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전문가들은 투자를 결정 지을 때 과거 역사에서 그 해답을 찾으라고 한다. 그래서 2023년의 투자의 향방은 2008년 경제 상황과 비교하여 제안 되어지곤 한다. 유투브 방송을 진행하는 모임에서 "왜 역사와 금융을 결합한 콘텐츠를 만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20년 전부터 구상했다고 저자가 말하는 이 책은'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이다. 이 책은 쉽게 쓰여져서 나같은 일반인이 읽기도 좋고 중간중간 그래프가 있어서 호기심도 자극하고 그 내용도 재미있다. 저자 홍춘욱은 연세대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하고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국민연금, 굿모닝 증권 등에서 30년 가량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해 왔다. 1부에서 7부까지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교훈을 달고 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부분을 제외했다는 것이다. 1부에서는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산업혁명을 전후한 서양 세계으이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중앙은행의 출현 및 신뢰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의 발전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국가나 개인의 신용도가 낮을 때 금리는 높아진다. 영국 금리는 17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10% 혹은 15%이상의 수준이었다. 영국 금리가 이토록 높았던 건 이자 및 원금의 지급이 빈번하게 정지되어 '위험 프리미엄'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혁명 이후 영국 금리는 크게 떨어졌으며, 1980년을 전후에 세계적인 인플레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10%이상 수준으로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다. 15세기 내내 물가가 안정되었고, 일부에서는 상당한 디플레이션 상황이었기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 강한 수요 증가를 유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전이라 늘어난 수요에 부응해 공급을 늘리기는 힘들었다. 따라서 16세기 귀금속의 공급 확대, 특히 스페인 폐소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축통화의 공급은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경주의 주요가문이 돈을 빌려준 족계/동계의 이자율은 17세기 말부터 1910년까지 50%를 유지했다. 또한 전라도 영암에서는 1740년대에 40%, 18세기 말에는 30%, 19세기 중엽에는 35-40%을 기록했다. 2부에서는 유럽의 역사에서 벗어나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의 역사를 다룬다. 명나라 가정제 때 왜구가 창궐했던 이유, 더 나아가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이 명나라에 미친 영향 등을 살펴보다 보면 통화공급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세개혁으로 부강해졌는데, 명나라는 왜 망했을까? 은행 예금이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이 생기면 은행은 기업이나 가계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게 되고 빚을 갚을 수 없는 기업이나 가계는 파산하게 될 것이다. 이 파산은 은행의 대출회수를 더욱 촉진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불황과 대규모 실업사태를 유발할 것이다. 암스테르담 시 당국은 네덜란드 연합 주에서 유통된 다양한 통화가 상인들에게 실무적인 문제를 초래하자 그에 대한 해법으로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을 세웠다. 3부는 산업혁명의 발생과 확산과정을 다룬다. 특히 벼농사 중심의 동양 사회가 기계 장비의 혁신이 아닌, 인간 노동력의 집약적인 사용이라는 이른바 근면혁명의 길에 접어드는 과정을 살펴보다 보면 인구압이 경제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절감하리라 생각된다. 4부는 1929년 대공황에 대해 다루는데, 특히 금본위제에 대해 설명을 집중할 것이다. 5부는 1971년 닉슨 쇼크를 계기로 금본위제가 무너진 이후에 세계경제에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를 다룬다. 1970년대에 왜 그토록 인플레 압력이 높아졌는지, 더 나아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의 발생 이유도 어느정도 다루고 있다. 6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전후한 미국과 일본 경제의 동향을 다룬다. 왜 앤화의 강세가 나타났고, 또 이게 어떻게 역사적인 자산 버블로 연결되었는지 살펴본다 7부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에 있었던 다양한 이벤트, 토지개혁, 수출제조업의 발전과정과 1997년 외환위기의 발생 과정을 다루는데, 이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알 수 있다. 1997년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면서 중앙은행은 아주 중요한 수단을 하나 손에 쥐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책금리다. 1년에도 환율이 50원에서 100원 가까이 움직이다 보니, 두 나라의 금리가 1~2% 차이 나는 것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중앙은행의 금리가 몇 퍼센트인지 구애 받지 않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