쉼 없이 강행하는 삶은 피곤하다"라고 하는데 거의 평생을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가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다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여기에서 인용한 글은 단지 일곱 개일 뿐이다. 나머지 모두가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단순히 몸을 사리지만 말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스스로 설정하라고 말한다. 이리저리 휩쓸리기보다는 살아남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모든 지혜를 끌어 모아 적절하게 행동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살았던 때는 17세기이고, 지금은 21세기이며, 사회적 및 경제적 측면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공감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지혜를 담은 이 책을 틈틈이 읽고, 좋은 내용을 가족 특히 아직 세상 살이 경험이 적은 반면 살아갈 날들이 많은 자녀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