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1
이주은
팩트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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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세상은 일반인들의 생각보다 확실히 좋아졌음을 책 전체에 걸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설명한다. 당장 이 책의 부제부터가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다.
1인당 gdp(ppp), 평균 기대수명, 아동 사망률, 교육 수준(여성들을 포함해서!), 전쟁 사망자 비율 등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눈부시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위 10가지 본능, 특히 2번 부정 본능은 그러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고,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잘못 생각하게 만든다.
세상을 선진국 vs 개도국의 구도로 보니 개도국들도 많이 발전해왔다는 걸 무시하게 되며,
인구폭발같은 위험한 추세가 앞으로 계속 갈거라 생각하니 미래가 암울해 보이며,
매일같이 극단적인 범죄나 테러, 자연재해, 안전사고를 접하게 되니 세상이 끔찍해지는 것처럼 보이며,
큰 숫자나 극단적인 사건 하나하나에 일회일비하니 세상이 지옥처럼 보이며2
개도국을 빈곤, 테러, 부패, 전쟁 같은 이미지로만 보니 개도국들의 빠른 발전을 보지 못하며3,
개도국은 운명적으로 빈곤하며 전통적인 구습이 지속될 거라 보니 희망 없는 지옥으로 보며,
한 가지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니 세상의 진보를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며4,
세상이 망가진다는 분노는 특정 인종이나 종교, 정치인, 금융인과 기업인을 적으로 돌리면서 더 심해지며,
비관론에 기초한 조급증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자기실현적으로 세상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 생각들은 전부 잘못되었으며, 문제가 있을지라도 세상은 확실히 여러 면에서 좋아졌으니까.
워낙 글빨도 좋고 근거가 워낙 탄탄해서 어지간해서 딴지걸긴 정말 어려울 것이다.
다만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저자가 7)의 운명 본능을 비판하면서 개도국도 빈곤에서 탈출하고 문화적 구습에서 멀어졌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엔 근거가 좀 부실하게 제시됐다. 저자가 물질적인 삶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 탓에, 생활수준으로 환원하기 애매한 문화적 현상에 대한 설명은 좀 소홀했다. 예를 들자면, 저자는 애를 많이 낳는다고 알려진 이슬람권 같은 지역에서도 저출산이 확산된다는 걸 문화 개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삼는데, 출산율은 문화도 문화지만 물질적 생활수준과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동한다. 이것만 봐선 생활 수준의 향상 때문인지 정말 충분히 문화가 바뀌어서인지 파악하기 애매하다. 여성의 권리가 올라가서 출산율이 낮아진 면도 있겠지만, 그 영향이 컸다면 이슬람권에서 히잡 의상이 유행/강제화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확산되는 것과 같은 문화적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더 심해진 사례들을 설명할 수 없다.
설령 이런 개도국의 긍정적인 변화가 실재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서구의 민주주의/인권과 같은 보편적 가치의 확산과 세계 2차대전 이후의 어마어마한 경제성장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류학적 실존의 위기까지 거론되며,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서구식 보편적인 가치의 확산이 서구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인도 등의 성장으로 인해 점점 애매해지며, 세계화와 포퓰리스트적 사고로 인해 정체성 정치가 유행하고 문화적 충돌이 빈번해지는 지구촌에서도 빈곤 탈출과 문화 개선이 계속될지는 많이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낙관적이지만도 않다.
위에 저자의 순진해 보이는 시각을 비판하긴 했지만, 저자가 무책임한 낙관론자인 건 절대 아니다. 수는 많이 줄었으나 지구촌엔 여전히 기본적인 생활도 못 누리는 빈곤층들로 가득하고, 현재 지구촌은 기후 변화와 전쟁, 금융위기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단 지구촌의 과거와 현재를 사실에 기반하여 제대로 이해해야만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의 10가지 본능에 의한 그릇된 문제 인식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칫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위의 구절을 통해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좌우파 포퓰리스트들의 무책임한 언행을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무조건적인 분노 조장, 필요 이상의 비관론, 특정인/특정 집단을 적으로 돌리는 행동, 세상에 대한 이분법적인 시야 등등... 포퓰리즘의 시대에 정말 절실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인간들이 세상을 잘못 인식하게 된 것도 단순히 언론이나 정치인처럼 특정 부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분명 잘못된 현실인식을 퍼트리곤 있지만, 이들의 일은 업무의 성격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위의 10가지 본능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전해온 본능임을 인정한다. 그저 본능을 통한 인식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으니 고치자고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