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3
함세준
팩트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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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좋아지고 있을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긍정의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막연히 희망을 품어보려 해도 매일 같이 뉴스에서 쏟아지는 끔찍한 사건, 사고에 대한 소식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비극,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해양 생물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아마 쉬이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러한 우리들의 현실 인식이 완전히 그릇된 것임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라, 집요할 정도로 치밀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근거로 들고서. 2018년에 처음 발간된 이래로 빌 게이츠, 버락 오바마 등 수많은 명사들이 한 목소리로 추천한 책,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과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이다.
저자들은 사람들을 비합리적 두려움에 빠지게 만드는 ‘무지’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실충실성(팩트풀니스)’을 제안한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는 개념인 사실충실성은 팩트(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을 뜻한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세계에 관한 독자의 지식을 테스트하는 열 세개의 질문을 던진다.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의 비율,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의 변화, 오늘날 1세 아동의 예방접종율 등을 묻는 이 질문들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정답을 맞춰 보면 이 뻔한 질문들이 더이상 뻔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설령 남다른 식견을 지니고 있어 정답을 전부 맞췄다고 하더라도, 세계 유수의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답율을 확인하고 나면 적지 않은 충격에 빠질 수 있다. 그 충격의 핵심은 다음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다. 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은 데이터를 접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가 왜 이와 같은 집단적 무지에 빠져 있는 것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수백만 년과의 진화를 통해 우리 몸에 배인 ‘극적인 본능’과 그 결과로 만들어진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서 찾는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하고, 학습할 때 끊임없이 그리고 직관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하기 때문에 세계관이 잘못되면 체계적으로 잘못된 추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 어느때보다 쉽게 정확한 최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기존의 세계관에 근거하여 속단을 내리는 우리의 ‘본능’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극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곧 세계의 실상이라고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를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에 매몰되게 만드는 열 가지 본능(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그를 반박할 수 있는 정밀한 데이터를 통해 본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사실충실성에 근거하여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간극 본능으로 벌어지는 ‘세계는 점점 양극화되고 있으며, 극빈층의 비율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오해를 타파하기 위해 우리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라는 낡은 이분법 대신 물가 차이를 반영한 1인당 1일 소득에 따라 ‘네 단계 소득수준’으로 세계 인구 분포를 재구성해 볼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구분법으로 바라보면, 극빈층에 해당하는 1단계에 속하는 인구는 10만명에 불과한 데 비해, 중간에 해당하는 2/3단계 인구는 50억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미 나와 있는 데이터를 다른 틀에 넣어 해석하는 간단한 작업으로도 평생 고수해 온 오해는 쉽게 걷힌다. 복잡한 논증과 역설적 어조를 사용하지 않고단지 담백하게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이 책은 자연스럽게 사실충실성이라는 도구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비록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대로 충분히 좋으니 안주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상황이 나쁜 것과 나아지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다만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는 우리가 원치 않아도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에,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근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찾아나서지 않는 이상은 손에 넣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반쪽자리 현실만을 보게 되기가 쉽다.
바로 이 지점에 사실충실성의 쓸모가 존재한다. 무엇이 나아지고 있으며 무엇이 여전히 나쁜지를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은 두려움의 충동질에 빠지지 않고 한정된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는 ‘근거 있는’ 믿음을 가지고 세상의 나쁜 부분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가는 일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