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처럼 우주와 같이 방대한 배경을 주제삼아 다룬 책을, 독후감으로 남긴다는 건 어쩐지 너무 많은 분량을 압축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나의 삶에 분명한 느낌을 준 이런 책에 대해서 지금 내가 가진 이 감정을 표현해 놓지 않는다면, 분명 후회할것 같다. 지구라는 행성의 작은 지표면에서 하루 살아가는데에 쓸데없이 놀리는 정신을 하늘로 돌려보는 귀중한 기회였다.
인류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빛나는 별에 대해 이루어놓은 해석이 없었다. 별의 기원은 그렇다고쳐도, 지구 중심의 우주관에서 벗어난 생각이 분명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대부분의 기간동안 무시했고, 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책 "코스모스"는 이런 역사도 놓치지 않고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보면 누구든지 '성간행 여행'을 꿈꾸게 된다. 그 유명한 드레이크 방정식에 따르면 우리 은하에만 수억의 지적생명체가 살아숨쉬고 있다. 그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는 것부터, 그들이 있는 곳 까지 방문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기술이 더 진보해야지만 가능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빛의 속도로 우주선이 간다면 지금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있는 인류의 유산인 보이저 1호도 1시간안에 따라잡을수 있다. 이런 발상은 경제적으로든 공학적인 설계로든 엄청난 딴지를 피할수 없기에, 일단 인류는 외계의 전파 신호부터 찾고 있다. 어쩌면 외계 전파는 이미 날라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1000광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정도의 시간이라면 인류가 살아남을수 있을지부터 생각해야 되는거 아닌가 싶다.
외계와 접촉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외계와 접촉하기까지 우리를 보존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과학은 종교보다도 더 우리 하나하나가 소중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이 세상에 똑같은 나란 존재는 없다. 의식 수준에서도 그렇고, 유전자 수준에서는 더욱 그렇다. 세상에 없어지는 나는 누가 대변하는가. 다 엉겁의 세월을 딛고 잃어선 유전자의 자식들이다. 하나도 같지 않기에 더욱 소중하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만날 외계인이 있다면, 그 외계인은 분명히 평화로울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들끼리의 생존 다툼이 지독할 정도라면 몇천광년의 여행을 견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같은 사람은 여러 책을 보고, 공부해도 어렴풋하게 이해할수 밖에 없는 우주지만, 분명 그걸 하게끔 만드는 동기는 매우 중요하다. "코스모스"는 자신의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끔 만들고, 지표면 위의 인간이 밖의 세상을 해석하게끔 만드는 중요한 동기부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