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8
조혜림
죽은 자의 집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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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특수청소부인 저자의 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저자의 소개글을 보고 조금은 이해가 갔다.
저자는 몇년 간 일본에 거주하며, 특수청소업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심지어 그가 일본에 거주했을 때 동일본 대지진을 마주하고, 수 많은 죽음을 보았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점이, 일본은 우리와 달리, ‘죽음’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그 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빠르게 노년층이 증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가파르게 노년층이 증가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로써는, 지금의 일본의 모습이 미래의 우리 모습이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다.
그러한 이유로 일본은 고독사(특히 노년층의 고독사)에 대한 처리가 이미 시스템화 되어있고,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도 우리보다 일반화 되어있으며, 디지털 장의사라던가, 의도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대처가 우리보다 앞서있다.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 온 것은 아닐까? p 027
저자가 청소를 하는 곳은 대게, 흔히들 말하는 호상은 아닌 곳이다. 뉴스에서 종종 보는 ‘고독사’ 하신 분들, 혹은 너무 힘들어서 홀로 생을 끊으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위 여성도 그랬다. 주위 사람들에겐 항상 착하고 바른 사람이었던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착하지 못했던 사람. 남에게는 폐끼치기 싫어하는 그 사람은 본인 스스로를 죽이는 와중에도, 집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자기를 죽이는 도구마저도 분리수거를 했다.
자기 집을 치울, 이름모를 누군가를 위해 자기를 죽이는 도구마저 분리수거할 정도의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모진 마음을 품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쳐했던건지를 생각하면, 괜시리 마음이 씁쓸해진다.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고급 빌라나 호화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적이 없다. p 041
그가 살던 202호 현관문에는 ‘전기공급 제한 예정알림’이라는 굵은 고딕체의 제목이 붙은 노란딱지가 붙어 있다. 문구 전체가 인쇄된 다른 예고장과 달리 사인펜으로 직접 쓴 예정일자가 눈에 띈다. 아마도 악성 체납요금 문제를 직접 처리할 담당자가 배정되고, 그가 집까지 찾아와서 딱지를 붙이고 손수 날짜를 써놓고 간것이리라. 전기공급 중단 예정일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 겹친다. p 046
문득 지금까지 뉴스에 보도된 고독사 관련 기사를 보면, 대부분이 가난한 이였다.
챙겨줄 사람 하나 없는,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소액으로 겨우 먹고 사는,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수거하러 다니시는 그런 분들.
누구에게나 죽음은 공평하게 찾아온다는데, 찾아오는 방식에서조차도 빈부격차가 느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6월마다 돌아오는 6월 25일은 법적으로 지정된 한국전쟁 기념일이다.
법적으로 기념일을 지정할정도로, 우리나라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는 크다.
이렇게 기념일로 지정한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받쳤던, 아직까지 생존한 국가유공자들이 우리 곁에 있다.
국가유공자기 때문에 당연히 나라에서 지원해줄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나라가 지급하는 유공자 연금은 진짜 쥐꼬리만해서 생활비는 커녕 병원치료비로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유공자들의 연세를 생각했을때, 대부분이 건강이 좋지않은 노년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과거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쳤던 유공자들에게도 이런 대우를 하는데, 이런 훈장조차 없는 그저 길에서 폐지를 추워야만 하루 한끼 꼬박 먹을 수 있는 노인들은 어떨까.
휴대전화를 꺼내 몇 번이나 메시지를 다시 읽어본다. 나쁜 시키, 나쁜 시키. 그래,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지도 모른다. 오늘 당신을 속였고, 그 바람에 당신의 계획을 아주 보기 좋게 망쳐놓았다. 스스로도 잘 모를 이야기를 남발했으며 당신이 자유로울 권리를 공권력을 이용해서 침해했다. 그런 사람을 나쁜시키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온당한 일일 것이다. 고백하건대, 당신의 전화번호를 내 휴대전화에 고이 저장해두었다. 당신이 나에게 또다시 전화를 걸어오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때도 내가 당신을 막기로 할지, 과연 또 한번 당신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탁하건대, 언젠가는 내가 당신의 자살을 막은 것을 용서해주면 좋겠다. 나는 그 순간 살아야했고, 당신을 살려야만 내가 계속 살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p 184
비정한 사회가 되면서 타인의 일에 개입하는 일이 극히 드물어진 지금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비정해진 사회이지만, 그럼에도 희망이 보인다. 저자처럼 죽으려하던 누군가를 살리고,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덕분에 비정하기만 한 사회에도 아주 조금이지만, 가슴을 따뜻하게하는 온기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