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30
백상현
사랑의기술(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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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읽고 싶었던 사랑의 기술을 드디어 다 읽었다. 낭만주의자를 자처하는 만큼 나는 사랑에 관심이 많았고, 사랑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해보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유명한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은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뒤, 당연히 읽어보고 싶은 책 0순위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사랑의 기술을 완독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에 걸렸다. 외적으로는 출근, 운동,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 등 바쁜 스케쥴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책이 어려웠다, 매우. 한 페이지, 한 단락, 짧게는 한 문장씩 두번 세번 읽고 나서야 넘어갔던 부분이 워낙 많다보니까 진도가 영 나가질 않았다. 게다가 한 챕터, 한 챕터 분량도 길어서 끊지 않고 읽기 위해선 한 번에 비워둬야 하는 시간도 길어지다 보니 쉽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됐든 그렇게 힘들게 미뤄오던 책을 통신연수 종기가 다 되어서, 새로운 취미인 바이크를 시작한 김에 친구들과 약속을 다 미뤄놓고서야, 편하게 완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사랑은 어렵구나, 라는 것이다. 책 내용도 어려운데,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도 참 어려웠다. 일단 에리히 프롬 아저씨가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은 내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았다. 평소에도 나는 "사랑은 무엇인가?"하는 고민을 자주 해왔다. 바로 2주전 독서모임에서도 꺼냈던 얘기인데, 사실 많은 사람들이 부모-자녀 간의 사랑과, 연인 간의 사랑은 큰 차이가 있는 개념이라는 데 공감함에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언어에서는 이 둘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부른다. 낭만주의자를 자처하며, 나는 '사랑'을 주로 연인간의 사랑에 국한해서 생각해왔던 것 같다. 엄밀히는 국한이라기보다는 부모-자신간의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 형제애, 인류애 등은 사랑이면서도 사랑을 초월한(?), 혹은 사랑과는 다른 무언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연인간의 로맨틱한 '사랑'이 사랑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은 나랑은 오히려 정반대의 생각을 해왔던 것 같다. 연인간의 사랑(성애)에 있어서도 강렬한 감정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상대를 사랑하고 이를 통해 다른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 있게하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았다. 이건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이렇듯 내가 평소 어렴풋이 갖고 있던 사랑의 개념과 전혀 다른 사랑의 개념을 프롬 아저씨는 제시했는데, 나는 여기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사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사랑이 마냥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것이 올바르고 숭고한 모습이 아닐지라도, 제 자식을, 부모를, 가족을, 친구를, 연인을, 머리 어딘가가 다친게 아니라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프롬 아저씨가 제시한 사랑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인격적으로 성숙한)만 할 수 있는 매우매우 어려운 것이라, 나는 여기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어찌됐든, 내가 프롬아저씨의 사랑 개념에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프롬 아저씨가 제시한 사랑의 개념, 우리가 목표로 해야할 이상적인 목표로서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프롬은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불안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 진정한 사랑에 있다고 보았고, 이 때 사랑의 모습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본질로부터 상대의 본질을 사랑하려는 의지와 판단에 있다고 보았다. 구도에 가까운 정신수양 활동 수준으로 사랑을 표현하였는데, 너무 어렵고 지루한 모습이지만, 연인간의 모습에서도 단순히 강렬한 감정에 이끌려 시작되었다, 감정이 사그라들며 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본질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본질을 사랑하리라는 강렬한 의지를 갖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은 오히려 낭만적인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에서 오히려 정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얘기였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순간에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모성애.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사랑 받기 위해서는 올바른 삶의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는 부성애. 이 둘을 보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인 스파이더맨: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마일즈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일즈가 스파이디 소사이어티에서 모두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일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덕분이었다. 그리고, 모두의 지탄을 받는 역경 속에서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경관인 마일즈 아버지의 사랑 덕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해피엔딩이 정해져있는 히어로 무비속의 모습이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마일즈 가족에서 마일즈의 부모님이 보여준 이상적인 사랑 모습이 책을 읽으며 떠올랐고, 나도 그런 부모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