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0
오지은
유럽 도시 기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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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여행 관련 서적은 여행 전에 해당 나라에 대해서만 읽곤 했어요.
당장 갈 수도 없는데 괜히 떠나고 싶은 바람만 드는 게 아쉽기도 하고,
여행하며 내가 직접 느끼는 소감이 의미 있지, 타인의 소감은 그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여행 관련 동네서점/독립서점들을 다니고,
여행기나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는 사람들과 대화도 하면서
여행서적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행 직전에만 관련 책을 읽는 것보다 평소에 읽으며 식견을 쌓아두면
여행 갈 동기도 커지고, 훨씬 깊은 여행을 즐길 수 있을뿐더러
다양한 나라의 현 시국에 대한 정보도 쌓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은 이걸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감상하고
제 가치관과 비교하는 재미도 상당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읽은 여행 에세이, 유럽도시기행 1권을 리뷰해 보려고 합니다.
1.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소개
유명한 정치인이었으나 이제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유시민은 정치색과 무관하게, 글을 참 잘 쓴다고 느낀 사람입니다.
저는 tvN<알쓸**>시리즈들 애청자이기도 했어서, 유시민이 쓴 유럽 여행 에세이를 알게 됐을 때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유럽 다양한 국가들의 주요 도시들을 4-5일 정도 여행한 일정과 느낀 점, 관련 정보들을 수록한 에세이입니다.
표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1권에서는 그리스 아테네, 이탈리아 로마, 튀르키예 이스탄불, 프랑스 파리를 다루고
2권에서는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프라하, 독일 드레스덴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에서도 명시되어 있듯이 짧은 시간 여행한 것이고, 저자가 여행 경력이 특출난 것도 아니라
객관적이거나 아주 깊은 여행 정보를 얻기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유럽 주요 도시를 여행하는 내가 아닌 제3자로서 저자의 여행 태도를 관찰하고, 관련 지역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얻으며,
한 국가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사적인 관점을 맛보기에는 꽤나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2.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 도시 정보 정리
1. 아테네
유럽사의 첫 장에 등장하는 아테네를 1권에서도 처음으로 다루고 있어요.
아테네를 대표하는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승리와 약탈의 역사의 압축판인데,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승승장구하지만 스파르타에 패하고,
마케도니아와 로마, 오스만제국 등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아테네가 역사 유적과 19세기 그리스 왕국 수립 이후의 생활 공간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고 느꼈으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가면 황폐한 첫인상과 부서진 유적들에 실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2. 로마
로마는 굉장한 규모의 고대 유적, 르네상스 예술물, 바티칸 교황청을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하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오염이 심하다는 오명도 안고 있죠.
3천 년 전 이탈리아 중부에는 에트루리아인들이 살았는데, 라틴인이 이어 들어와 왕국을 세웁니다.
이들은 공화정을 이룩하지만 역설적으로 제정이 들어섰고,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시민들이 공직자를 선출한 포로 로마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등이 이 모든 역사를 담고 있어요.
1870년, 이탈리아 반도가 통일된 과정을 알 수 있는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도 책 속에 나와있습니다.
3. 이스탄불
역사가 2700년이나 되는 유서 깊은 도시, 이스탄불은 동로마 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정교회와 이슬람 등 공존하는 다양한 문화를 확인할 수 있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이슬람 사원,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하기야 소피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자는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터키공화국 건설 이후, 터키민족주의가 대두되며 그 다양성이 많이 축소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4. 파리
파리는 14세기까지만 해도 변방이었기에 고대 건축물이 거의 없는 젊은 도시입니다.
로마의 영향을 받았고, 프랑크왕국에서 유래한 프랑스는 백년전쟁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합니다.
프랑스대혁명과 나폴레옹 집권 이후 파리는 유럽 주요 도시로 등극하고,
나폴레옹 3세 집권 시절 오스만 남작에 의해 드골 광장을 중심으로 12대로가 뻗어나가는 대개조를 거칩니다.
또한, 저자는 현시점 지구촌의 문화유적으로 에펠탑을 꼽는데,
강제노동 없이 개인의 디자인으로, 공모절차에 의해 설립된 과학의 산물임을 그 이유로 들고 있어요.
이 책은 여행기라는 형식으로 유럽 여러 도시의 역사와 인물, 건축물과 음식 등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정보량이 상당합니다.
또한 학습용으로 제작된 책이 아니라 시간순, 공간 순으로 정보가 깔끔히 정리되어 있지 않고
저자의 여행 순서대로 전개되기 때문에 각 나라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읽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ㅎㅎ
근데 원래 일상에서 마주치는 역사는 다 이렇게 뒤죽박죽이니까, 저는 그러려니 하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진솔하고 주관적인 감상들이 섞여 있어서 에세이로 접근해 읽으면 의외로 쉽게 완독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가령 어떤 미술관에선 예술품이 다 그게 그거인 것 같았다는 후기를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ㅋㅋ 하는 반가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나라였으면 아테네에 질문하는 소크라테스 관광상품을 개발했을 거라는 말이라던가,
돈을 내면 빨리 입장시켜주는 바티칸시국의 자본주의를 재밌게 묘사한 부분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루이 14세 초상화가 "이 차림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는
저자 특유의 시니컬한 감상이 저는 책을 읽는 재미 포인트였습니다.
또한, 저자의 여행법을 엿볼 수 있어 재밌었는데
도시를 자신의 시선으로 정리해 보기, 좋았던 장소와 그 이유 생각해 보기,
도시의 역사대로 옛 모습을 상상해 보기, 길 가다가 모르는 표지판 발견하면 검색해 보기 등 사소한 것들도요.
그래서 저만의 여행법으로 여러 나라와 도시를 둘러보고
역사, 문화, 정치적 식견을 진솔히 담은 에세이를 쓰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