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30
송준현
거꾸로읽는세계사-전면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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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독특한 시각을 통해 세계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책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거꾸로" 읽는 방식을 취하며, 보통 역사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민중이나 약자의 입장에서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을 재조명한다. 기존의 역사 서술이 승리자와 지배자의 관점에서 기록되었다면, 유시민은 패자, 피지배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 역사를 풀어나간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배워왔던 역사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얻게 된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1988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 꾸준한 개정을 거쳐,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사회적, 정치적 사건들과 함께 독자들에게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놓치기 쉬운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특히 이 책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각 사건이 가지는 의미와 그 사건의 배경에 깔린 구조적 문제들을 분석함으로써 독자의 사고를 확장시킨다.
책의 초반부는 20세기 초반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구조를 설명하며 시작된다. 제국주의는 단순히 영토 확장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서구 열강들이 자신의 정치적, 문화적 우월성을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유시민은 이러한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당시 식민지에 살았던 이들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철저히 착취당한 역사적 현실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제국주의의 잔재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유시민은 세계 대전이 단순히 국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경쟁과 제국주의적 야욕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가 이룩한 문화와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이후 세계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수립하는 데 실패했고, 이는 곧 냉전 체제로 이어졌다. 유시민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전쟁과 갈등이 결국 인간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냉전 시대의 서술이다. 유시민은 냉전이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이 아니라, 세계 패권을 두고 벌어진 강대국들의 전략적 경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과 소련은 각자 자신들의 체제를 확산시키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대리 전쟁을 벌였으며, 이는 수많은 국가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중동의 분쟁 등은 모두 냉전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유시민은 이 과정에서 강대국들의 이익에 의해 희생된 소규모 국가들과 민중들의 고통을 자세히 다루며,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또한 유시민은 한국 현대사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억압된 현실을 지적한다. 특히 군사 정권 시기의 억압적 통치와 경제 개발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 농민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는 단순히 사건의 결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들이 발생한 배경과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독자들이 한국 현대사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의 말미에서는 현대의 글로벌화 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유시민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생겨난 문제점들을 언급하며, 특히 빈부격차와 환경 문제,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을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여러 문제들이 과거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과거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존의 역사 서술이 주목하지 않았던 소외된 사람들, 즉 약자와 패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유시민은 역사를 단순한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 속에서 살아온 민중들의 투쟁과 고통을 담은 이야기로 재해석한다. 그는 역사가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왜곡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독자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강조한다.
물론 이 책에도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첫째로, 유시민의 서술 방식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그는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시되는 대안이나 해결책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그의 해석이 전적으로 좌파적 관점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기존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결론적으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독자로 하여금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놓치기 쉬운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독자들이 보다 넓은 시야로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한,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교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역사를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삶과 고통, 그리고 사회적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