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8
오유진
물고기는존재하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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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직장 동료에게 추천 받은 책이다. 추천해준 동료가 말하기를,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책이라, 누군가에게는 인생 최고의 책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지루에서 끝까지 읽을 수 조차 없는 책이라고 했다. 그 평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고, 당최 무슨 뜻인지 모를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고 싶어 이번 독서통신 연수 책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실과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분류는 "자연/과학"이라는 것이, 또 다른 궁금증을 자아냈다. 상실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일까? 분명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인물에 대해 써낸 책인 것 같은데, 어떻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걸까?
첫 책장을 넘기자마자 발견한 문구는 "아빠, 이 책은 아빠를 위한 책이에요." 였다. 다른 무수한 책이 그렇듯, 저자가 책을 출간하며 주위의 가까운 이에게 감사함을 표시하는 상투적인 문구인줄로만 알았으나, 완독을 하고나니 이조차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다 읽고 나니 극명히 호불호가 갈리던 이유, 또 수많은 서평들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저자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집착의 삶을 잘 녹여낸 수필이면서도 과학적 사건들을 엮어 쉽게 설명하고, 그중에서도 '분류학(taxonomy)'이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한다. 그렇게 고민하게 하면서도, 마치 추리소설 같은 흡입력으로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야기는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엄청난 끈기와 의지로 지구상의 수많은 물고기의 이름을 붙인 그는 일평생을 전 세계를 누비며 직접 이름을 붙인 물고기 표본들이, 자연 재해로 모두 파괴되는 절망 속에서 오히려 물고기를 잡고 이름표를 꿰맨다. 힘들고 극한 상황일수록 더 스스로를 다그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너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유년 시절을 보낸 밀러(저자)의 과거는 고달팠다. 아버지의 "너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라는 가르침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자기검열하게 했으며, 스스로를 비하하도록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본인과는 정반대의 삶을 일구어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보여준 삶의 태도를 통해, 본인을 짓누르던 아버지의 그늘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노력할수록 조던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깊게 파고 들며 탐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던에 대해 깊에 알면 알수록, 그녀가 조던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라진다. 조던이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물고기의 이름 붙이기를 지속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철저히 숭배하는 우생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생물의 존재를 계급화하고, 누군가는 더 중요한 존재, 누군가는 더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명명하기 위함이었다. "너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야.". 밀러를 긴 시간 괴롭혀온 그 한 문장을 조던의 삶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괴롭혀 온 아버지의 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탐구하던 이의 삶이 실은 아버지의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절망감은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밀러의 절망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Naming Nature)"라는 책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분류학적으로 물고기는 물 속에 사는 생물을 지칭하는 것일 뿐, 모두 같은 조상을 뿌리에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막에 사는 모든 동물이 같은 종이 아닌 것처럼 물고기를 모두 같이 분류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오류이다. 즉, '물고기'라는 우생학적 단어 자체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며, 기원부터 잘못된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던이 평생 헌신했던 학문적 성취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밀러는 평생을 괴롭히던 한 문장으로부터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존재는 단순히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중요도를 나눌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