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로마의 신화, 즉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시작하여 헬레니즘 시대, 로마제국 시대를 거치며 많은 이야기가 더해져 서구의 신화 중 자료가 매우 풍부하다. 제목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신화는 사실상 '그리스 신화'이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 신들을 그리스와 동일시 했기 때문. 제우스, 아프로디테 등 그리스 이름과 유피테르, 베누스 등 로마 이름이 함께 병존하는 이유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 이야기는 세상은 왜 이렇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행동과 모습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우라노스의 손자이자 크로노스의 아들, 올림포스 12신 중 으뜸이자 신들의 왕이며 하늘을 지배하는 신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주인인 제우스는 그리스 로마의 핵심 중 하나이다. 올림포스의 모든 신들의 힘을 합친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고, 권위를 지니고 있는 만물과 우주의 통치자 제우스. 즉 제우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앙 생활에서 국가의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고 이방인이나 죄인들을 보호해주는 보호자로서의 면을 보여준다. 따라서 제우스는 하나의 인물 또는 신이자 하나의 사회 유지를 위한 초월적 시스템 그 자체이다.
다만, 이렇게 제우스라는 절대자의 존재의 이면에는 다수의 복종자가 있기 마련. 절대자의 한 마디, 하나의 힘, 초월적 권위가 존재하는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하나의 강력한 기준(rule). 아래에서 대다수의 개인은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에 순종하고 적응하게 되는 것이 순리이다. 즉,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는가. 우선 서로의 의견 차이와 갈등은 효율적이고 빠르게 조정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사회 구성원의 이익에 부합하는가? 그것이 사회 구성원의 의도에 부합하는가?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의 운영이란, 절대적 진리에 따라 결정되는 결정론이 아닌, 비록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과정이 필요하더라도, 나와 너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속에서 서로의 이익과 의도를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럴 때에만이 개인은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그 결과 최선의 값을 도출해 냄으로써 결과에 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비록 민주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대통령에게 부여된 과도한 권한에 의해 운영되는 제우스식 통치에 다름아니다. 대통령의 한마디가 절대적 권한을 갖게 되고, 모든 사람들은 그 권한이 두려워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의 방향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수렴되어 하나의 해를 찾는 과정이 보장되고, 그것이 합리적인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에만이 그 사회는 단편적인 기준에 의해 운영되는 한 사람만의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탐색하고 모든 사람의 생각이 투영된 다원적 가치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제우스의 양보이다. 자신의 전지전능한 무기인 번개를 내려놓고, 귀를 여는 행동이다. 비록 내가 어마어마한 권한을 지닌 존재임을 자각하고 있더라도, 그것을 스스로의 주머니에 넣어 꺼내지 않는 절제심이다. 이는 단순히 자발적 의사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다. 이러한 집중된 권력의 위험을 인지하고, 사회 시스템적으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러한 견제로 함부로 증명되지 않은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이를 통해 벌 주고, 구속하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이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하게 이끄는 길이오. 고대의 전통적이지만 미개한 가치로부터 탈출하여 현대 인간 개인의 존엄성을 찾는 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제를 해내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 나가야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제우스는 위대했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