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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장우석
    유럽도시기행2-빈부다페스트프라하드레스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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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권에 이어,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도시 기행을 통해 전해주는데, 이번에는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편을 통해 동유럽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전해준다. 마치 유럽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도시의 건축물과 거리, 박물관과 예술품들이 느껴진다. 눈감고 그 이야기에 귀기울여 본다. 앞으로 작가의 계속된 작품을 통해 세계를 함께 여행하고 싶다. 빈에 도착해서 작가가 느낀 첫 느낌은, 그 명성만큼이나 대단해 보였다는 것이다. 도심의 모든 공간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찬란한 느낌이었다. 모든 건물이 크고 멋지고, 거리는 깨끗하고 넓었다. 상가와 쇼윈도, 그리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속에서도 부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어떤 기품이 흘러나왔다. 실내 장식이 화려했던 카페와 식당, 그만큼 비싼 음식값은 덤이다. 공공전시관과 민간갤러리를 중후하게 장식하는 거장들의 작품들. 그리고 거리마다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그러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혁명 이후 공화국 예술가들의 또다른 색깔의 예술혼이 융합되어, 빈의 거리는 충돌과 혼란을 가라앉힌 새로운 느낌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제체시온의 예술품들은 이러한 시대를 초월한 예술정신을 담고 있다. 창조자의 상상력과 철학과 개성들이 관객의 마음마다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부다페스트는 마자르 족의 나라다. 영웅 광장에서, 리스트 기념관에서, 그리고 테러하우스에서,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에 대한 헝가리 사람들의 정신과 심정을 읽어 보았다. 지배당한 자들의 열등감과 피해 의식,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은 책임 의식이 그들을 방황하게 했다. 한국 사람들과 비슷한 류의 정서이다. 인고의 세월, 그 속에서 끝끝내 세운 독립 공화국. 두 민족 모두 보수적이다. 그들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것은 바로 혁신에 소극적인 이유였다. 이제 그 두 민족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가? 다뉴브 강이 헝가리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는 슬픔이다. 다뉴브 강변에 금속으로 만든 남녀노소의 신발 수십 켤레에 담긴 의미는 여행자들에게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테러하우스에서와는 또다른 감정이다. 구두 안에 고여 있는 깨끗한 빗물과 도나우의 탁류가 대비되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가슴을 움켜쥐는 것이다. 프라하의 박물관들을 보고 생각한다. 히피, 여피, 보보스로 이어진 보헤미안의 유전자를 기억한다. 이것이 프라하에 모여 있고 계속 재창조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속된 욕망을 좇는 인간의 본성을 느끼게 한다.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모두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온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프라하에는 이러한 품 넓은 이해와 관용이 넘친다. 그것이 프라하의 도시 분위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프라하에 어둠이 깔리면 도시는 한순간에 다른 얼굴을 한다. 틴 성당과 구시가의 오랜 건물들에 조명이 들어오고, 자동차와 전차들에 전조등 불빛이 들어오면, 카페와 가로등이 눈을 뜨면, 프라하의 야경이 천천히 떠오른다.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저녁의 프라하는 그 자체로 랜드마크가 된다. 이 아름다움은 낮에 보았던 아픈 역사와 분주한 마음을 잊게 하는 평화 그 자체다. 드레스덴은 부활의 도시다. 1945년 2월의 참극을 딛고, 이제 다시 일어선 드레스덴은, 과거의 바로크 도시로 결코 돌아갈 수 없지만, 현재 그 모습 자체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함을 간직하고 있다. 추하면서 아름답고, 슬프지만 평화로운 도시. 어딘가 크게 어긋나 있는데도 편안함과 정감을 주는 도시. 길은 사람과 상품과 정보와 문화를 옮기고 섞는다. 길이 있어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며, 낯선 이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이해와 공감을 얻게 된다. 좋은 것들이 길을 통해 전해진다. 그러나 무기와 세균과 같은 것도 길을 타고 전해진다. 인간은 길을 따라 약탈을 저질렀다. 길에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고, 야만과 환희가 뒤섞인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인류 문명은 앞으로 나아간다. 네 도시의 여러 공간에서 각 여행자들은 각기 다른 감정을 느낀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여행자도 같은 감정을 느끼란 법은 없다. 인생도, 여행도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헤쳐나가면 된다. 작가도, 독자도 그렇다.
  • 2023-07-31 이재영
    팩트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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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팩트풀니스>는 한국어로 사실충실성으로 번역이 된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당행 신입연수에서 였다. 신입 연수원에서 당시 룸메이트였던 친구가 본 책을 읽고 있었다. 취업준비(?)로 바쁘게 살아온 터라 책과 멀리하였는데, 동기들은 저런 책을 읽는구나 싶었다. 제목만보고 처음에는 어떤 저널리즘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혹은 우리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각종 분야에 대하여 진실을 알려주는 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책의 내용은 두번째와 더 가까웠다. 한스 로슬링은 보건학 교수이다. 책은 어떤 퀴즈를 내면서 시작된다. 세계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라든지, 영아사망률 등에 대한 질문이다. 문제는 4지선다형 내지 3지선다형이다. 즉 찍었을 때 그 문제를 맞출확률이 25%나 33%는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체계적으로 현실을 왜곡하여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심한 경우에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의 오답률이 더 높게 나왔다. 이에 대하여 한스 로슬링은 그 원인을 추적한다. 처음으로 제시한 것은 그 지식이 매우 낡았다는 것이다. 세계는 10년 20년이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도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나 <침묵의 봄>같은 책들이 유행했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 읽은 낡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이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극적인 변화도 그 원인 중의 하나이다. 책을 읽다보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상을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합리적인 인간상을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한다. 하지만 최근의 행동경제학에서는 비합리적인 인간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지 못하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하지 못한다. 따라서 결국 제한된 합리성을 갖게 되는 것인데,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뉴스같은 것을 접하며, 세상이 굉장히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는 잘못을 범한다. 마치 이불밖은 위험해라는 유행어처럼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다. 비행기 사고는 매년 크게 줄고 있고, 영아 사망률도 매해 최저로 떨어지고 있다. 자연 재해로 인한 사망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휴리스틱, 이용가능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고를 한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예시를 바탕으로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물론 통계의 오류도 지적하고 있다. 평균은 많은 정보를 준다. 하지만, 때로는 두 집단간의 평균의 단순한 비교가 편견을 낳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로 사람들의 잘못된 오류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때 설명이 되는 것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학성적이다. 두 집단간의 성적평균은 남학생이 매년 높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하지만 두 집단의 수학성적 분포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면 남자의 성적 분포가 여자보다 소폭 높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분포가 겹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범주화를 시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세상은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여 한눈에 파악하기 힘드므로, 집단마다 어떤 특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편견이 되는 것이고, 편견이 크면 여러가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밖에도 책은 보건학을 다루고 있지만, 중요한 개념들은 경제학에서 많이 가져오고 있다. 경제학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학문이라는 것을 방증하듯 말이다. 또 한가지는 국가간 비교에서 총량과 그것을 인구로 나눴을 때의 비율이다. 최근 기후변화 문제에서 서양의 선진국들은 중국과 인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총량에 주목을 하며, 그들을 비난하였다. 이에 인도의 대표는 "서양이 과거에 배출한 누적된 온실가스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다. 하지만, 현재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국가별 총량이 아닌 1인당 배출량으로 비교하여야 된다"라고 한다. 국가간 소득수준도 GDP가 아닌 1인당 GDP를 비교하는 것 처럼 말이다.
  • 2023-07-31 제갈예나
    부자아빠가난한아빠1(20주년특별기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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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나의 절친한 친구가 추천해주면서 읽게 되었다. 한창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던 때에 추천받은 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찡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저자의 첫번째 아버지, 즉 교육을 많이 받은 아버지의 말씀이 나의 부모님의 말씀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내 세대의 부모님들은 모두 IMF 라는 격동의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열심히 공부해서 그에 걸맞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게 되었고, 그 안정성의 토대에서 삶을 일구어 오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들과 다르고, 앞으로 더 달라질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미 근로소득으로는 자본소득을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 왔고, 따박따박 월급만 받고 사는 월급쟁이들은 매주 복권을 사고, 코인과 주식창을 보며 밤을 지새우고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어떻게 삶을 헤쳐나갈 것인지 고민하던 내게 이 책은 돈에 관한 철학을 제시해주었다. 무엇보다 고리타분한 공부해서 안정성을 찾아라는 실효성 없는 말을 내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그것이 정답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내 마음 속에 불을 지폈다. 따라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후기에 공유하고자 한다. 직원과 기업주의 차이뿐만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과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의 차이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안전하게 살라고만 가르치는 대신 영리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이 더 낫다고 결심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아버진느 기업체에 가서 일하라고 조언했다. 똑똑한 사람이 되라고 얘기했다. 부자인 그의 아버지는 스스로 기업체를 세우라고 조언했다.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하라고 얘기했다. 누구든지 선택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을 교육시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돈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칠 수 있다. 안전하게 살거나 현명하게 살거나, 두 가지 선택.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는 미래를 준비하고, 교육을 받고, 당신과 당신 아이들의 금융 재능을 일깨워야 한다. 돈이 부족한 것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를 차려야 한다. 무엇보다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라. 네가 똑똑한 사람들을 고용해야 한다. “나에게 그것을 살 여유가 없다” 고 말할 때 우리의 사고는 멈춘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살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하면 우리의 사고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진술과 하나의 질문. 하나의 부정적인 생각과 하나의 긍정적인 도전. 우리의 머리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 더 강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번다. 이 교훈들은 해답이 아닌 지침이 될 것이다. 이 지침은 증가하는 변화와 불확실서의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건 더 부자가 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월급봉투의 크기로 결정되는 삶은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직장이 인정감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런 함정을 피하기를 원한다. 삶은 우리 모두를 내두르지.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어떤 사람은 싸우지. 몇몇 사람은 배움을 얻고 계속하지. 이런 사람들은 삶이 자신을 내두르는 것을 환영해. 이를 스스로 무엇인가 배워야 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안전하게 살면서 옳은 일만 하게 되는 건, 실제로는 삶이 너를 내두르면서 굴복시키는 거야. 너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지.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이기는 것이지만,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 훨씬 크지. 그래서 너는 안전하게만 살려고 하지. 지금까지 나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단다. 그들은 일자리와 급료에 대해서만 얘기하거나 요구하지 돈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는 하지 않아. 그래서 대부분이 인생의 황금기를 돈을 위해 일하면서 허비하게 되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말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그대로 놔두고 늘 남들을 바꾸려고만 하지. 이 점을 명심하렴. 다른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단다. 정부가 언제나 제일 먼저 자기들 몫을 떼어 가거든. 돈을 벌면 세금을 내야 해. 돈을 쓸 때에도 세금을 내야 하지. 저축을 할 때도 세금을 내고, 심지어 죽을 때도 세금을 내야 한단다. 세계 각지에서 정부가 확대되며 점점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서 구하는가? 대개의 경우 그런 돈을 뽑아낼 데라곤 중산층 밖에 없다. 즉 근로자가 타깃이라는 얘기다. 세법은 본래의 의도대로, 경제를 구축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에서는 전문 투자자와 사업체 소유주에게서 아주 적은 수준의 세금만을 거둬 간다.
  • 2023-07-31 김영준
    암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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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율 0.78명 시대, 모성은 요즘 여성들은 물론 과학자들에게 관심 받지 못한 주제일지도 모르겠다. 동물의 암컷은 늘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왔으며, 천성인 모성으로 육아에 헌신하는 존재로서 그려졌다. 모성은 애착 호르몬인 옥시토신의 영향을 받지만 저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케냐 킬리만자로에서 일곱 세대에 걸쳐 1,800마리가 넘는 노랑개코원숭이를 연구한 동물학자 진 앨트먼 프린스턴대학교 동물행동학과 명예교수에 따르면 영장류에게 모성이란 ‘양육과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협상하는 줄타기’다. 흥미롭게도 동물의 세계에서 암컷이 임신과 수유의 세계에서 풀려나면 오히려 자식에게 헌신하는 주체는 주로 아빠다. 조류 대부분은 부모가 새끼를 함께 돌보고 양서류는 싱글대디, 싱글맘에서부터 공동육아에까지 다양한 돌봄 전략을 보여준다. 공동의 탁아소를 짓고 새끼를 키우는 백목도리여우원숭이를 비롯해 포유류의 3%는 남의 새끼를 돌보고 부양하는 알로마더, 즉 다른 엄마들의 절실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동물 세계의 다양한 돌봄 전략은 인간이 그 어떤 유인원보다 크고 무력하게 태어나지만 훨씬 빨리 번식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든다. 바로 돌봄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하나의 사회가 보호자의 역할을 공유하는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공감과 협력,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진화되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다정함과 덜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모성본능을 깨울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사회가 알로마더의 역할을 자처할 때 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한국사회의 심각한 젠더갈등은 저출산의 주요 요인으로 주목받지만, 암수 동물 사이의 성적 갈등은 성공적인 번식을 위한 진화의 엔진이 된다. 이 성적 갈등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가 바로 거미다. 번식기의 황금무당 거미는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을 슬러시로 만들어 흡입해버리고, 수컷은 죽어가는 와중에 정자를 발사시켜 번식에 성공한다. 번식이 양성이 합심하는 조화로운 과정으로 설명했던 다윈에게 팜파탈과 같은 암거미의 존재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번식이 남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대립하는 이해의 줄다리기 혹은 성적 갈등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전자를 전달하고자 하는 수거미와 양질의 영양분을 흡수해 건강한 알을 낳고자 하는 암거미의 목표가 서로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모든 성적 갈등이 누군가에게 치우친 권력 구조에서 벌어진 것은 아닐까? 가부장적 사회가 아닌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는 좀 다를까? 귀여운 외모로 유명한 미어캣은 모계사회를 이루는 대표적 포유류인데, 여왕을 제외한 다른 암컷이 수컷과 짝짓기를 시도한다면 무리에서 퇴거당할 뿐 아니라 잔혹하게 살해당하기 십상이다. 하위 계급의 암컷은 자신의 새끼를 죽인 여왕의 자손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형벌에 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폐경을 하는 동물 중 하나인 범고래의 모계사회는 어떤가. 수십 년간 무리를 이끄는 나이 든 여족장은 자신의 생식 능력을 제한하여 젊은 암컷과의 경쟁을 피하고, 축적된 경험과 지혜로 무리를 이끈다. 저자는 동물을 이념의 무기로 휘두르는 것을 경계하지만 한편으로는 동물의 암컷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무엇이 자연적이고 정상이며 심지어 가능한가에 대한 오래된 기본 전제를 뒤흔들 수 있다고 믿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기원과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은 영장류학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잔인한 개코원숭이의 문화는 남성 지배와 공격성을 설명했으며, 1970년대에는 침팬지가 인간 조상의 모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침팬지 사회에서 암컷의 권력이 과소평가되었다는 프란스 드 발의 목소리에 동의하며, 모든 권력을 거머쥔 그 어떤 알파 수컷도 배후에서 그를 밀어주는 암컷 킹메이커, ‘마마’가 없이는 무리를 지배할 수 없었다는 놀라운 발견을 주지한다. 이들 나이 든 암컷 침팬지는 모든 침팬지를 이어주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갈등이 벌어졌을 때 모두가 찾는 중재자였으며, 암컷들의 우두머리로서 가족과 동맹 네트워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장류 사회에서 권력은 신체적 우위뿐 아니라 경제적 레버리지(예를 들면 열매 위치를 아는 전문 지식, 번식에 대한 통제, 전략적 동맹 등)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이 ‘마마’의 존재는 수컷이 지배하는 히말라야원숭이와 버빗원숭이 사이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 만약 침팬지 말고 다른 영장류를 먼저 발견했으면 인간 사회와 권력의 기원에 대한 이해가 뒤집혔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대안적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 2023-07-31 김지현
    가재가노래하는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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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묘사가 정말 생생하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델리아 오언스는, 미국 조지아대,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학과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주인공인 카야가 실제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연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개성있는 문체가 기억에 남았다. 너구리가 새끼 네 마리를 데리고 흙탕물에 들어갔다 나온 자국, 달팽이 한 마리가 그리던 레이스 같은 무늬가 곰의 등장으로 끊어진 자국 등등 표현이 참 예민하고도 구체적이다. 또 이 작가는 동물학 이외에도 시에도 조예가 깊은 사람인것 같다. 카야의 첫사랑이었던 테이트는 아버지를 따라 시를 읊곤 하는데, 물론 번역된 시구인 탓에 완벽하진 않겠지만 사춘기 소년의 감성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줄거리는 크게 1부와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에서는 늪지에 살던 카야가 가정폭력과 외로움으로 얼룩져버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마을 사람들의 권유로 학교에도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 카야는 늪지에서 온 야만인 취급을 받으며 상처만 받았다. 그러다 첫사랑이었던 테이트를 만나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벅찬 설렘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 아픈 잠시동안의 이별도 맞게 된다. 나는 특히 작가가 이렇게나 깊은 외로움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테이트와의 이별을 마지막으로 1부가 마무리되기 전까지, 슬프고 고독하기만 한 카야의 인생에 나는 큰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학교도 없고, 돌봐줄 가족도 없이 여리고 여린 어린 여자아이인 카야는 해적 놀이를 하다 발바닥에 못이 박히는 큰 사고를 당해도 혼자 이겨내야만 했다. 폭력적이고 불안한 언행으로 가족을 다 떠나보내게 만든 아버지에게 마저도, 아버지가 약간의 호의를 베풀자 카야는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마음을 연다. 이쯤되니 카야가 불쌍해져서, 대체 언제쯤이면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2부가 시작되기 전에는 사실 카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느라 마을의 인기있는 청년인 체이스가 습지에서 시체로 발견된 이야기는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중간중간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작가는 이 소설이 로맨스 소설인지 미스테리 소설인지 장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1부에서도 약간의 암시는 있었지만, 카야는 항상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겉만 맴도는 아웃사이더였다.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 오면서, 아마 마을 사람들과 카야 사이에는 크나큰 오해의 벽이 만들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변호사와 오래 전 헤어졌던 오빠 조디, 테이트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무죄 판결을 받게 된 카야는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결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특히 무죄 판결 이후에 털어놓는 카야의 속내가 그렇다. 카야는 난 한번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떠나고, 미워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카야는 한평생 고생만 했는데, 누명을 벗고 행복하게 사는 인생을 별로 누리지도 못한 채, 지나간 시간을 원망만 하다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이 책이 작가가 일흔의 나이가 되어 처음 쓴 소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어찌 보면 고독, 외로움은 인간에게 뗄레야 뗄 수 없는 누구나 일반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그 외로움을 깊고도 섬세하게 묘사한 작가의 능력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작가는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부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카야는 어려서부터 떠난 어머니가 다시 돌아올것이라고 믿었고, 아버지와 교감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 기대가 여러 번의 상처와 배신에 무뎌지면서 카야는 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호소력 있긴 하지만, 그렇지만 카야가 느꼈을 고독은 어둡고 슬프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네 잘못은 없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카야를 위로해주고 싶어졌다.
  • 2023-07-31 최은지
    노화의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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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화의 종말. 노화는 질병이라는 전제로 시작이 되는 이야기. 질병을 치료하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이며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관심갖을 법한 재미있는 주제 안티에이징이다. 책에서 말하는 노화를 방지하는 활동은 크게 6가지 이다. 일단 그중 절반은 먹는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무엇을 먹을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먹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저자의 주장을 나열해보면, 1. 적게먹는 것 2. 간헐적 단식 또는 주기적 단식. 적게 먹거나 단식을 하는 행위는 우리 몸에서 서투인을 더 활발하게 만들어 내기 떄문에 노화를 방지하는 성분을 체내에서 더 많이 만들게 하는 환경적 요인을 제공한다. 3. 육식을 줄여라. 인체 내 모든 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인 아미노산을 섭취하는 데 있어서, 육류보다 채소가 효과적이다. 육류에는 아미노산 9가지가 들어있으나, 동물성 식품은 심혈관 질환 암 발병률과 관련이 높다. 4.땀을 흘려라 운동으로 혈액 흐름이 개선된다. 그리고 혈구에 있는 텔로미어라는 세포의 길이 더 길고 마모가 느려진다. NAD 농도를 증가시켜 생존 회로를 활성화하고, 에너지 생산량과 근력이 늘면서 산소를 운반하는 모혈관나이 더 성장한다. 5. 몸을 차갑게 하라. 춥게 지내면서 갈색 지방이라 하는 미토콘드리아가 풍부해진다. 미토콘드리아의 서투인 물질이 훨씬 더 많아지고 당뇨병, 비만, 알츠하이머의 발병률을 줄인다. 6.DNA 손상을 막아라 정상적인 DNA 재생을 위해서는 염기서열의 정보가 끊기거나 손상을 입는 것을 줄여야 한다. 흡연 음주 X선 등은 큰 영향을 주는 인자다. 장수 유전자와 항노화제, 장수 약물에서부터 노화예방백신과 재프로그래밍, 생체표지추적, 맞춤 장기 생산 등 최신 의료기법, 저 아미노산 식단과 저온 노출,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등 라이프스타일 개선법까지 일상 생활습관과 최첨단 과학 의료기술을 망라하는 놀랍고 확기적인 장수의 비법들을 공개했다. 앞서 정리한 내용 중 NAD라는 물질은 핵심 키워드다. NAD라는 물질이 노화와 질병을 비롯한 많은 주요 생말학 과정의 핵심 조절 인자인데, 이것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는 무엇인가라는 연구가 이어졌고 NMN이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NMN은 NAD 농도를 회복시킴으로ㅆ 당뇨병, 불임, 생체 능력 회복에도 효과가 있음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이책에서 얘기하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노화방지가 인류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것. 인구의 고령화로 인해 노인이의 인적자원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이부분이 인상깊었다.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혜는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는 새로운 인력이자 자원으로 보며 사회적인 선훈환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 그러나 저자 또한 노인인 입장에서 쓴 의견이며 빠르기 변화하는 시대에서 젊은이들의 방향성을 노인이 결정한다는 것 또한 고민해볼 문제이다. 또한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의학은 생명연장에만 몰두하지만, 본인의 연구에 따르면 단순한 생명연장이 아닌 양과 질을 겸비한 건강한 삶을 가진 생명의 연장이라는 것. 21세기에는 어떠한 장애나 질병없이 인간 수명이 15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며 인구증가에 대한 문제를 과학기술등을 통해 해결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다. 누구나에게 노화의 방지라는 것은 달콤한 이야기다. 저자의 말대로 단순한 생명연장을 넘어 건강한 삶으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각종자료로 입증해주는 이 주장이 대단한 것일지 모르겠다. 허나 이것 또한 부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사람들이 한정적이므로 이미 의학적 혜택을 많이 받고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추가적으로 더 생명연장을 얻을 수 있다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 또한 시간이 흘러 자연적으로 빈민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정보의 수혜의 양극화는 막을 수 없는 문제이다. 어찌되었던 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법을 나열한 장미빛 미래에 대한 주장이 뒷받침 되려면 노화 극복을 통해 인간의 삶이 더 건강하고 윤택해질 수도 있지만 빈부 격차에서 수명의 격차로 이어지는 차별, 환경파괴와 자원 고갈, 늘어난 시간으로 인한 삶의 가치의 희석 등 우려되는 문제에 대한 해답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 2023-07-31 조수진
    21세기를위한21가지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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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종교를 등에 업은 ‘종교인’을 믿지 않는다. 기도를 하는 부모님에게 나는 차라리 그 시간에 TV를 보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가만히 앉아 바라는 걸 되뇌는 행위가 과연 무엇을 바꾸겠는가? 때로는 스스로 화도 났다. 성당에서 보냈던 내 시간을 모아 다른 걸 했더라면, 적어도 조금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신앙생활을 했을 땐 꽤 깊이 그들과 함께했다. 때문에 가까운 종교인들도 있었고,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봤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종교와 동일시 할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바꾸려 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 사이 어디쯤 자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귀를 막았고, 지친 나는 스스로 떠났다. 결코 그들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종교라는 것 자체가 싫어지기도 했고, 그렇게 시야가 좁아져 귀를 막은 그들이 미웠다. 이런 내게 유발 하라리는 종교의 무서움을 말한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이유.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이유.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그들의 이야기. 어쩌면 기계와 알고리즘 세상에서 방향을 잃은 더 많은 사람이 찾아갈 곳은 종교가 아닐지. 그렇게 그들을 조종할 종교란 무엇인지. 마치 펜으로 맨 등판을 벅벅 긁는 듯한 아픔이 있는 글자들이었다. 21세기의 종교는 비를 내리게도 못하고, 병 치료도 못 하고, 폭탄도 못 만들지만, ‘우리’가 누구이며 ‘그들’은 누구인지, 누구를 치료해야 하고 누구에게 폭탄을 투척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종교가 알고리즘에 침투하고, 기계 속에 자리 잡을 때면 그들은 인간들을 사로잡기 위해 건드린 ‘인간적인 면모’처럼. 기계를 사로잡기 위해 ‘기계적인 면모’를 건들지 않을까.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망쳤을 때. 홀로 어둠에 남아 집히는 걸 모조리 던지며 눈물을 뿌릴 때. 그러다 지쳐 헛웃음만 나올 때. 문득 생각한다. 그냥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인류를 발전시킨 ‘기술’이 결국 모든 악의 근원인가 싶다. 그래도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란 기술로 밥 먹는 내게 이는 꽤 큰 딜레마다. 어쩌면 ‘기술’이란 종교에 몸 담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렇다. 개발자로 꽤 오랜 시간 살아온 덕에 종종 듣는 말이 있다. 개발자여서 좋겠다는 말이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만들고, 웹 애플리케이션도 만들지 않느냐고. 만들고 싶은 거 만들 수 있어서 부럽겠다고 한다. 글쎄, 마냥 그럴까. 처음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울 때보다 경험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나아지지 않은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고민이 있는데, 나보다 더 나은 기술자들에 관한 부러움. 그들과 좁혀지지 않은 간극, 그래서 나는 뭘 만들고 싶은 것인가 하는 고민. 그래서 나는 어떤 기여를 하는가 하는 부끄러움. 앞으로 뭘 해야 하나 하는 막막함. 결국 똑같다. 기술은 무한하고, 발전 속도를 따라가는 것마저 벅차다. 마냥 기술만 좇아서 될 일이 아니다. 늘 사람과 함께해야 하고, 때론 기술보다 중요한 게 많이 있다. 기술자로 살아가는데도 말이다. 하물며 인류 전체를 본다면, 정말 ‘기술’이 언제나 정답일까. 어둠 속에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눈이 적응해 조금 흐릿하게 보이곤 한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견뎌보지도 않고 어둠을 논하는 건 꽤 어리석지 않을까. 그저 텍스트로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휘젓고, 내 머릿속을 마저 마구 휘저은 유발 하라리의 논리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표한다. 할 수만 있다면, 유발 하라리에게 나에 관한 21가지 제언을 올려보라고 하고 싶다. 그는 과연 내 21가지 문제를 어떻게 고를까. 21가지 제언을 위해서 하라리는 인류의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 읽고, 엮고, 그 정보 속에 살았을 것이다. 나에 관한 21가지 제언을 쓴다 해도 하라리는 똑같이 하지 않을까? 하라리에게 부탁할 수 없으니, 나 스스로 내게 21가지 제언을 해야 할 테다. 나 역시 그처럼 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읽고, 엮고, 그 정보 속에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 측면이라면, 내가 바랐지만 아직 얻지 못한 것들, 여전히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내 이야기 역시 무의미하진 않겠다. 내가 어디에 취했었든, 내가 어디에 취해있든. 어쨌든 나란 사람은 내 세상에 살 테니 말이다.
  • 2023-07-31 조수진
    지구끝의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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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태하면서도 또 아름다운 지구 끝의 온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 세 군데 있다. 1)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프림 빌리지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인류 전체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개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공백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이곳이 투명한 스노볼 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득하게 아름다웠고, 당장 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2)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 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매일의 활기에. 3)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했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 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요즘 읽는 책들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인지 바이러스 등,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무언가와 사투를 펼치는 이야기들이 꽤 등장한다. 평범한 삶이 불가능해져 바이러스가 유입하지 못하는 돔을 지어 산다거나, 피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는다거나,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싸움을 하는 등의 그림이 그려지는 책을 읽을 때마다 괜시리 마음이 불안해진다. 언젠가는 다가올 것 같아서. 픽션을 픽션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더스트 폴 이후 더스트 생태에 대해 연구하는 아영은 해월 지역에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모스바나 식물 조사 요청이 들어와, 그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온유라는 지역에서 잠시 살았던 아영은 어릴 적 아영에게 돔 시티에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줬던 이희수씨를 기억해냈다. 이희수씨의 정원에서 봤던 푸른 빛의 식물 때문이었다. 아영이 더스트 생태학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이희수씨가 들려준 식물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돔 밖에서는 더스트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죽어갔던, 더스트 폴 시대의 이야기. 프림빌리지 속 은은한 빛을 뿜어냈던 온실은 더스트로부터 프림빌리지 속 사람들을 지켜냈다. 온실 안에서 식물만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레이첼 덕에 더스트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프림빌리지 안의 온실은 희미한 반짝임을 낼 수 있었다. 레이첼이 만들어낸 식물들은 더스트 폴 시대의 사람들을 구해냈지만, 이 식물이 보다 더 넓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길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온실을 지켜내지 못했다. 레이첼이 만들어낸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생태학을 연구하는 아영에게까지 이어진다. 모스바나와 이희수씨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아영은 돔 시티에 살았던 아마라와 나오미를 만나게 되고, 그녀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녀들이 말하는 사람과 이희수씨가 동일 인물이라는 강한 끌림을 받게 된 아영은 이희수씨를 찾아 나선다. 김초엽 작가가 더스트 폴 시대의 이야기와 그 이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식물'과 흥미롭게 연결시킨 점이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정적인 이미지인 '식물'이 지극히 동적인 '사람'과 만나는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식물'이 단지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준다.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시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생존의 위협을 움켜쥐는 시대에도 자연의 터줏대감인 '식물'이 갖고 있는 힘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느끼지 못했던 '식물'의 힘 때문에 이야기가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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