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9
손민정
중앙아시아사-볼가강에서 몽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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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는 소위 말해 '인싸'는 아니다. 수로가 발달하기 이전, 모든 교역이 육로로 이루어졌을 때 '인싸'였던 지역이었지만 대항해시대 이후엔 역사의 중심에서 서서희 멀어졌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사를 알긴 해야 한다. 세계사 지식의 완성을 위해서랄까. 이 책은 칭기스칸을 키웠고, 실크로드를 놓았으며 몽골 제국을 태동시킨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최신의 개설서라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사를 가장 포괄적으로 연구한 학자로 평가받는 피터 골든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간명하게 쓰고, <몽골제국의 후예들>의 저자 이주엽이 원작자와 오랫동안 심도 있게 상의하며 치밀하게 번역한 이 책은 이래저래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온 중앙아시아와 결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원작자인 피터 골든은 중앙아시아사 분야의 대석학으로 투르크계 언어들과 페르시아어, 아랍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수많은 언어로 된 원전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한 학자이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가장 포괄적으로 연구한 학자로 평가받는다. 주요 논저로는 <하자르 연구 : 하자르인들의 기원에 대한 역사문헌학적 고찰>, <투르크 민족사 개론>, <중세 유라시아의 유목민과 정주사회>, <러시아 초원의 유목민들과 그 이웃들 : 투르크, 하자르, 킵착> 등이 있다.
이 책은 동서양의 서로 다른 민족, 생활방식, 종교, 언어, 이동이 만들어낸 유일무이한 문화들의 융합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유목생활과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의 출현에서부터 유목민과 정주민, 이슬람과 투르크계 민족들, 실크로드와 오아시스 도시국가들, 몽골의 회오리바람인 몽골 제국, 티무르제국과 후기 칭기스 왕조, 16세기 이후 러시아제국과 청제국 등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운명을 이야기한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에 따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상황 역시 폭넓고 깊이있는 시각으로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목차는 역사적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유목생활부터 오아시스 도시국가들의 출현이 첫장을 연다. 초기 유목민들의 전쟁사가 나오다가 하늘의 카간들인 돌궐제국과 그 제국의 계승국가들이 나온다. 이후 실크로드의 도시들과 이슬람이 중앙아시아를 뒤덥게 되고, 이는 몽골제국으로 환원된다. 이후 칭기즈 왕조들을 거쳐 티무르 왕조의 르네상스시대가 열리고, 제국들이 출연하면서 구소련의 지배를 받는 슬픈 운명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지막 장은 근대 중앙아시아의 문제들을 다룬다.
"중앙아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지역 혹은 민족을 이룬 적이 없다."로 포문을 여는 이 책은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섞여 중앙아시아라는 지역을 구성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 책의 핵심은 서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다. 잠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수천 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가교 역할을 중앙아시아는 중국, 인도, 이란, 지중해 지역, 보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중앙아시아는 샤머니즘, 불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같은 종교들이 만나는 공간이었다. 중앙아시아의 민족적, 언어적, 정치적, 문화적 경계선은 늘 유동적이었는데 서로 영향을 주면서도 근본적으로 상이했던 두 생활양식을 포괄했다. 곧 서로 다른 생태적 지위에 있었던 오아시스 지역의 정주민과 스텝 지역의 유목민이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 정복자들과 실크로드 상인들은 근대 이전의 중국, 인도, 중동, 유럽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세계의 역사 흐름을 좌우했지만 고대와 중세 시기의 외부 관찰자들은 중앙아시아를 문명 세계의 주변부로 여겼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가들은 중국, 인도, 중동, 유럽에 군사적, 정치적, 문화적, 상업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친 흉노, 돌궐, 몽골 제국 등 근대 이전 시기의 가장 큰 제국들이 중앙아시아에서 배출되었다는 점에서 중앙아시아를 유라시아 역사의 심장부 또는 역사의 중심축으로 여긴다.
이 책은 균형잡힌 시각에서 중앙아시아를 다룬다. 기존 책들은 보통 유목제국, 유목민 중심의 관점에서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살펴본다. 요컨대 이 책은 중앙아시아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