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권에 이어,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도시 기행을 통해 전해주는데, 이번에는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을 통해 동유럽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해준다. 마치 유럽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박물관과 예술품들이 느껴진다. 눈감고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다. 앞으로 작가의 계속된 작품을 통해 세계를 함께 여행하고 싶다.
빈에 도착해서 작가가 느낀 첫 느낌은, 그 명성만큼이나 대단해 보였다는 것이다. 도심의 모든 공간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찬란한 느낌이었다. 모든 건물이 크고 멋지고, 거리는 깨끗하고 넓었다. 상가와 쇼윈도, 그리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속에서도 부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기품이 흘러나왔다. 실내 장식이 화려했던 카페와 식당, 그만큼 비싼 음식값은 덤이다. 공공전시관과 민간갤러리를 중후하게 장식하는 거장들의 작품들. 그리고 거리마다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그러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혁명 이후 공화국 예술가들의 또다른 색깔의 예술혼이 융합되어, 빈의 거리는 충돌과 혼란을 가라앉힌 새로운 느낌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제체시온의 예술품들은 이러한 시대를 초월한 예술정신을 담고 있다. 창조자의 상상력과 철학과 개성들이 관객의 마음마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부다페스트는 마자르 족의 나라다. 영웅 광장에서, 리스트 기념관에서, 그리고 테러하우스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헝가리 사람들의 정신과 심정을 읽어 보았다. 지배당한 자들의 열등감과 피해 의식,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은 책임 의식이 그들을 방황하게 했다.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류의 정서이다. 인고의 세월, 그 속에서 끝끝내 세운 독립 공화국. 두 민족 모두 보수적이다. 그들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은 바로 혁신에 소극적인 이유였다. 이제 그 두 민족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다뉴브 강이 헝가리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슬픔이다. 다뉴브 강변에 금속으로 만든 남녀노소의 신발 수십 켤레에 담긴 의미는 여행자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테러하우스에서와는 또다른 감정이다. 구두 안에 고여 있는 깨끗한 빗물과 도나우의 탁류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다.
프라하의 박물관들을 보고 생각한다. 히피, 여피, 보보스로 이어진 보헤미안의 유전자를 기억한다. 이것이 프라하에 모여 있고 계속 재창조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속된 욕망을 좇는 인간의 본성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온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프라하에는 이러한 품 넓은 이해와 관용이 넘친다. 그것이 프라하의 도시 분위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프라하에 어둠이 깔리면 도시는 한순간에 다른 얼굴을 한다. 틴 성당과 구시가의 오랜 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고, 자동차와 전차들에 전조등 불빛이 들어오면, 카페와 가로등이 눈을 뜨면, 프라하의 야경이 천천히 떠오른다.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저녁의 프라하는 그 자체로 랜드마크가 된다. 이 아름다움은 낮에 보았던 아픈 역사와 분주한 마음을 잊게 하는 평화 그 자체다.
드레스덴은 부활의 도시다. 1945년 2월의 참극을 딛고, 이제 다시 일어선 드레스덴은, 과거의 바로크 도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지만, 현재 그 모습 자체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함을 간직하고 있다. 추하면서 아름답고, 슬프지만 평화로운 도시. 어딘가 크게 어긋나 있는데도 편안함과 정감을 주는 도시.
길은 사람과 상품과 정보와 문화를 옮기고 섞는다. 길이 있어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며, 낯선 이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이해와 공감을 얻게 된다. 좋은 것들이 길을 통해 전해진다. 그러나 무기와 세균과 같은 것도 길을 타고 전해진다. 인간은 길을 따라 약탈을 저질렀다. 길에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야만과 환희가 뒤섞인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인류 문명은 앞으로 나아간다.
네 도시의 여러 공간에서 각 여행자들은 각기 다른 감정을 느낀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여행자도 같은 감정을 느끼란 법은 없다. 인생도, 여행도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헤쳐나가면 된다. 작가도, 독자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