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 이었다. 사람들은 이 소설을 2차 대전 종전후 최대의 걸작을 평가했고,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소설을 건전지의 발명와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걱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품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차지하는 올바른 가치를 꿰둟어 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시결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ㄴ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조건을 묘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사회의 여러 가지 움직임들에 아낌없이 참가하는 문학이다.
3월
이 어두운 방에서 - 갑자기 낯설어진 ㄴ한 도시의 소음을 들으며- 이 돌연한 잠 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모든것이 낯설다. 모든것이, 내게 낯익은 존재 하나 없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몸짓, 이 미소는 무엇과 어울리는 것인가?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다른곳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 이방인, 그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내가 임의로 강조하ㅕ 표시한 단어들은 모두가 다 카뮈의 소설제목의 단어의 번역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은 과거의 죽음이 아니라 미래에 닥펴올 죽음이고, 남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라는 증거다. 따라서 죽음은 사실상 소설의 참다운 내용이기에 앞서 소설의 구조를 드러내는 테두리, 표적, 경계선으로서 소설에 형식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게 믜르소의 죄의식을 유발한다. 즉 그는 어머니의 죽음의 그늘 밑에서 살아간다 죽음은 이방인의 가장 뚜렷한 주제인 동시에 형식이다. 죽음은 작품 전체에 일관성 통일성을 부여한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선박회사 사무원으로서 그때그때의 일상생활을 즉흥적으로 영위한다. 그의 대타관계는 남에게 타자의 이해와 무관한 자연인의 삶이다. 반면에 살인 후 재판을 받게 되면서 그와 그의 행동들은 타자의 이해, 해석의 대상이 된다. 1부와 2부는 서로를 비투는 거울이면서도 과연 동일한 소설에 속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판이한 인상을 준다.
알베르 카뮈는 죽음과 가까이 지낸 작가이다. 그의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시지프 신화'가 자의적 죽음을 시작으로 삼았다면, '이방인'은 주인공 어머니의 자연적 죽음을 시작으로 전개하고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이토록 무미건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어머니가 계신 양로원을 찾아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만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매사에 감정의 큰 동요가 없는 편이었다. 또한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묻는 말조차 간단하게 답변하고 마는 '스몰 토커'였다. (그게 뫼르소에게 얼마나 큰 타격이 될지 초반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그런 뫼르소의 일상을 나열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관리인의 권유로 밀크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운 뫼르소,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피곤한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동네 해수욕장에 갔다가 마리와 만난 뫼르소,
이웃주민 살라마노 영감, 레몽 생테스와의 마주쳐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뫼르소, 레몽을 따라 간 별장에서 별안간 아랍인들과 시비가 붙은 뫼르소. 이처럼 1부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상, 정말 별 의미없어 보이는 뫼르소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건지 헷갈리는 순간까지 있었다. 이게 과연 고전 소설의 축에 속할 수 있는 것인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읽었더랬다. 갑자기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등장한 것을 제외하고는 1부는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2부에 넘어가면서 이 소설의 진가가 드러났다. 2부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의 재판과정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1부에서 나열된,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그 행동들의 의미가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고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고 있었다면서 그를 냉담한 인물로 판단했고, 장례식이 끝난지 며칠 되지도 않아 마리라는 여자를 만나 애인을 삼았다면서 그를 인정머리없는 인물로 판단했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도덕적 원칙이 결여된 인물로 판단했다.
그 결과 재판은 뫼르소를 유죄로 판결하고 사형을 선고한다. 2부를 보는 내내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그 흔한 일상들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됐다는 게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 추측일 수도 있지만, 아마 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의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그런 일상을 겪으며 누구나 한번쯤 흔히 할 수 있는 생각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 '그럼 너는 죄인이니?'라고 독자들을 향해 비웃듯 조소를 던지는 작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