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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31 한현정
    총균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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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에서는 이 책의 주제와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의 주제는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다음과 같다. 각 인종들 사이의 바뀌기 어려운 지위 차이가 뚜렷이 눈에 보인다. 이러한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적 설명에 반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은 하기위해서이다. 저자는 이 책을 한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이 책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에서는 문명이 싹트기 직전 각 대륙에는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제각기 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대륙의 환경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축소시켜 폴리네시아 섬들을 통해 고찰한다. 처음에는 단 하나의 사회에서 출발했던 폴리네시아인들은 각양각색인 여러 섬에서 각양각생의 파생 사회를 낳게 된다. 3장은 마치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부분이었다.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족이 태양신으로 숭배하는 존재였던 아타우알파를 생포했던 사건을 통해 유럽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정복하게 된 직접적인 요인들을 알아보는 부분이었다. 그 요인은 바로 총기, 쇠 무기(아메리카 원주민은 곤봉;),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이다 2부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에서는​ 전반적으로 정복과 식량 생산 사이에 주요한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식량 생산의 기원이 총기, 병원균, 쇠의 탄생에서 나타난 지리적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 즉, 식량생산은 잉여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잉여식량 운반수단을 생기게 만든다. 이 두가지는 중앙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선행조건이다. 그러므로 식량생산은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말과 낙타의 군사적 쓰임새와 동물에게서 얻은 병원균의 살상력까지 식량생산과 정복사이에는 여러 연관성들이 있다. 먼저 식물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와 양상은 지리적으로 달랐다고 한다. 그 원인은 수렵 채집 쪽이 초기단계의 식량 생산보다 훨씬 더 보상이 컸다는 것과 지리적 그리고 생태적 장애물이 유난히 강력한 지역과 식량 생산에 부적합한 지역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는 무의식적인 인위선택이다. 작물화하는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은 그 식물들이 작물화에 그다지 유망하지 않아서 식량 생산이 늦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2부의 뒷쪽부분은 동물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은 성공은 여러가지 요소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가능하며 어느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법칙이다. 선택된 가축화는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야생 포유류 중에서 성장속도, 성격 등등의 모든 항목에서 합격점을 받은 동물들만이 가축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 전파 속도의 차이의 원인은 대륙의 축의 방향, 즉 위도가 주된 요소이다. 유라시아의 동서 축을 보면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이 추이, 생식지나 생물군계 등도 서로 비슷해 식량 생산 전파 속도가 빨랐다. 반면 아프리카와 남북아메리카는 남북 축이 지배적이어서 전파 속도가 늦어졌다. 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에서는​ 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으로 아메리카 원주민과 기타 비유럽인들을 죽게 되었다고 한다. 식량 생산과 그것을 습득한 후 수천 년에 걸친 인류 사회의 발전은 문자의 진화에도 필수적이었다. 대륙별 기술 발전의 격차 요인은 각 대륙의 면적, 인구, 확산의 난이도, 식량 생산의 출발 시기 등에 따라 격차가 나게 되었다. 식량생산은 인류의 진화에서 최초로 경제적으로 전문화된 사회, 즉 식량을 생산하는 평민들이 식량을 생산하지 않는 전문가들을 먹여 살리는 사회가 발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술은 자가촉매작용을 한다. 자가촉매작용이란 스스로 촉매작용을 일으켜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 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유라시아는 처음부터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 있었지만 1492년에 와서는 엄청나게 앞서게 되었다. 유라시아의 지리적 요건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정복의 궁극적인 원인은 식량 생산과 각 사회 사이의 경쟁 및 확산이었다. 거기서 시작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 병원균, 문자, 기술,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등 정복의 직접적인 요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공통적인 요소는 조밀한 대규모 인구와 정주형 생활이었다.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섬의 역사를 살펴본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은 환경이 지니고 있는 특징들 때문이다. 동아시아 내에서 중국은 식량 생산, 기술, 문자, 국가 형성 등에서 출발이 빨랐다. 결과적으로 중국에서 혁신한 각종 문물은 이웃지역들이 발전하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남중국 해안으로부터 타이완과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서부 및 중부까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지만 뉴기니와 오스트레일리아는 차지하지 못했다. 위의 두 이야기는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예들을 보여준다. 유럽인 침략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보다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던 세가지 요인이 있다. 첫번째는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유라시아에서 훨씬 빨랐다는 점이고 두번째는 유라시아에는 작물화할 만한 야생식물은 물론이고 특히 가축화할 만한 야생동물이 훨씬 많았으므로 결국 유라시아의 식량 생산이 더 우수했다는 점이다. 세번째는 대륙 내의 확산을 방해하는 지리적/생태적 장애물이 비교적 적었다는 점이다. 오늘날 아프리카에 흑인 천지가 된 이유는 오늘날 아프리카에 남아 있게 된 4개의 토착어족(나일사하라어-반투계, 니제르콩고어-반투계, 아프로아시아어, 코이산어)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의 우연으로 나일사하라어, 니제르콩고어, 아프로아시아어 이 3개의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 어쩌다가 시간과 장소를 잘 타고나서 가축과 농작물을 갖게 되었고 그 덕분에 인구가 늘어나 다른 민족들을 교체하거나 자신들의 언어를 쓰게 했던 것이다. 코이산 어족의 사용자들은 얼마 안 되지만 그 정도라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그들이 반투족의 농경에 부적합한 남아프리카 지역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지리적/생물지리학적 우연(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이다. 에필로그에는​ 앞서 말했던 환경적 차이이외 유라시아 여러 지역의 차이점 문제, 문화적인 원인들의 역할, 개인의 역할 등의 원인들을 열거했다. 저자는 인간 사회에 대한 역사적 연구도 과학적일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일들이 현대 세계를 형성했고 또 어떤 일들이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줌으로써 오늘날의 우리사회에도 보탬이 될 것임을 낙관하고 있다고 말하며 책을 마무리하였다.
  • 2023-07-31 한현정
    이방인(세계문학전집266)(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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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은 작품 그 자체로 보나 20세기 서사 형식의 역사에 있어서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출판 당시부터 하나의 문학적 사건 이었다. 사람들은 이 소설을 2차 대전 종전후 최대의 걸작을 평가했고,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소설을 건전지의 발명와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했다. 가에탕 피콩은 지걱히 현대적인 감수성을 완벽에 가까운 고전적인 형식으로 끌어올렸다고 격찬했고, 에마뉘엘 무니에는 뼛속까지 고전적인, 다시 말해서 의도적이고 정돈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를 지향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거의 청교도적인 이 작가는 내면에 분열의 아품과 어둠을 간직하고 있다 라고 지적했다. 1945년에 이미 사르트르는 이런 모든 평가를 종합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차지하는 올바른 가치를 꿰둟어 보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인 말을 남겼다. 카뮈의 어둡고도 순수한 작품 속에서 미래의 프랑스 문학의 주된 특징들을 시결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어떤 ㄴ고전적인 문학을 약속한다. 그 문학은 아무런 환상도 주지 않지만 인간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고 가혹하지만 불필요한 폭력은 배제하는, 열정적이지만 절제된 문학.... 인간의 형이상학적인 조건을 묘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사회의 여러 가지 움직임들에 아낌없이 참가하는 문학이다. 3월 이 어두운 방에서 - 갑자기 낯설어진 ㄴ한 도시의 소음을 들으며- 이 돌연한 잠 깨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하여 모든것이 낯설다. 모든것이, 내게 낯익은 존재 하나 없이,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이 몸짓, 이 미소는 무엇과 어울리는 것인가?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다른곳 사람도 아니다. 그리고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곳을 찾지 못하는 알지 못할 풍경에 불과하다. 이방인, 그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내가 임의로 강조하ㅕ 표시한 단어들은 모두가 다 카뮈의 소설제목의 단어의 번역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은 과거의 죽음이 아니라 미래에 닥펴올 죽음이고, 남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라는 증거다. 따라서 죽음은 사실상 소설의 참다운 내용이기에 앞서 소설의 구조를 드러내는 테두리, 표적, 경계선으로서 소설에 형식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은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자신도 모르게 믜르소의 죄의식을 유발한다. 즉 그는 어머니의 죽음의 그늘 밑에서 살아간다 죽음은 이방인의 가장 뚜렷한 주제인 동시에 형식이다. 죽음은 작품 전체에 일관성 통일성을 부여한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 뫼르소는 선박회사 사무원으로서 그때그때의 일상생활을 즉흥적으로 영위한다. 그의 대타관계는 남에게 타자의 이해와 무관한 자연인의 삶이다. 반면에 살인 후 재판을 받게 되면서 그와 그의 행동들은 타자의 이해, 해석의 대상이 된다. 1부와 2부는 서로를 비투는 거울이면서도 과연 동일한 소설에 속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판이한 인상을 준다. 알베르 카뮈는 죽음과 가까이 지낸 작가이다. 그의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시지프 신화'가 자의적 죽음을 시작으로 삼았다면, '이방인'은 주인공 어머니의 자연적 죽음을 시작으로 전개하고 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이토록 무미건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어머니가 계신 양로원을 찾아가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느껴지는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죽음에만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매사에 감정의 큰 동요가 없는 편이었다. 또한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묻는 말조차 간단하게 답변하고 마는 '스몰 토커'였다. (그게 뫼르소에게 얼마나 큰 타격이 될지 초반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1부와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에서는 그런 뫼르소의 일상을 나열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관리인의 권유로 밀크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함께 피운 뫼르소,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피곤한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동네 해수욕장에 갔다가 마리와 만난 뫼르소, 이웃주민 살라마노 영감, 레몽 생테스와의 마주쳐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뫼르소, 레몽을 따라 간 별장에서 별안간 아랍인들과 시비가 붙은 뫼르소. 이처럼 1부에서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일상, 정말 별 의미없어 보이는 뫼르소의 일상이 이어지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걸 왜 읽고 있는건지 헷갈리는 순간까지 있었다. 이게 과연 고전 소설의 축에 속할 수 있는 것인가...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읽었더랬다. 갑자기 살인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등장한 것을 제외하고는 1부는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2부에 넘어가면서 이 소설의 진가가 드러났다. 2부는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의 재판과정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1부에서 나열된,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그 행동들의 의미가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고 여유롭게 커피나 마시고 있었다면서 그를 냉담한 인물로 판단했고, 장례식이 끝난지 며칠 되지도 않아 마리라는 여자를 만나 애인을 삼았다면서 그를 인정머리없는 인물로 판단했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후회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도덕적 원칙이 결여된 인물로 판단했다. 그 결과 재판은 뫼르소를 유죄로 판결하고 사형을 선고한다. 2부를 보는 내내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그 흔한 일상들이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됐다는 게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 추측일 수도 있지만, 아마 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의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 그런 일상을 겪으며 누구나 한번쯤 흔히 할 수 있는 생각들이 상황에 따라서는 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 '그럼 너는 죄인이니?'라고 독자들을 향해 비웃듯 조소를 던지는 작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 2023-07-31 소온
    오은영의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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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의 의미는 쉽게 말해 아이를 기르는 것이다. 이는 좁게는 갓난아기를 거쳐 초등학생까지의 어린 아이를 기르는 것부터 넓게는 취업과 자립까지 도와주는 것을 뜻하는 의미일 것이다. 흔히 육아를 농사에 빗대서 자식농사라고 하기도 하는데, 농사만큼 손이 많이 가고 힘들기도 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누구는 자식농사 대신 더 힘든 돌봄 노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육아는 직접해보면 매우 어렵고 힘들다. 순간적인 노동 강도 자체가 낮을지는 모르겠으나, 휴식시간이 없고 예측할 수도 없는 등 24시간 365일을 대기 상태로 있어야하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다. 굳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가는 것도 육아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다.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특히 더 힘든데, 신생아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고 매 2~3시간마다 먹여야 하다보니 모유 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거의 잠을 못잔다. 두 세달 정도는 거의 매일 밤을 세워야 하는데,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 재우다가 눕히면 깨서 다시 먹이고 반복시키는 행위는 부모를 힘들게 한다. 덕분에 하다 보면 자식에 대한 애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옛말에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돈네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닐 것이다. 신생아나 유아의 경우에는 특히 안전사고에 취약해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한국은 조리원 문하가 발달되어 그나마 초기 어려움을 늦게 겪을 수 있으나, 조리원에서는 신생아를 돌봐줄 뿐만 아니라 아기 돌보는데 필요한 각종 스킬을 속성으로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밤에는 잘 수가 있다. 산후조리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잠인데, 대부분의 조리원에서 모유와 분유를 혼합수유하면서 동시에 모유 수유를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짜서 운영하고 있다. 더드슨이라는 사람은 육아를 1년 365일 내내 쉬는 시간이 없는 직장을 갖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20~30년간 철이 들지 않는 남녀를 부모로 길는 과정이며, 부모에 대한 효심을 샘솟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육아를 하다보면 사회생활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장소에서 마찰을 빚을 일이 맞아지게 된다. 이러한 마찰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기와 어린이들이 아직 미숙하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사회 생활에서의 공고예절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면을 잘 지도해줘야 하는 것이 바로 부모 등 친권을 가진 보호자인데, 실제로 아이를 돌보다 보면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민폐 행위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소한 것을 하나도 놓치면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사회 질서를 잘 모르고 그건을 배워 가는 중인 아이들은 자기의 행위가 나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감이 없다.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책임 능력이 없으므로 과실에 대한 배상의무 또한 없다. 하지만 감독자인 부모 입장엣는 아이의 행위를 감독할 법정의무가 잇으므로 이를 내버려뒀을 때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 보통은 피해를 본 상대방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배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일을 해결해 주기 위한 손해보험 계열의 가족일상 생활중 배상책임 보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사회적 마찰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동의 소음 문제 및 그에 대한 부모의 방치로 볼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뛰거나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면 안된다는 등의 공공예절 개념이 아직 낯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호자의 지속적인 관심과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는 노키즈존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사회에서의 마찰을 더 크게 키우는 이유이며 비난을 받는 것은 사실 문제를 일으킨 아이가 아니라 막지 못한 부모가 비난을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비난을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 받는 비난임을 마치 아이가 받는 비난인 것처럼 오해하여 무고하고 무지한 아이가 무고한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육아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은 틀림이 없지만 그 만큼 책임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 2023-07-31 김소민
    이기적유전자(40주년기념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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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나서 당신은 마치 영원히 살사람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절대 노쇠하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깨닫지 못한채 항상 시간이 차고 넘칠 것처럼 낭비한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는 내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헌신하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두려울땐 언젠가 죽으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원할때는 불멸할 사람처럼 행동하라. 우리는 종종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줌아웃, 그러니까 한발짝 떨어져 하늘 위에서 지켜보면, 기나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내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인간 역사의 연속체에서 모래알 하나 정도만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일생은 인류사에서 하나의 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니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는 우리의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 것. 이문제가 1) 나의 성품과 관련이 있는가 2) 내가 하는 행동 및 반응과 관련이 있는가 3) 다른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가 에픽테토스는 그 나머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자신의 성품과 세상을 보는시각,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적인 능 우리는 삼의 많은 부분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고 화가 나며 불행해진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야한다. 그게 인간다운 것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갈대처럼 구부러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건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통제할 수 없는건 받아들여야 한다. 준비는 나의 통제범위 안에 있는 문제이다. 그 물건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걸 했는데도 되찾을 수 없다면, 그 다음일로 넘어간다. 나는 선하게 행동하는가, 아니면 악하게 행동하는가? 스토아 철학자들이 덕목이라고 부른 정의, 중용, 지혜, 용기를 키우고 있는가? 긴장을 풀고 있는가? 내면의 자아는 평온한가?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는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가? 이런것들은 평판이나 부를 쌓는것보다 더 중요했다. 무심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건강, 부, 명성 모두가 나의 통제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 것. 이문제가 1) 나의 성품과 관련이 있는가 2) 내가 하는 행동 및 반응과 관련이 있는가 3) 다른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가 에픽테토스는 그 나머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자신의 성품과 세상을 보는시각,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적인 능 우리는 삼의 많은 부분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고 화가 나며 불행해진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야한다. 그게 인간다운 당신은 마치 영원히 살사람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절대 노쇠하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깨닫지 못한채 항상 시간이 차고 넘칠 것처럼 낭비한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는 내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헌신하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두려울땐 언젠가 죽으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원할때는 불멸할 사람처럼 행동하라. 우리는 종종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줌아웃, 그러니까 한발짝 떨어져 하늘 위에서 지켜보면, 기나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내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인간 역사의 연속체에서 모래알 하나 정도만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일생은 인류사에서 하나의 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니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는 우리의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 2023-07-31 김소민
    오은영의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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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를 읽고나서 당신은 마치 영원히 살사람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절대 노쇠하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깨닫지 못한채 항상 시간이 차고 넘칠 것처럼 낭비한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는 내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헌신하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두려울땐 언젠가 죽으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원할때는 불멸할 사람처럼 행동하라. 우리는 종종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줌아웃, 그러니까 한발짝 떨어져 하늘 위에서 지켜보면, 기나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내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인간 역사의 연속체에서 모래알 하나 정도만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일생은 인류사에서 하나의 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니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는 우리의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 것. 이문제가 1) 나의 성품과 관련이 있는가 2) 내가 하는 행동 및 반응과 관련이 있는가 3) 다른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가 에픽테토스는 그 나머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자신의 성품과 세상을 보는시각,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적인 능 우리는 삼의 많은 부분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고 화가 나며 불행해진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야한다. 그게 인간다운 것이다. 나는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갈대처럼 구부러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건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통제할 수 없는건 받아들여야 한다. 준비는 나의 통제범위 안에 있는 문제이다. 그 물건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걸 했는데도 되찾을 수 없다면, 그 다음일로 넘어간다. 나는 선하게 행동하는가, 아니면 악하게 행동하는가? 스토아 철학자들이 덕목이라고 부른 정의, 중용, 지혜, 용기를 키우고 있는가? 긴장을 풀고 있는가? 내면의 자아는 평온한가? 다른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는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가? 이런것들은 평판이나 부를 쌓는것보다 더 중요했다. 무심을 길러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건강, 부, 명성 모두가 나의 통제영역 밖에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알 것. 이문제가 1) 나의 성품과 관련이 있는가 2) 내가 하는 행동 및 반응과 관련이 있는가 3) 다른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는가 에픽테토스는 그 나머지 것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자신의 성품과 세상을 보는시각,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현실적인 능 우리는 삼의 많은 부분이 나의 통제권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문제가 되고 화가 나며 불행해진다.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일하러 가야한다. 그게 인간다운 당신은 마치 영원히 살사람처럼 인생을 살고 있다. 절대 노쇠하지 않을것처럼 말이다.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깨닫지 못한채 항상 시간이 차고 넘칠 것처럼 낭비한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는 내가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헌신하는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두려울땐 언젠가 죽으리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고, 무언가를 원할때는 불멸할 사람처럼 행동하라. 우리는 종종 삶에서 마주치는 문제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줌아웃, 그러니까 한발짝 떨어져 하늘 위에서 지켜보면, 기나긴 시간 속에 존재하는 내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은 인간 역사의 연속체에서 모래알 하나 정도만 차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일생은 인류사에서 하나의 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니 머릿속을 꽉채우고 있는 우리의 문제들은 얼마나 사소한가
  • 2023-07-31 소온
    퀀텀의세계:세상을뒤바꿀기술양자컴퓨터의모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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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물리학의 한 분야인 양자역학은 최근 여러 매체를 통하여 그 내용과 이론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선택한 것도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읽고보니 결국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했다고 볼 수는 없겠으나, 작가의 말대로 이 내용을 정확하게 더 이상하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책을 선택하여 읽은 것만으로도 성공을 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더더욱 양자역학에 대하여 조금 더 흥미를 갖고 접근할 수 있게되었다고 한다면 그 성공은 더 배가된 것처럼 느껴진다. 양자역학은 막스 보른이 처음 그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며, 양자(quantum)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라는 라틴어 quantus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양자역학은 물리학에서 말하는 미시세계 뿐만 아니라 거시세계에서도 활용된다고 한다. 미시 시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특징은 물리량들이 언덕처럼 연속적이지 않고 계단처럼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물리량이 이처럼 특정한 양의 양자를 통해서 기술된다는 특성을 보일 때 물리량이 양자화되어 있다고 부른다. 미시세계에서 나타나는 물리량들은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다루는 역학에 양자역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양자는 특정한 원소나 아주 작은 알갱이의 명칭이 아니라 일정한 양을 가졌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양자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하면 기본 단위와 비슷한 것이다. 물리량을 어떤 기본 단위의 정수배로 셀 수 있을 때, 그 기본 단위를 양자라고 부른다. 양자역학을 설명하고자 할 때 처음에 역사적 흐름에 따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여러 사람이 기여한 이론이기도 하고, 생소한 개념이 많기 때문이다. 양자역학 발전 순서대로 시행착오를 그대로 되풀이하면서 이론을 이해하는 방식인데, 무지에서 시작하는 역사적 흐름을 따라가기에 이해가 쉬운 면은 있지만 양자역학의 계산방법을 익히는 데에 적합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다. 따라서, 보다 체계저긴 연역적인 스타일로 설명이 시도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방식은 양자역학이 필요한 이유나 양자역학 계산방법이 왜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곤 한다. 어떤 에너지나 물질이 계(system)내에서 불연속적이라는 주장은 현대물리학 등장 이전에도 있었는데, 가령 원자론도 실은 물질이 공간상에서 불연속적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루트비히 볼츠만은 미 문제로 마흐나 오스트발트와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볼츠만은 통계역학에 미시적인 상태라는 가상의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는 물리학에 불연속적인 개념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990년, 막스 플랑크가 자신의 흑체복사 이론을 전개하기 위하여 에너지의 양자화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양자역학은 그 포문을 열었다. 다만, 플랑크는 흑체복사 현상에 한정하여 양자개념을 통계역학적 맥락에서 임시로 도임한 것이지 그 개념의 중요성과 파급효과를 플랑크 본인 스스로는 알지 못했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플랑크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빛 그 자체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광양자설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여러 실험을 통해 빛이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가진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그에 착안하여 드 브로이가 전자와 같이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이 파동적특성을 갖고 있다는 물질파 이론을 제시한다. 1913년 닐스 보어는 플랑크의 아이디어를 이용하여 불연속적인 발머 계열의 수소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있는 보어의 원자 모형을 고안햇다. 이후에도 꾸준히 양자역학은 그 오랜기간 다양한 연구가들에 의하여 발전되어 온 것이다. 여러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의 해석에 대해 철학적으로도 논쟁을 벌였다. 이러한 철학적 논쟁은 실험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느 ㄴ한계로 인해 과학을 벗어나 철학 쪽으로 옮겨갔고 자연히 과학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논쟁의 질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1980년대 이전까지는 논쟁을 뒷받침할 만한 실험적인 결과물이 별로 없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광자나 원자 규모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되었고 양자정보과학이 발달하면서 양자역학의 해석도 현실적인 검증을 일부 고려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 2023-07-31 김지현
    천개의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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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선란 작가의 <천개의 파랑>은 올해 내가 읽은 소설 중 읽고 나서 마음이 가장 따뜻해지는 책이었다. 이 책은 SF소설로서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사회를 그려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 두려워졌다. 나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면 빠른 기술 발전의 흐름에 뒤쳐지거나, 베티와 같은 더 효율적인 기계에 대체 가능한 노동력,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까 싶어서였다. 또 공감과 존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흐려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휠체어를 탄 은혜는, 주말마다 자신 때문에 집에서 자신을 돌볼 수밖에 없는 처지인 연재를 보고 미안함을 느껴, 우연히 경마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만난 투데이라는 흑마는 은혜로 하여금 일종의 해방감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소아마비를 앓던 은혜가 달릴 수 없는 만큼, 투데이는 주로를 달렸고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행복한 땀을 흘렸다. 그러나 말 갈기를 휘날리며 경마장에서 인간을 위해 관절이 부서져라 달린 투데이는 인간에게 쓸모가 없어지자 마자 버려졌다. 투데이는 주로를 달리면서 살아있음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결론적으로 달리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에 투데이는 살기 위해 달린 것이다. 달릴 수 없게 된 투데이가 안락사를 앞둔 모습을 보고, 은혜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마치 휠체어를 탄 자신은 쓸모가 없고, 쓸모가 없으면 행복할 수도 없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메시지를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은혜의 그 말이 기억이 남는다. 은혜에게 기술의 발전은 삶의 편리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버스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개발로 더 멀리,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운송수단의 발달로 인해 남들처럼 평범하게 이동할 자유를 빼앗겼다. 건강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 나에게 작가의 이러한 시선은 너무나도 새롭고, 또 한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런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로봇처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이지만, 반대로 로봇은 조금은 서투르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기도 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처럼 그려낸다. 스카프가 목에 걸려 괴로워하는 환경미화 로봇인 스트린, 돌연변이처럼 하늘이 보고싶어져 투데이의 등에서 떨어진 기수 로봇 콜리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흐릿해져가는 사회에서 작가가 건네고 싶었던 메시지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 서로는 항상 연결되어 있을 것이고, 관계의 지속을 통해서만 서로가 가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개개인을 고립되도록 만든다. 짝사랑 후 학교를 그만둔 은혜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은혜가 원하는 주말을 보내던 연재도, 남편을 화마 속에 잃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경도 가족간 쌓여가는 오해 속에서 깊은 상처를 숨기고 살아왔다. 이 상처를 보듬는 것은 결국 대화, 소통이었다. 보경은 그리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콜리에게서 배웠고, 은혜와 연재도 투데이를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콜리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훌륭한 로봇이었다. 내가 감탄한 부분은,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움과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투데이가 안락사를 피하기 위해 이전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달리는 방법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다. 투데이가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행복해져야 하고,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달려야 한다. 그렇게 달리다가, 힘들면 또 멈춰서도 되고, 콜리와 같이 자신과 함께 달려주는 동반 출전자에게 가끔은 기대도 된다. 완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다치고 힘들어 나동그라진 사람을 본다면, 나는 그 사람을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이 사회도 조금은 더 살만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계기로 나는 해보았다.
  • 2023-07-31 이원숙
    생에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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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20년 가까이 시청했던 ‘전원일기’를 통해 너무도 가까이 자주 보아왔던 김혜자 배우. 배우로만 작품에서 보다가 연예프로그램에서 몇 번 평소의 모습을 엿볼 기회가 있었는데 천진하기가 이를데없고 소녀다움에 피식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보다가 김혜자의 책을 골랐다. 제목도 맘에 들었다. 간단명료 ‘생에 감사해’ 나의 평소 생각과도 일치하기도 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거같아서 읽게 되었다. 전원일기 말고 김혜자의 작품으로 생각나는거는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있다. ‘마더’ 속 엄마는 삶이 불안한 여자다. 시골 읍내으 작은 약재상을 운영하면서 어찌어찌 알게 된 무면허 침술 치료를 가끔씩 하며 생계를 꾸린다. 그녀에게는 단둘이 살아가는 아들 도준이 있다. 스물여덟 살임에도 제 앞가림을 못한다. 바보라는 말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지능이 조금 모자라는 아들이지만 엄마에게는 세상의 전부이다.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도준에게서 엄마는 불안한 눈을 떼지 못한다. 엄마는 잘 때도 도준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양말도 벗지 않은 채 부동자세로 누워있다. 어디선가 도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뛰어나가기 위해서이다. 어느 날, 한 여고생이 머리에ㅐ 돌을 맞은 상태로 살해당하고 온 동네가 뒤집힌다. 난데없이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도준에게는 단기기억 상실증이 있었기에 그날 밤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경찰은 어리숙해서 말이 통하지 않는 도준을 용의자로 체포해 반 강제로 자백을 받아낸다. 업슨 돈에 선임한 변호사는 돈만 밝히고 뇌물 아닌 뇌불로 약초를 받아 채간다. 엄마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한없이 착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도준이 살인을 저지를 리 없다. 그래서 아들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동물 같은 본능으로 비틀린 모성애를 발휘한다.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세상과 싸우며 진짜 범인을 찾아나선다.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섬뜩한 광기가 커져만 간다. 결국 그녀는 또다른 희생자를 만든다. 무제한의 사랑에서 오는 광기이다. 긴장과 불안이 쌓이고 작두로 약재를 설컹설컹 자르는 장면부터 신경을 갉는 분위기가 흐른다. (‘매번 처음사는 인생으로 살았다’ 본문 중) 봉준호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작품이고 김혜자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썼고 5년간 개인적으로 연락하며 마더의 엄마역할을 자연스럽게 각인시킨다.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연기를 보여준 작품이다. 저자는 또 말한다. 나는 할줄 아는게 연기밖에 없으니까 할 뿐입니다. 이것이 가장 좋고 언제가 가슴이 뛰니까. 나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대사를 백 번도 더 읽습니다. 어제 할 때는 몰랐는데 오늘 알아지면 어떤 금은보화를 발견한 것보다 기쁩니다. 그 기쁨을 내가 멀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기쁨은 누가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자기 인생에 솔직하고 진실한 사람이라면 이 말을 다 알아들을 것입이다. 삶은 그냥 살아가는 것밖에 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죽기 살기로 하면 그 뒤는 신이 책임져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모든 작품이 나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나 자신을 진실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이며 모든 것입니다. ‘이만큼 하면 됐다’거나 ‘이정도면 성공했다’라고 멈춰서는 안됩니다.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서 해야 합니다. ‘안나 카레리나’의 마지막 문장을 대사처럼 외웁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 인생은 매 순간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본문 중) 김혜자 배우는 작품을 선택할 때는 비록 현실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더라도 그 사이에서 바늘귀만 한 희망의 빛이 보이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기를 하는동안 살아있음을 느꼈고, 동시에 보는 사람들을 살리고 싶었다. 1966년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신인연기상을 시작으로 MBC연기대상,KBS연기대상, 마닐라 국제영화제, 부일영화상, LA비평가협회상 등에서 수차례 수상했으며,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 4차례, 여자최우수연기상 4차례를 수상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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