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7
이슬이
아몬드(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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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환갑이 다 되도록 혼자서는 흔들다리나 유리바닥을 건너지 못하는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이제껏 롤러코스터나 번지점프를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했다. 또 나는 상처를 잘 받는 편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을때,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경험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알아왔던 시간만큼은 아파야했다. 가끔 이런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좀 더 쿨해지고 무뎌지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되면 이 다사다난한 세상살이가 좀 더 쉽고 단순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머릿 속 아몬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남들처럼 살지 못해서 괴물이라고 불려야해던 소년 윤재를 보면서, 내가 했던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야기들이 덤덤한 그의 말투로 툭툭 던져져서 더욱 더 가슴이 아팠다.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은 사실 나에게 익숙치 않아서, 처음에는 사이코패스를 떠올렸다. 사이코패스 또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사회적 판단을 못하는 자들이니까. 그러나 윤재의 모습을 보면서, 알렉시타미아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뿐 반드시 그것이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없으나, 사이코패스들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그들이 아파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낀다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못 느낀다기 보다는 일반인들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알렉시타미아가 후천적으로 사이코패스로 변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이 특별한 아이를 부끄러워하고 슬퍼하는 대신 사랑으로 감싸며 가르쳐 사회에 적응하도록 도왔지만, 만일 그들이 윤재를 포기하고 버렸다면 윤재는 어떻게 자랐을까. 이 뿐만이 아니다. 홀로 남은 윤재를 빵집 의사선생님이 자처하여 보호하지 않았다면, 윤재의 첫 사랑이 된 도라가 먼저 다가와주지 않았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결국 윤재와 친구가 되었던 곤이가 없었다면, 윤재 또한 사회의 편견 속에서 충분히 범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보통 사람과 다른 그들이 괴물이라기보다는, 그들에게 울타리를 치고 손가락질 하는 우리가 더 무서운 괴물인 것이다. 설사 내면에 악이 존재하고 있더라도 그것이 발현되는가는 주변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사랑받지 못하여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곤이가 마침내 윤재의 희생으로 선한 길로 돌아왔듯이 말이다.
어쩌면 상대가 아플 것을 알면서도 더 할퀴거나 모르는 척 무시하는 현대 사회인들은 모두 머릿 속 아몬드가 덜 자란 것이 아닐까 싶다. 윤재가 많은 일을 겪고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싹텄듯이, 우리도 아직 더 성장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