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모두의 작가
김영하 작가님이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의 신작 장편으로 낸 책이다. (+ 첫 SF)
우선 나는 김영하 작가님의 책들을
모두 읽었을 정도로
작가님의 글과 이야기를 좋아한다.
지금까지의 책들은 쉽고, 재밌게 읽히지만
울림이 남을 정도의 이야기들은 없었다.
아마 김영하 작가님의 팬층이 단단한 이유가
난해하지 않고 누구나 빠져들어 볼 만한 내용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은 먹먹한 느낌으로 읽어내려갔다. 이전에 소설과는 다르게 자꾸 생각하게 되는 책이었다.
| 줄거리 |
유명한 IT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평화롭게 살던 소년이 우연한 계기로 위험에 처하면서 새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 의심치 않던 당연한 일들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혼란 속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 책 속으로 |
“난 그냥 모두를 돕는 거야. 누군가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난 그걸 느낄 수 있어. 그럼 외면할 수가 없어.”
선이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를 돕는 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았다. 마음의 촉수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을 향해 뻗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가 항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거래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었다. 사기를 당했다며 달려드는 놈이 있는가 하면, 불량품을 받았다고 환불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하는 녀석도 있었다. --- p.77
“우리가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어리석은 자만이에요. 누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의미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인간들은 의미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아까 고통의 의미라고 하셨지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들은 늘 고통에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고통이 없이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지요. 과연 그럴까요?”
선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요.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달마는 그 말을 듣고 손뼉을 쳤다.
“맞는 말씀입니다. 동감입니다.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 그게 바로 여기서 우리가 하려는 것입니다.” --- p.152
“그 부분 다시 읽어줄래?”
“어디?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 보신 적이 한 번도 없으세요?’ 이 부분?”
“그래, 그 부분.”
나는 앤의 대사를 다시 읽어주었다. 선이는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렸을 때 그 지하실에 동화책이 몇 권 있었다고 그랬잖아.”
“그래, 네가 『빨간 머리 앤』 얘기했던 거 기억나.”
“방금 든 생각인데, 그때도 나는 좀 전에 네가 읽어준 부분을 참 좋아했어. 그 후로 나도 앤처럼 늘 현실하고 다른 일을 상상해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일 수는 없다고, 그럴 리는 없다고 말이야. 그 덕분에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몰라. 다시 들으니 참 좋네…” --- p.289
나는 그대로 거기 남았다.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죽거나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남아 지켜보았다. 오래지 않아 내 몸 여기저기에도 서서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끔은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거기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어느 날, 나는 오두막의 포치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동체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문득 이 넓은 대지에 인간을 닮은 존재는 이제 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 p.292
나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기 때문에 완독까지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인공지능로봇을 사람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할 로봇 정도로 생각했다면
지금보다 먼 미래에는 우리가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반려로봇들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
기존에는 기능을 동작하게 만드는 것이 중점적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노령화, 출산율 감소 등과 같은 이유로
인간의 윤리와 질서를 부여한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러한 AI들이 나오게 된다면,
인간의 어두운 감정과 노동에 뒤섞여서 인간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로봇들이 담당하게 될 것이다.
사람 같은 AI와 함께 지내게 된다면,
사람들은 점차 기계 같은 면모를 버리고 진짜 사람같이 행동하고 생각하기를 바랄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인간적일수록 함께 생활할 때 거부감이 덜 하기 때문이다.
기계란 유지 보수, 업그레이드가 꾸준히 필요하다.
가족처럼 지냈던 로봇이라도 언젠가 구형이 되기 마련이고, 여러 가지 경제적인 이유상
폐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람에 의해 사람의 마음을 가지게 된 로봇이
그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길 수 있다.
폐기되는 과정이 아니더라도
유한한 시간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와 무한한 시간을 가진 로봇의
평생이란 의미는 다르다.
영원히 죽지 않고 혼자 남겨져 나를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먹먹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트랜스 휴머니즘, 감성공학적 요소가 적절하게 가미된
트렌디한 주제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