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8
양보람
프로메테우스의 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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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두는 단연 친환경이다. 2차전지를 중심으로 매연을 배출하지 않는 전기자동차, 살충제 사용을 하지 않고서도 해충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바이오다이나믹 농법, 석유/석탄 등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기존의 에너지원을 대체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 등. 이른바 ‘녹색기술’로 불리는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면서, 이 산업이 가져올 새로운 기회와 변화에 대한 관심이 시장과 사회 전반에 가득하다. 특히 지구 온난화에 따른 이상 기후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금, 인류가 산업화 덕에 누리고 있는 모든 편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여겨지면서 녹색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 책 <프로메테우스의 금속>은 이런 친환경 산업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찬물을 끼얹듯이 녹색기술의 이면 – 희귀금속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또 다른 환경 오염과 지정학적인 분쟁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친환경 산업이 가져올 미래는 생각한 것만큼 아름답지 않고, 혁신은 기대한 것만큼 깨끗하지 않다. 녹색기술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녹색’이 아닌 셈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녹색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희귀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철, 구리, 아연, 알루미늄과 같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속들과 다르게,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희귀금속(약 30여종)은 흔한 금속과 결합해 있거나 지표면에 아주 미미한 양이 형성되어 있어서 접근성은 낮은반면 가격은 매우 비싸게 형성된다. 또한 희귀금속들은 저마다 독특한 화학적, 광학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고 촉매 역할도 하기 때문에 무수히 많은 녹색기술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문제는 이 희귀금속을 채굴하는 과정에 있다. 흔히 채굴과정을 빵에 재료로 들어간 소금을 분리하는 것으로 비유하는데, 여러 금속과 혼합된 상태로 있는 희귀금속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여러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만 극소량을 채취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과거 광산업에서 대두되었던 노동 착취 문제(+ 노동자 및 광산 인근 공동체의 건강 문제)와 함께 극심한 수질오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전기자동차에 필수적인 ‘희토류’ 1톤을 정제하는 데에는 20만리터의 물이 사용되며, 대부분은 정화되지 않은 채 인근 지역으로 방류된다. 따라서 저자는 이렇게 채취된 희귀금속을 사용한 “녹색기술의 산물들(태양광전지, 전기차 등)은 에너지와 환경 측면에서 태생적인 원죄를 떠안고 있다”고 말한다(56쪽). “녹색기술의 생명주기 전체를 두고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측정”해야 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친환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57쪽).”
희귀금속과 관련된 또 다른 측면은 희귀금속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희귀금속(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지정학적 분쟁이 재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중국을 꼽을 수 있는데, 중국은 넓은 영토 덕분에 산업적으로 활용 가능한 희귀금속의 대부분을 채굴하고 있으며, 특히 전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희토류의 95%를 공급하는 유일한 공급자이다(“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 - 1992년에 덩샤오핑이 한 말이다). 반면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자 하는 서양 대부분의 국가들은 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듯이 환경오염의 부담을 타국으로 이전하기 위하여 희귀금속광산, 제련공장을 중국으로 옮겼고, 원재료 조달에 있어서는 현재 중국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다. 불투명하고 공시가가 없는 희귀금속시장 특성상 가격 변동이 심하고(희귀금속시장은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라는 말까지 있다), 중국이 정치적/외교적인 목적으로 (2010년에 그러했던 것처럼) 희토류 수출을 제한하면 당장 전세계적으로 수급에 비상이 걸린다. 풍부한 원자재를 바탕으로 중국은 2020년 기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의 8~90%를 생산하는 등 독자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이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하여 희귀금속이 매장되어 있는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지역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일본과의 오랜 분쟁지역인 댜오위다오(일본식으로는 센가쿠열도)는 많은 양의 탄화수소가 매장되어 있으며, 탄화수소뿐만 아니라 전세계 석유 무역의 흐름을 감시할 수 있는 남중국해(중국~베트남 남부) 인근은 이미 미국과의 필연적인 충돌이 점쳐지고 있는 곳이다. 이처럼 친환경 녹색기술의 기반이 되는 희귀금속은 환경오염 문제와 지정학적 분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더러운 금속”이라는 저자의 표현에는 여러 이면에 담겨져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일단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석유/석탄과 마찬가지로 희귀금속 또한 매장량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기후 온난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희귀금속을 채굴해야 하며, 인류는 태초 이래 채굴해온 금속보다 더 많은 양의 금속을 2050년까지 캐게 될 것이다. 끊임없이 증가하는 희귀금속 수요에 맞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이미 소행성에도 가격을 매기기 시작했다. 우주산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한편으로는 우주에 널려 있는 희귀금속에 대한 욕망이기도 하다. 아직 개척하지 못한 하늘 위 세상에 대한 관심은 차치하더라도, 희귀금속을 두고 경쟁하는 국가 간 분쟁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아마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희귀금속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한편으로는 (비록 지금은 수지가 맞지 않지만) 이미 사용된 희귀금속을 재활용하는 영역에서 사업화가 이루어진다면, 지금의 판도를 뒤엎는 강력한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든다. 원자재, 기술, 사회, 환경, 미래.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뒤얽혀있는 현재 상황에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어서 아주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