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4
양보람
20세기 기술의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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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기술의 문화사> 김명진의 <20세기 기술의 문화사>는 2차대전 이후 새롭게 등장해 당대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대표적 과학기술 네 가지 – 핵기술(원자력), 우주기술, 인공지능기술, 생명공학에 대한 교양 입문서이다. 저자는 이 네 가지 기술이 사회적으로 집중 조명되었던 시기를 나누어 그 발생 순서대로 소개하며, 특히 각 기술들이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상상력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관점의 대립구도”를 기준으로 분석을 시도한다. 단순히 기술을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사회, 사회구성원들 간의 상호작용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기술사회학적, 문화사적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50년대까지는 단연 “핵의 시대”이다. 히로시마(“Little Boy”)와 나가사키(“Fat man”)에 투하된 2개의 원자폭탄은 엄청난 파괴력을 보이며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앞당겼다. 이후 냉전 시기가 시작되고 미국-소련 양대 열강 간 핵 군비경쟁이 과열되면서 핵무기 보유가 증가, 수소폭탄의 발명 등이 이어졌고, 인류를 단번에 절멸시킬 수 있는 핵 기술력에 대한 공포와 우울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이 사회를 뒤덮었다. 한편으로는 핵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와 유토피아적 전망도 공존했다. 에너지 발전에 있어서 핵분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는 핵발전뿐만 아니라 교통, 토목공사, 농업,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당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비록 대부분은 허황된 아이디어 수준에서 사라지고 말았지만 에너지 발전 분야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 어떤 천연/재생에너지도 원자력 발전을 없다는 점을 고려해보았을 때, 또 한편으로는 쓰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대표되는 원자력발전의 치명적인 결함과 이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고려해보았을 때, 50년대 이후 핵기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1960년대는 “우주기술의 시대”로, 냉전시대 미소간 체제 경쟁이 핵기술을 바탕으로 한 군비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우주기술 경쟁으로 확대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소간 본격적인 우주경쟁의 시발점은 1957년 10월 소련이 쏘아 올린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둘러싼 소란이었다. 인공위성의 존재는 곧 수소폭탄을 운반하는 수단으로서의 우주기술 -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공포로 이어졌다. 또한 소련이 우주경쟁에서 연이어 쾌거를 이루자 미국사회 내에서는 소련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대중적 관심이 일어났고, 이런 분위기에 편승한 정치권의 행보로 우주기술에 대한 투자(e.g. NASA 예산)가 급증하였다. 그러나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우주경쟁은 (e.g. 아폴로 프로그램)은 금세 정치권과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NASA가 유인 우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우주왕복선(space shuttle)과 우주정거장을 추진하며 잠시 대중적 관심을 환기시키는데 성공하였으나, 연이은 우주왕복선 사고(콜롬비아호, 챌린저호) 및 소련의 체제붕괴와 맞물리면서, 결국 국민대통합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우주기술은 1980년대부터 침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1960년대 “우주기술”과 함께 태동한 또다른 기술은 컴퓨터 기술 - 보다 정확히 말해서 2차대전 시기에 군용 목적으로 발전한 컴퓨터 기술에서 이어지는 “인공지능기술”이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최초의 디지털 컴퓨터 에니악(ENIAC)은 포탄의 정확한 탄도 계산을 위해서 발명된 것으로, 대공포로 적의 폭격기를 조준하는 작업을 자동화하는 과정에서 인간-동물-기계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 기반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가 새로운 학문 분야로 등장하였다. 이런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하였으며(e.g. 앨런 튜링, “Turing Machine”),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기계의 도래가 임박하였다는 주장과 함께,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미래에 대해 다양한 유토피아/디스토피아적 담론이 영화와 같은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그러나 당시 인공지능 연구는 인간의 뇌처럼 사고하고 규칙을 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강한 인공지능” 분야로서 연구의 기본적인 전제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오랜 침체기를 겪다가, 최근 들어 빅데이터의 부상과 함께 고차발견법, 기계학습처럼 사례-시행착오를 통해 문제해결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연구 방향을 선회하면서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연구방향의 변화에 발맞춰 인공지능기술에 대한 사회적 담론 또한 기존의 디스토피아적 –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인공지능기술이 인간의 노동력을 숙련도를 대체하는 현실적인 우려로 변화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국가 주도적인 거대기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간영역 - 기업과 연구소를 중심으로상업적 기술이 발흥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이 가장 눈에 띄는데 1950년대 왓슨과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고 이후 DNA 재조합 기법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유전자변형(genetically modified, GM) 작물 및 식품의 등장, 복제양 돌리로 대표되는 동물복제,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간복제 연구 등 생명공학기술 분야에서는 혁신과 함께 윤리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0년 들어 CRISPR/Cas9(일명 “유전자가위”)로 대표되는 유전자 편집기술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70년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유전공학의 발전과 함께 제기되었던 수많은 논란이 재부상하고 있어, 과거 거대기술에 대한 양 극단의 전망이 다시금 부활할지 아니면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날지 주목할 만한 시점이다. 이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 특정 시기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과학기술들이 당대 사회와 어떤 상호작용을 이루었는지 살펴보면, 기술 자체가 갖고 있는 이론적/논리적인 설득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기술과 사회(구성원) 간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떤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정치적, 사회적 맥락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며, 또한 사회구성원들은 여론 조성을 통해 어떤 기술에 대한 사회적인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그 근거가 비합리적이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으며, 지극히 주관적이라 할지라도) 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없는 토양을 제공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한 기술이 발전하는 데 있어서 기술 자체의 가능성보다 기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기대감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래 기술에 대한 투자는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에 대한 투자이며, 기술의 발전 궤적은 결코 완전히 예측할 수 없으므로 미래에 대한 기대, 추측, 상상력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을 수밖에 없다(p.303).” 저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기술의 발명, 개발, 혁신 과정에서 상상력(과 과장광고!)가 담당하는 역할이 매우 크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금융계 종사자는 기술에 대해 어떤 관점이나 접근방법을 가져야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는데, 친절하게도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기술의 발전경로에 대해 미국의 연구 및 자문회사 가트너(Gartner, Inc.)가 제안한 과장광고 주기(hype cycle) 개념을 소개하며 사례를 들어준다. 가트너의 주기에 비추어보면 (기술촉발→부풀려진 기대의 정점→환멸의 저점→계몽의 상승곡선→생산성 안정),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주기상 적절한 지점(기술촉발 초기 및 환멸의 저점 시기)에 올라타서 상승곡선을 따라 이익을 실현하고 주기를 벗어나는 것 – 즉 하향곡선에 접어들기 전에 exit하는 것이 기술과 혁신에 대한 투자에서 성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기술이 (또는 과장광고가) 낳을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사회적 비용, 재원낭비, 형평성 결여 같은)에 대한 가치판단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관점은 아니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은 “기술정책에 있어서 기대의 사회학”이다. 말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쉽게 말해서 어떤 기술이 발전한 미래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기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상상력에 그치지 않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수 있도록, 예측된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공간과 자원을 제공하고, 특정한 기술 궤적을 실현될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자는 것이다. 원론적으로는 분명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맞는데, 당장 4차산업혁명 열풍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저자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생각할 거리만 더 주고 명쾌한 답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