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1
김동환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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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정효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1990년대 초 내 20대 초반 때이다. 벌써 30년전이다. 우연한 기회에 안 선생의 "하얀 전쟁'이라는 소설을 알게 되었고, 구입해서 읽었으며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묵직한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안 선생의 특별한 이력이 그 분에 대한 나의 관심을 끌었다. 1941년생으로 1965년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한 선생은, 대학시절부터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해 졸업전에 7권의 장편소설을 영어로 썼다고 한다 (그중에 하나가 '은마는 오지 않는다(Silver Stallion)). 대학에 입학 하자마자 문학에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 있는 무수한 영어소설을 섭렵했고, 결국에는 공책의 남은 부분을 모아 영어로 소설을 썼고 자신의 영업소설로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영자신문 기자, 출판사 근무 등을 거쳐 번역에 천착해 영어를 우리말로 우리말을 영어로 150권의 소설을 번역하며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번역문학가가 되었지만, 남몰래 미국 출판사 등에 투고했던 선생의 소설들은 모두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했던 "하얀전쟁"(미국판 제목 "White Badge")이 1989년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출판되었고(선생이 원래 우리말로 썼던 소설을 자신이 영역함) 한국에는 그 2년뒤 다시 "하얀전쟁"으로 출판되었다. "하얀전쟁"의 성공으로 그 뒤 "은마는 오지 않는다" 도 미국에서 출판하게 되었고 선생은 오랜 그의 꿈을 이루었다.
"영어로 소설을 써서 미국에 진출한다"라는 꿈을 이룬 선생에 대해 나는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선생의 소설(하얀전쟁, 미늘,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웃키드의 생애 등), 영어와 관련 책(안정효의 영어길들이기 시리즈, 번역의 공격과 수비, 오역사전, 가짜 영업사전 등) 등을 보았다. 이번 책은 선생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글쓰기 관련 지침서(안내서)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최근에는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까지).
선생의 번역관련 책에서도 항상 주장했던 사안이 이번 책에도 잘 나오는데, 글을 쓰는 데 있어 "있을 수 있는 것"을 솎아 내는 일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번역을 가르칠 때 선생은 처음 몇 달 동안 그들이 써놓은 글에서 '있었다'와 '것'과 '수'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시켰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세 단어를 문장에서 '너무' 자주 사용한다. 이 세 단어를 제거하기만 해도 글이 얼마나 윤기가 나는지 스스로 놀라게 되리라고 선생은 말한다. "보고 있다"가 "본다"로, "누전을 일으킬 수도 있다"가 "누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로, "광우병에 걸릴 수도 있다"가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로 바뀌면 훨씬 문장의 생동감이 살아나고 우리말 같지 않은 어색함이 사라지고 훨씬 자연스럽게 들린다. (선생은 특히 '수'가 영어의 'can'을 지나치게 닮아버렸음을 지적한다)
선생은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처럼 수동태를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문장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하는 부사의 사용과 접속사의 사용을 무자비하게 목을 치라고 외친다. 접속사를 없애니 문장이 간결해지고, 오히려 압축된 문장에서 폭발력이 생겨난다. 너덜너덜한 문장에 여기저기 잠복했던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가르침이다.
젊고 정력적인 문장을 위해서는 명사와 동사를 눈에 잘 띄게 전진 배치한다. 동사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움직임은 정력의 증거다. '많은 눈이 내렸다" 보다는 '눈이 쏟아졌다' 또는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 '빠르게 말한다' 보다는 '말이 빠르다'는 표현이 훨씬 생동한다.
문장의 지나친 장식을 피하라고 한다. 지나친 사족은 문장의 길이가 권위를 상징했던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존 오하라(John O'Hara)의 소설은 선생의 습작시절 생동감 넘치는 대화체를 공부하는데 소중한 교본 노릇을 했다. 선생이 읽은 오하라의 100여편의 단편소설중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대목은 장편소설 '웃음소리 (The Big Laugh)의 첫 문장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첫 장면, 특히 첫 문장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은 단편소설의 기본정인 공식이다. 하지만 3백쪽이 넘는 장편소설인 '웃음소리'는 겨운 두단어 이루어진 'He laughed'로 시작된다. 너무나 짧고 간단한 문장이어서, 어떤 남자가 환하게 웃어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 웃음소리까지 귓전에 들려오는 듯 싶다.
이외에도 많은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선생은 제시했다. 선생이 말하는 글쓰기는 단어를 하나씩 하나씩 배열하여 쌓아 올리는 수공업이며, 오랫동안 고생스럽게 땀을 흘려야 하는 노동이다. 글쓰기에서 영감은 1퍼센트이고 나머지 99퍼센트는 계획된 노력이라고 선생은 피력했다.
나도 이책의 내용을 실생활에 적용중이다. 품의문을 작성할 때 '~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을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쓴다. 지금까지 작성한 나의 후기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없앴다. 꿈을 이룬 선생을 존경하고 선생의 글쓰기 지침에 지극히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