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6
박예림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보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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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성과 찬사를 누리는 많은 작품들이 다소 무섭거나 지루하거나 혹은 둘 다의 느낌을 줄 수도 있는데, 이는 우리와 예술의 관계 속에서 은밀히, 인정받지 못한 채 존재하는 한 특징이다.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면 세계의 예술품 중 불편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이질적이고 혐오스럽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이 황홀경에 빠진 가톨릭 성인의 그림이나, 앙골라 동부에서 소년들이 통과의례를 할 때 쓰는 아프리카 가면, 또는 뻣뻣하고 거만하게 서 있는 대영제국 전성기 시절 영주의 초상화 앞에서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낀다고 상상해보라. 만일 그 관람자에게 이 작품들의 어떤 면이 불쾌하냐고 묻는다면, 작품의 기법이라기보다, 작품들이 속한 장르에 말뚝처럼 박혀 있는 일련의 부정적인 연상(많은 연상이 분명 자전적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탓으로 돌릴 확률이 높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우리의 관람자는 예를 들어, 바로크 그림을 보면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방문한 구부정하고 슬픈 스페인계 늙은 친척의 아파트에서 넌더리가 나고 침울해지던 경험이 떠오른다고 말할지 모른다. 실크해트를 쓴 사람을 보고선 30년 전 대학교에 다닐 때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던 어딘지 모르게 건방지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역사학도들의 상기된 얼굴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아프리카 가면 앞에 서니 예전에 봤던 부두교에 대한 영화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영적 우월성을 수시로 강조하던 박애주의자인 척하던 지인이 떠오른다고 털어놓을지 모른다.
이처럼 예술 장르에 대한 적대감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싹들 수 있다. 그런 부정저기 순간, 특히 어린 시절에 겪는 그런 순간은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궁극적으로 삶을 부당하게 오염시킬 위험이 있다. 게다사 그런 경험은 우리 내면의 다양한 방어적 행동을 촉발하는 버릇이 있어 오염의 범위를 확장한다. 우리는 특히 예술 영역에서 이 현상을 뚜렷이 목격하지만, 이는 존재를 한층 전반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인지적 결함이다. 그 특징은 위험을 너무 즉각적으로 예견하는, 부정확하고 과도하게 예민한 경고 체계라는 데 있다. 이 체계는 특정한 부저적 사건,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을 거칠게 일반화하고, 이를 통해 전반적인 혐오를 유발해, 실질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능력을 서서히 무너뜨리곤 한다.
방어적인 상태에서 아주 많은 요소들이 위협으로 느껴진다. 어떤 불운한 상황이나 만남 탓에, 종교, 문화, 축구, 아프리카, 공용 샤워장, 아바의 음막, 고급의류 상정, 자신보다 훨씬 더 부자인 부모와 학교 정문에서 잠시 나누는 대화 등에 전혀 공감하거나 관심을 기울일 수 없게 된다. 과민한 방어 체계는 궁핍함을 낳는다. 다시 말해, 본격적으로 특수한 문제들을 계속 일반화하면 삶의 발전을 꾀할 수 없다. 위협을 지나치게 빨리 지각할 떄, 폭발성을 지닌 과거에 대한 불안 때문에 현재 그 기억을 어렴풋이 건드리는 모든 것에 공격성을 드러낼 때, 우리는 쇠약해진다. 우리는 강력하고도 잘못된 감정의 논리를 사용한다. 대단히 부유한 사람이 나를 경멸했고, 그것은 아픈 경험이었다. 그래서 부자들은 다 나를 경멸할 테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몹시 싫어하고, 그래서 부자를 그린 그림은 내취향이 아니다. 또한 복도에서 마주친 이상한 사람들만이 천사에 관심이 있고, 이 그림 속의 남자는 천사를 보고 있고, 그래서 이상한 그림이라 나는 흥미를 느낄 수 없다.
예술관의 교류는 유용하다. 비록 소재는 방어적인 지루함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것이지만 혼다 있는 시간과 상태를 허락해 그런 소재를 좀더 전략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아낼 수 있기 떄문이다. 예술에 대한 방어적 태도를 극복하는 중요한 첫 단계는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이상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많은 예술이 결국 우리의 세계관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세계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바스티아노 리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사자가 성자에게 인생을 바꿀 지시를 전해준다고 믿었다. 사전트의 초상화 속 인물은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으며 어떤 사람들은 단지 혈통 때문에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