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2
강규연
알수록 다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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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화권으로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거나 미술을 감상할 때, 서구 문화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을 먼저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은 서구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많은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유럽여행을 다녀왔더라면 어땠을까,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든다.
언제 다시 보아도 재미나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그리스 로마 신화일 것이다. 누가 어떤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느냐에 따라서 같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의 이미지는 조금씩 변하고는 한다. 아마도 그런 변화무쌍한 다양한 신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서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수록 다시 보는 그리스 로마신화 100에서는 불핀치 신화를 텍스트로 하되, 신화 스토리에 기본적인 연대기순 배치와 주제별 일람을 통해 그리스 로마 신들의 스토리가 보다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따라서 신들의 탄생에서부터 신들의 전쟁을 통한 제우스와 올림프스 12신이 형성된 과정을 일별하고 12신의 권력체계에 따라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헤파이스토스, 아르테미스, 헤르메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폴론의 이야기를 해당 신과 관련된 이야기와 함께 순서대로 정리가 잘 되어서 읽어내려가기 수월하였다.
물론 신들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님프들의 이야기와 신의 도움으로 사랑을 완성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올림프스의 님프와 숲의 정령들 편에선 알페이오스, 포모나, 에코, 나르키소스, 드리오페 등그리스의 님프와 숲의 정령들의 이야기를 따로 묶어서 다루었고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영둥들의 시대 편에서는 프로메테우스와 페르세우스, 이아손, 테세우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을 체계적으로 읽어내려 갈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또한 배신과 복수, 저주의 가문과 인간시대의 비극적 사랑 등을 통해서 오이디푸스 비극과 모르페우스, 니소스, 익시온의 사랑과 배반, 저주와 비극의 대서사시들이 펼쳐졌다.
태초의 혼돈을 상징하는 카오스, 성서의 주요 모티브인 새로운 창조,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본질(에코와 나르시스, 피라모스와 티스베), 저주받은 가문의 복수(탄탈로스, 오이디푸스 등), 나르스시즘과 동성애(아폴론과 히아킨토스), 축제와 카니발의 기원(디오니소스), 새로운 문명지를 찾아 나서는 대모험과 영웅의 분투(아르고 호 원정,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 등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헬레니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사고와 상상이 그대로 담겨 유럽문화를 이루는 근본적인 원형질로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용하는 오늘의 지구촌 시대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류 문명에 미치는 힘은 강력하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이키, 헤라, 헤르메스 등 수많은 브랜드들이 그리스 신들의 이름에서 차용되었고, 나르시시즘이나 오이디푸스 콜플렉스 등은 세계인들의 예술과 연극의 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헤라클레스, 아킬레우스, 페르세우스, 프로메데우스는 영화, 미디어, 광고 세계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자리 잡고 있다.
AI와 로봇이 활용되고 SNS로 전 세계가 소통하는 21세기 첨단과학시대의 신화 읽기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마도 그건 신화시대 최초의 쾌속선인 아르고 호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했던 아르고 원정대원들이 그렸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신화의 동경이 때로는 이카루스의 무모한 날개짓이 되더라도 아프로디테의 케스토스 히마스가 애원하는 사람의 슬픈 몸짓이 될지라도 신화가 추구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신적 탐험은 바로 인간이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의미 있는 날개짓일 것이다. 신들이 사라진 시대에 신화는 진리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신화의 가치는 아일랜드의 신화학자 제라마이어 커틴이 말한 영혼이 육신이 동행하듯이 진리와 동행하는 것은 모두 신화 라는 주장에 공감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