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상반된 분야처럼 느껴지는 두 분야, 의학과 미술은 인간이라는 커다란 대상에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이 그 대상이라는 말이다. 풍경화나 추상화가 그러한가? 라는 질문에는 이 역시도 작가의 정신세계가 반영되는 만큼 그러하다 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처럼 신체의 완전성을 담는 그림이 있는 반면 질병, 외상과 각종 죽음의 순간 앞에서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그림이 많다. 즉 캔버스에 청진기를 대고 귀 기울이는 행위는 일상의 환자들을 대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의사인 저자에게 있어 그림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적 완전성을 구현하는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기록물이 된다고 할 것이다.
이상적인 의사란 의학적 지식과 기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공감할 줄 아는 의사를 이를 것이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그림 속 인물과 마주할 때 의사는 지정 환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바탕을 마련한다고 저자는 기술하였다. 이 책을 통해 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그림 속 인물들의 질병과 고통에 대해서 눈 떠 보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의학의 중요 분기점 소개뿐 아니라 명화라는 이야기꾼의 입을 빌려 의학을 비교적 쉽고 친근하게 설명한 책으로 느껴진다. 인상 깊게 읽었던 몇몇 단편적인 그림을 통해 명화의 의학의 숨결을 같이 느껴보자.
- 제 손으로 아이를 죽인 비정한 어머니, 의학의 기원이 되다/메데이아 이야기-
: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조를 설명하는 메디이아 콤플렉스
그림 속 여인이 이마를 괴고 앉아있음을 보고, 턱을 괴고 하는 단순한 공상이나 꿈을 꾸는 것이 아닌 고민이나 갈등 속에 잠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인은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숙부에게 왕권을 빼앗긴 영웅 이아손의 모험 이야기에 나오는 메데이아이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 반해 남동생을 죽이고 자신이 가진 재능(마법)을 헌신하며 조국까지 배신하여 이아손과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얻은 행복을 누리다가 권력을 위해 자신을 헌신짝처럼 버린 이아손에의 복수를 위해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결국 자신을 배신한 이아손의 새신부를 독살하고 자신과의 두 아들을 칼로 찔러 죽임으로써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마지막 복수를 가하는 그야말로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이다.
의학을 영어로 일컫는 메디슨(medicine)의 어원 메디아(media)는 신과 인산 사이에서 중개역할을 하는 매개체 의학이라는 의미로 의학은 사람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메데이아의 힘을 의미하고 있다. 동생을 죽이며 조국을 배신한 결과가 부모가 된 자신이 자녀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설명하는 메데이아 콤플렉스가 바로 그것이다.
부부싸움 후 배우자에 대한 원망 때문에 이이를 살해했다. 혹은 산후우울증에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아 아이를 돌볼 자신이 없다는 등. 남편에 대한 복수심이나 분노 때문에 그를 닮은 아이에게 분노를 폭발하거나 자녀를 자주 혼재거나 자녀에게 남편을 헐뜨는 심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콤플렉스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분노를 쏟은 부모 혹은 남성에 대한 강한 의존성이 그 원인이라고 현대의학에서 밝혀지고 있다. 내가 키우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나와 같이 죽는게 낫다 라고 생각하는 소유효과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겠다.
-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보다 먼저 선사한 선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프로메테우스는 티탄족과 올림포스 신들간의 전쟁에서 올림포스 신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티탄족에 가담하니 않았고, 전쟁 후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인간을 창조하라는 명령에 따라 인간을 빚었다. 동생인 에피메테우스가 각종 생물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하다 보니 인간에게 줄 선물이 떨어지자 프로메테우스는 가련한 인간을 위해 하늘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하였고, 진노한 제우스가 코카서스산 바위에 묶어 독수리가 간을 쪼게 하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재생력이 탁월한 인간은 다음날이면 다시 자라나 이 끔직한 형벌을 3천년간 받아야 했다. 그를 묘사한 대부분의 그림에서 그는 고통의 그림자보다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굳건한 확신이 느껴진다. 헤라클레스의 덕분에 형벌에서 벗어나게 되는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다. 알고 보면 프로메테우스는 불 선물 이전에 자신을 닮은 놀라운 재생력의 간이라는 더 엄청난 선물을 한 것 같다.
책에서 다룬 명화를 의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일상생활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의학적 지식을 알려 줌으로써 의학의 높은 문턱을 허물게 해준 이로운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