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황이랑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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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늘 와인은 환영이었지만, 우연히 국내 유통되는 와인 가격에 엄청난 거품이 끼어 있고, 발품과 손품을 팔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와인을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올 상반기에 와인의 세계에 본격 입문하게 되었고, 그러다 알게 된 네이버 와인 카페에서 이 책의 저자도 회원이라 하여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 이전에 읽은 와인 관련 서적은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기자 출신 작가인 황헌씨의 와인잔에 담긴 인문학 인데, 와린이(와인+어린이)로서 이제껏 읽었던 어떤 와인 서적보다 더 눈높이에 맞는 내용이었다.
와인 맛에 눈을 뜬 경험, 와인 맛의 차이를 감별하기 시작한 느낌, 가격과 맛이 정비례하는 걸 알아가며 자꾸 구매에 구매를 거듭하게 되는 와인 애호가로서의 변화 과정들을 저자가 무척 솔직하게 그려내었고, 개인적 시음 경험 뿐만 아니라 와인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팁이나 와인 구매시 라벨 읽는 법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어 와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와인에 점점 더 물들어가면서 밟게되는 단계가 있다. 예를들면 처음엔 직관적으로 맛있다고 느껴지는 찐득하고 잔당감 있는 미국 나파밸리 까베르네 쇼비뇽이나 진판델로 시작했다가, 칠레, 호주 등 신대륙 와인을 접하다가 점점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구대륙 와인의 맛을 느끼다가 결국 종착점은 부르고뉴 와인이라고 한다. 부르고뉴 피노누아에 빠지면 집안이 거덜난다고 하는데, 저자가 기술한 내용에 따르면 그랑크뤼 등급(부르고뉴 와인에서 가장 높은 등급)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수십만원대인 프리미에 크뤼(그랑크뤼 등급보다 한단계 낮은 등급) 등급 와인을 시음하면서도 저자는 엄청난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너무 고가라 아직 직접 접해볼 수는 없지만 저자의 세밀한 맛 표현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와인에 푹 빠지지 않은 사람이 읽으면 음? 정말 와인 마시고 이렇다고? 반응할 정도로 저자가 와인을 거의 예찬하는데, 나는 잘은 모르지만 이미 심정적으로는 와인의 세계에 발을 푹 담그고 있어서 그런지 저자의 와인 신격화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숙성시켜야 할 정도의 고가 와인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벌써 100병 가까이 들어가는 셀러를 집에 들였고, 어느 매장에서 와인 행사를 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현실이 웃픈데,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괜히 위안이 되곤 했다.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대로, 원래 와인 하면 멋지게 차려입고 격식있는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 한두잔을 고급 정찬에 곁들여 마시는 이미지였는데, 회식문화의 변화로 독한 소주의 인기가 점점 사그라들면서 와인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코로나 상황이 심화되면서 홈술이 대세가 되다 보니, 집에서 소주를 마시기에는 뭔가 어색하고, 맥주는 너무 배부르고, 홀짝홀짝 천천히 오랜시간 기울이기에 와인만한 술이 없는 것 같다. 요새는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집 앞 편의점이나 온누리 상품권 사용이 가능한 전통시장 안에도 와인 판매점이 입점해 있는 경우가 많아 점점 더 일상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다. 밖이 아닌 집에서 모임을 할 때도, 여러 명이 모이는 자리에 제격인 샴페인과 함께면 기분이 업되게 마련인데,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한 태텡져는 내가 아주 선호하는 샴페인 중 하나이다.
레드와인은 연중 기본이지만, 아무래도 여름 같은 더운 때에는 화이트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이 땡기고, 요즘처럼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낮은 기온에는 레드와인을 마시면서 몸을 데울 수 있으니 이만한 주류가 또 있을까?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읽으면서 자꾸 와인을 마시고 싶고, 마셔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통근하는 지하철이나,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읽으면서도 아.. 한 잔만 호로록 굴리면서 맛과 향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읽는 내내 고충이었다. 곧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는데 지금부터 고심해서 어떤 와인으로 연말 파티를 즐길지 골라보아야겠다. 섬세한 레드와인, 토스티한 샴페인, 그리고 살짝 달달한 디저트와인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저자가 연말용 와인으로 추천한 시데랄도 아주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