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2
유상혁
극단의시대(하):20세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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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역사를 다룬 에릭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 (하)권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까지의 약 30여년을 다룬, 소위 저자가 "파국의 시대"라고 정의한 (상)권에 이어 전후 경제 부흥기인 "황금시대"와 소련의 해체로 촉발된 20세기의 끝를 다룬 "산사태"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큰 줄기에서는 타임라인에 따라 주요 사건과 그로 인한 영향, 다른 사건에 미치는 여파를 다루고 새롭게 부각되는 주요 사상과 경향 - 페미니즘, 제3세계의 민족주의, 과학기술의 발전- 에 대해서는 따로 장을 할애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20세기의 예술에 대해 다룬 후 다가올 21세기에 대한 전망을 언급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19세기 역사와 재즈의 미시사, 산적들의 역사 등의 주제에 대해 폭넓게 다룬 저자의 전작들과 달리, <극단의 시대>의 구성은 굉장히 난잡하기도 하며 일관되지 못하다. 이는 무엇보다 저자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이 다루는 시기가 홉스봄이 태어나면서 청년, 중년, 노년기를 보낸 바로 그 시대를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것처럼, 역사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자신의 좁은 시야로 이해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자신의 시대를 다루는 것은 지극히 불균질한 서술이 될 수 밖에 없다. 또한, 20세기의 주요 사건들은 그 이전 세기의 어떤 사건보다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주요 사건과 대략적인 흐름 위주로 사건을 기술하고 논평하는 저자의 전작들과 달리, 가급적 많은 풍조와 사건들을 언급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후 부흥기를 맞이하여, 거시적인 정치적인 사건이 등장하기 전에 눈에 띄게 부각되는 현상은, 여성 해방을 위시한 사회혁명과 문화혁명, 제3세계 민족주의의 발흥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전후 맞이하게 된 경제적 풍요로 인해 발생한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농업 인구의 감소, 교육 수준의 향상, 그리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다. 역설적으로, 전쟁 이후에 경제 원조와 탈식민지화의 영향으로 소위 말하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발전 격차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공업화가 가속화되고 보다 소득이 높아지는 공업으로 경제인구가 쏠리면서 전세계적으로, 특히 제3세계의 농업인구는 그 이전 세기와 비교할 때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수준의 전반적인 향상과 여성 해방이라는 두가지 현상을 직접적으로 야기하게 된다. 한국에서 농촌의 가난한 부모들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가지고 있는 소를 팔면서 학비를 대는, 소위 한국에서 우골탑이라 지칭되는 유명한 현상 또한 언급되는데, 이는 동아시아에서 특히 두드러지지만 참전군인들이 복귀한 유럽(특히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며, 이러한 학생층의 확대가 결국 이후 68혁명을 비롯한 사회혁명의 단초로서 기능하게 된다.
제3세계의 성장 또한 주목할만 하다. 전후 복구와 경제부흥의 와중에서,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인 명분으로나 식민지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과거 제국주의 열강을 구성한 연합국과 추축국은 자의적으로, 또는 타의적으로 자신들의 식민지를 포기하고 이 식민지들이 자신들의 독립적인 정부를 구성하면서 소위 제3세계라 불리는 진영을 구성하게 된다. 이들은 그들의 낙후된 경제적 환경과 정치적 성숙과정이라는 자신들의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일반적으로 권위적인 정부를 구성하였으며, 사회주의적 성격을 띤 인도의 네루 정부부터 우익 쿠데타로 탄생한 중남미 군사정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을 띠며, 20세기가 끝날때까지 특유의 불안정성과 가연성을 유지하게 된다.
또한 20세기를 특징짓는 빼놓을수 없는 요소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 없을 광범위한 영역을 가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적 색채를 유지했던 현실사회주의를 들수 있다. 레닌의 10월 혁명으로 시작하여 적백내전, 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치며 형성된 그 체제는 독일, 스페인에서의 혁명 확장이 좌절되고 내부적으로는 지난한 정치투쟁을 거치며 폐쇄적인 독재 체제의 성격을 유지하게 된다. 특히 레닌 집권시 초기 유지했던 시장경제와 다원정치를 일부 허용했던 체제의 유연성은 외부의 정치적 압력을 극복하고 전쟁과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직된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스탈린 사후 냉전과 수차례 위기를 겪으며 다소 연성 독재 체제로 전환된 소련은 그러나 아프간 전쟁과 체르노빌 등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맞으며 90년대 초반 결국 스스로 소멸하게 된다.
<극단의 시대>의 마무리 장은 새로운 천년기인 21세기를 맞이하는 저자의 논평으로 마무리된다. 20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었던 그 시대임을 감안하더라도, 그 이전의 어느 시기보다도 혼란스럽고 무질서하며 적응하기 어려운 변화가 많이 발생했던 시대였다. 저자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근시안적인 우리의 역사관을 감안할 때 새로운 천년기를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무모한 것이다. 다만 20세기에 우리가 겪었던 모든 실패들을 뒤돌아보지 않고 맞이한다면 21세기 또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